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광림 칼럼위원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 갓 서른에 요절한 영국 낭만파 시인 셀리Shelley의 시 ‘서풍의 노래’ 한 구절이다. 필자는 이 문구를 참 좋아한다. 겉으로 보면 상식선의 평이한 서술같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함축미의 절대치를 구현한 고도의 연금술인 까닭이다.

말하자면 속박이나 구속에서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갈망하는 의지찬 몸짓에 다름 아니다. 이처럼 혹한의 동토에서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마침내 새싹이 돋아 꽃봉오리를 맺는 내일에 대한 희망과 미래지향적 사고로 무장한 그의 말에 동의한다면 필자가 정의하는 ‘시란 희망추구의 환치작업’과도 합일된다. 그래서 우리에게 꿈과 희망이 있는 한 절망이나 좌절도 사치가 되는 등식을 성립시킨다. 어쨌거나 우리는 살아있는 한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희망은 꿈꾸는 자의 몫이기에.

송년모임이라는 이름으로 달포 넘게 이곳저곳 불려 다니느라 정신 줄을 놓았다. 참 한가한 신선놀음으로 매도될 공산도 없지 않으나 그렇다고 일상으로 고착화 된 이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에서의 궤도이탈은 결국 한 구성원으로서의 소외와 고립을 의미한다. 그런 까닭에 연례행사로 되풀이되는 이 일들이 싫든 좋든 필자의 행보도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이렇듯 겉치레식 의전행사가 그 끝을 보일 때 쯤 달랑 한 장 남은 월력에 살아있는 숫자는 겨우 두어 개,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연상시키는 우울한 수묵화가 창궐하는 세밑은 온통이 어두운 색깔뿐이다.

자연의 섭리대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 해가 또 간다. 보는 이의 시각이나 가치관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다가오는 새해 또한 ‘안개정국’에 ‘오리무중’이다. 대학교수단체 역시 올 해를 ‘혼용무도-昏庸無道’로 규정했다.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러운 나라상황’을 빗댄 말이다. 골자만 추스르자면 세월호와 메르스에 대한 무능과 무책임, 불신과 혐오로 가득찬 불통의 독단적 국정운영, 역사에 대한 반역 등 아집과 독선으로 똘똘 뭉친 통치권자의 개념 없는 리더십 부재를 힐난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 야기된 경상남도가 발행한 2016년 다문화 달력에 표기된 ‘일본천황탄생일’과 ‘일장기’ 표기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일제침략과 강점기를 미화하며 망국을 부르짖는 친일회귀세력과 새마을 운동, 국사국정화를 외치며 70년대로의 회귀와 박정희 향수에 목을 매단 박근혜는 도대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두고두고 연구대상인 초미의 관심사다.

‘나는 내심 교만과 자만에 빠질까 두려워하고 있소. 그래서 항상 나 자신을 통제하며, 태양이 서산으로 질 때까지 바쁘게 일하고서야 식사를 하며, 어떤 때는 밤을 지새우며 앉아서 아침을 맞기도 하오’ 당 태종의 말이다. 통찰력이나 혜안까지는 아니더라도 자만이나 교만에 빠지지 않고 늘 스스로를 통제하며 어떻게 하면 국민들을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할것인가?가 지도자의 제일 덕목임을 암시하고 있다.

내년 4·13 총선도 목전이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당당하게 출사표를 던지고 선거판에 뛰어든 예비후보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화려한 경력과 막강한 힘을 무기로 한결같이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목청것 외치고는 있는데 도대체 왜 내가 아니면 안 되는지 그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없다.

정치적 덕목이나 소신, 철학이나 가치관은 논외로 치더라도 정말이지 이번만큼은 때묻지 않은 새롭고 참신한 인물들이 여의도 입성의 축배를 들었음 싶다. 남발성 공약보다 실현가능한 공약, 지역주민의 아픔을 달래주고 작은 희망을 구현해줄 수 있는 알맹이가 튼실한 공약으로 무장된 후보들이 금배지를 많이 달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희망과 꿈이 살아 꿈틀거리는 그런 신명난 정치판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하지만 정치도, 사회도 가만히 앉아서 변화되거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나 하나쯤이야’가 아니라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특단의 각오와 행동의 실천이 절실하다. 플라톤은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런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고 했다. 단테 또한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정치적 격변기에 중립을 지킨 자를 위해 마련되어 있다’는 무서운 경구를 남겼다.

부정의에 대한 침묵이나 방관과 안주는 우리가 버려야 할 비겁한 유산이다. 저질의 인간들에게 복종하고 지배당할 것인가, 또 아니면 지옥의 불구덩이로 뛰어들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유권자 자신들의 몫이다.

한 해의 마지막 분기점에서 비우고 또 버려가는 무심의 마음으로 저무는 강가에 서고 싶다. 게으름과 나태의 산물인 녹 슨 삽을 씻듯 성찰과 참회의 심정으로 오욕의 찌든 때를 강물에 부리고 싶다. 그러고 나면 우린 정녕 참 나와 조우할 수 있을까,

병신 새해 독자들의 무운과 소원성취를 빈다. <ckl0000@hanmail.net>

 

 

-최광림 약력

*정읍 출. 시인·문학평론가

*전 전주일보 편집국장·주필

*현 민주일보, 토요신문 주필·대표이사

*정읍신문 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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