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이 존경 받는 사회가 돼야 국민이 재판에 납득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소신을 갖고 있는 임희동 판사가 오는19일자로 65세 법관임기 연장 최초의 판사로서 퇴임을 한다. 임판사는 재직할 때 내부통신망을 통해서 ‘대법관을 제외한 판사들의 단일호봉제 적용, 정년보장, 대등재판부 구성, 민·형사 단독사건 전담 법관제, 이혼기간 숙려제 등 법원 제도에 대한 개선책’ 등을 내놓았다. 또한 대법관 제청도 대법원장이 단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자문을 받도록 하는 의견도 냈다.
그런가하면 2006년7월경에는 당시 법조비리로 사법부가 곤혹을 치루고 있을 때 “법관은 일과 후에도 만나는 사람이 누구였는지를 자진 신고하자”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또한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 의혹 사건과 우리법연구회에 대한 비판의 글은 중앙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10년 우리법연구회가 논란의 중심에 섰을 때는 당시 박일환 법원행정처장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해체를 요구할 수는 없다”고 발언한 이후에도 “우리법연구회를 조사해야 한다”고까지 수위를 높이는 소신 발언을 하기도 했다.
임 판사는 이 사건으로 연임 신청을 하지 말라는 압력도 받았으며 그로인해서 포천서 경상북도 구미로 전근시킨 것 아닌가하는 의혹도 일각에서는 제기됐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됐든 임판사의 말처럼 포천군에서 구미로 전근명령이 떨어졌을 때만 해도 갈까말까를 고민했었다. 그런데 내려와 박정희 전대통령의 고향에 재직 하는 동안 법원 정년이 65세로 연장됐다. 그런 연유로 임판사가 법원에 재직해서 몸을 담은지가 20년을 넘기게 됐고 그 결과 연금수혜자가 됐다는 반가운 얘기를 몇 년전 기자가 구미시법원을 방문했을 때 말하기도 했었다.
지난 16일(월) 오전 임판사의 가족들과 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구지법 김천지원 구미시법원 임희동판사의 퇴임식은 청사가 아닌 아름다운 가게 구미인동점에서 진행됐다.
구미시법원이 아닌 이곳에서 조촐한 퇴임식이 열리는 것만 봐도, 임 판사의 행동과 사고는 예사의 사람이 아닌 것이다.
포천군에서 시군법원판사로 근무를 할 때도 그곳에다 조정위원들과 함께 십시일반하여 아름다운 가게를 오픈하는데 기여를 했다. 그런데 또 이곳 구미시로 전근해 와서도 앞장을 서서 아름다운 가게를 연 것이 그들과 끈끈한 사회봉사적인 삶의 인연이 된 모양이다.
그래서 그의 사양에도 불구하고 이곳 사람들이 앞장서서 오늘과 같은 조촐한 자리를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정읍 입암이라는 시골서 태어난 임희동판사는 공부가 무척하고 싶었지만 어려운 생활 때문에 당시 장학금을 준다는 이리상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외환은행에 취직을 했다. 당장 꿈을 이루고 혼자서 대학가서 공부하는 것을 포기했다. 동생들 공부가 우선이 됐고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가장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는 꿈은 포기할 수가 없어서 주경야독을 결심하고 은행을 다니며 국제대학교(현 서경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해 야간 수업을 들었다. 마침내 60여명만을 뽑았던 그 시절인 1974년 제16회 사법시험에 당당히 합격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연수원 교육을 마치고 6년간을 부산과 순천 등에서 판사로 재직을 하다가 또 다시 마지막 마무리와 같은 집안을 돌보아야했던 그는 과감하게 공직서 사퇴하고 고향 정읍에서 첫 법률사무소를 열었다.
그 후부터 16년여 동안 정읍과 서울서 변호사로 활동을 하다가 다시 공직인 포천군법원 판사로 돌아와 그가 평생 꿈꾸어 오던 공직에서 소신을 굽히지 않는 행동하는 양심가로서 판사로서 그 역할에 충실하면서 오늘의 퇴임지인 구미시법원까지 오게 됐다.
임판사가 변호사로 활동을 할 때 고향에서도 뜻있는 각계각층과 함께 봉사적인 삶을 실천해 보였다. 그 첫 번째 성과가 본보인 ‘정읍신문’을 만들자고 한 것이다. 또한 몸으로 실천하는 밀알운동을 실시했으며 지역사회 꿈나무들을 지원하는 향토장학재단을 만드는데 주저하지 않고 자기 호주머니를 먼저 털어 냈다. 그리고 나서 함께 할 지역유지들의 동참을 유도했다.
그것이 지금의 혜화당한약방 황종석씨가 이사장으로 있는 정읍향토장학재단이다. 그런가하면 임 판사는 지난달 법률신문의 인터뷰에서 ‘지족안분(知足安分)’의 삶을 강조하면서 “사람이 제 일에 만족하지 못하고 분수에 넘치는 일을 하면 무리가 생긴다”고 말했다.
또한 “판·검사가 승진에 연연하거나 변호사가 돈만 좇다 보면 욕심이 생기게 됩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직위나 돈이 아닌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사람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즉 가정, 사회, 국가의 흥망성쇠가 모두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그걸 말해주고 싶어요.”라고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조촐한 퇴임식장에는 부인 변형렬여사와 법무부에 검사로 재직하는 아들 세진, 딸 완령씨 등 가족친지들 다수가 참석해 임판사의 퇴임을 축하해 주었다.<정리 김남륜기자>

(주)정읍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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