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인면 오리부락 거리 곳곳에선 옛날 일본식 가옥을 쉽게 볼 수 있다. 3.1운동이 일어났던 구 시장 사거리 골목에 위치한 민가의 대부분도 일본식 목조 건물이다. 실제 일본인이 정읍에 살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여의도 땅의 10배가 넘는 땅을 소유했다는 구마모토 리헤이는 군산, 김제, 정읍 일대에 3,200(1정보=1천평)정보를 소유했다. 역사학 전문가에 따르면 구마모토를 포함해 많은 일본인들이 돈이 되는 자원을 찾아 조선에 들어왔다. 이들은 만경강과 두만강 일대 비옥한 호남 땅에 난 우리 곡식들을 약탈해 모두 일본에 반출했고, 상당수가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됐다.
신태인읍 화호리 일대, 특히 용서마을에는 구마모토 가옥을 비롯한 일제강점기 잔재 건물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특히 화호병원(자혜진료소), 구마모토 가옥, 경리과장 사택, 농산과장 사택, 일본인 직원 사택, 직원 합숙소, 다우에 가옥 겸 사무실, 동양척식주식회사 사무실, 일본인 학교, 조선인 학교, 소화여관, 화호교회 등은 역사 교육 체험학습장으로도 언급되고 있다.
신태인읍 주민은 화호리 일대가 일제식민치하 현장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보존 가치가 있다고 얘기한다. 문화재 등록이 돼 있는 건축물 이외에도 일제강점기 동안 세워진 건물을 보기 위해 먼 곳에서 방문객 자주 찾는 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시청 문화재 담당자는 “화호리 일대 일본 건물들이 근대문화유산 문화재로 지정이 되면 지원금을 받아서 역사 교육 마을을 조성할 계획이지만 아직은 자료조사 단계에 있다. 마을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일본 가옥의 소유주와 합의해 건물 매매가 먼저 이뤄져야하는데 순탄치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용서마을 일본공장이나 우체국건물의 경우 복원하는 데만 21억여 원이 들어간다. 이 때문에 역사마을 조성은 화호리 일대 건물이 먼저 문화재에 등록되고 시비로 감당이 어려운 자금적인 부분을 채워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한편, 정읍시 지역공동체사업팀은 올해부터 2017년도까지 3년간 신태인읍 화호리 용서마을에 교육, 마을홍보 등의 지역역량강화 사업을 펼친다. 근대역사문화 교육을 통해 마을의 자존감을 고취하고 교류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실시한 이 사업은 △근대문화해설사양성 △주민교육훈련 △지역홍보마케팅 △마을축제 △마을브랜드개발의 내용으로 구성됐다.
(유한나 수습기자)
 

다우에농장 사무실로 사용되었던 우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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