임금님 귀는 당나귀....침묵하는 자들을 향해서~

행동하지 않은 양심은 죽은 자의 것이다....?

옛날부터 전해 오는 어른들의 며느리 시집살이에 대한 얘기가 생각난다. 지금 같은 세상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그 당시는 그랬다.

벙어리 삼년에 귀머거리 삼년이라는 말은 그저 정해 놓은 숫자에 불과했다. 아이들이 다 성장하기까지는 찍소리 못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시집에서 일어난 상황을 지근거리서 지켜보고서 보고도 못 본 채, 들어도 못들은 채로 며느리는 그저 함구하고 살라는 것이다.

분명 문제가 드러났고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시집 온 며느리는 제아무리 똑똑해도 입 밖으로 그것을 꺼내 놓고서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인 줄 알면서도 그것을 신하들과 국민에게 전할 수가 없는 그의 답답한 심정은 어떠할까 로도 비유되는 현상을 우리는 자주 목격하고 살고 있다.

임금의 귀가 비정상적으로 길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 국민들에게 함구령을 내리자 임금의 이발을 자주해 임금의 귀가 길다는 것을 아는 이발사는 그 사실을 주위에 알리지 못해 속병이 날 지경이 됐다. 그래서 그는 아무도 없는 대나무밭에 가서 구멍을 뚫고 속 시원하게 ‘임금님귀는 당나귀 귀’라 외쳐 속이 후련해졌다는 우화는 모두가 다 아는 얘기다.

이 같은 행태는 정치적인 행위와 연관되어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일상적인 동창회, 계모임, 친구들 모임, 이웃 간의 모임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 보여 지고 있다. 문제는 그것을 누가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드러 내놓고서 속 시원하게 말하고 그것을 치유하거나 개선해 갈 것인가가 현재의 당면한 고민거리이자 문제인 것이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본전은 고사하고 상대방과 원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히 쉽게 그 누구도 현상에서 보여 지는 문제점을 쉽게 드러내 놓고 말하려고 하지를 않는다. 지켜보거나 방관하고 나와 직접 부딪치는 일이 벌어지기까지 또는 나와 직접적인 금전적인 손해가 미치기 직전까지는 묵인내지는 방관만 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수술을 하고 치유해야함을 알고서도 말이다. 역시 작금에 정읍사회서 보여 지는 수많은 공공적 예산 낭비와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앞세워 전체에게 해를 끼치는 등 막대한 공공적 이익을 해하고 있는데도 기관과 정치인들이 움직이질 않고 있는 것도 많다.

척결의지는 고사하고 오히려 조용히 살자는 뜻의 소수의견을 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 행태와 사실을 지근거리서 보고 살자니 필자 역시도 며느리 신세 삼년이 아니라, 그 사실을 공표해 당사자들을 비난을 받게 만들어야 함에도 입을 함구하고 있자니 답답하고 숨이 막힐 지경이라는 것이다. 그런 필자에게 지금도 소수자들은 내게 너무 강하다는 말과 가급적 입을 닫으라하니 옛날의 막 시집을 온 며느리 이상의 신세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정치인과 유지라는 사람들이 행태가 그렇고 이해관계인들의 생각이 바르지 못하고, 이전투구적인 행동을 보이고 있는데도 그것을 꼭 꼬집어 잘못됨을 지적하고, 바로잡아주지 못하고 있으니 속이 다 타들어 가는 심정이다.

그들의 못된 행동과 야비한 행동들, 그릇된 생각을 바로 잡아 지적하고 때로는 여론몰이해서라도 꽉 잡아야 하는데도 그러하지 못하고 우회적인 표현과 행태로 살자니 답답하다.

도둑을 뻔히 지근거리서 발견하고서도 언론이 공표를 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며 민이 경찰에 신고도 못하는 사회는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다. 현상에 보여 지고 부딪치는 실상에 대해서 우리는 과감하게 행동하고 우리의 권익과 정의를 위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어떤 분이 말했고 스스로 의인이라는 많은 자들이 즐겨 쓰는 말,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의 뜻을 우리가 왜 이 마당에서 곱씹어봐야 하는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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