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송이 반기는 내장사. 다시 높아진 조도 아래 소녀의 치마폭에 둘러싸인, 맑은 얼굴을 닮은 내장사의 봄이 절정을 맞고 있다. 형형색색 꽃들이 생기를 뿜어내며 보는 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계절의 여왕 오월. 민족의 얼이 서린 내장사의 사찰은 화재로 소실된 후 재건과 보수를 거듭하며 내장산의 빼어난 경관과 어우러진 지금의 모습이 됐다.

굴곡진 한국 역사를 고스라니 간직한 고요한 사찰 내장사. 지난 4월 4일 고창 도솔암에서 내장사 주지스님으로 오게 된 도완 스님을 만나 산사의 생활과 수행자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깨닫기 위해서, 배움의 인생을 살고자 20대 젊은 시절 처음 선운사에 발을 들였다. 수행자의 삶이란 것은 끊임없이 깨우치고 이해하는 것이었지만 나이 들어가며 특히 느끼는 것은 이웃과 나누는 기쁨이 큰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삶이 무르익어 갈수록 사람과 대화, 소통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고 믿고 있는 도완 스님은 젊은 날 자신의 삶에 대한 말을 아꼈다.

대신 직접 재배하고 말린 꽃차를 내왔다. 무려 7번을 건조해 만들었다는 도완 스님 표 녹차는 따뜻한 기운과 고운 맛만을 남겨놓아 꽃향기가 도는 듯하다. 그래서 첫 맛을 보았을 때 이름 있는 꽃잎을 우려낸 줄 알았다. 고창군 종합사회복지관장을 역임했던 도완 스님. 그에게 다도는 예절이고,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었다.

“고창의 초‧중학생에게 다도 예절에 대해 가르쳤다. 다도를 한 아이들은 ‘예절’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는데, 자라나서도 침착함이 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명확하게 알게 되는 것 같다”

그가 내온 녹차의 청량한 향이 온몸에 퍼지며 굳었던 마음을 곱게 펴내는 듯하다. 도완 스님은 재배한 녹차를 가지고 내장사를 찾는 제자들, 신자들과 다도 체험을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5월의 산사가 생생히 살아 숨 쉬는 문화 체험 현장으로 변신한다는 것.

스님은 문화와 예술, 역사의 흔적을 고스라니 담고 있는 내장사에서 이곳을 찾는 지역민들이 일상을 꾸려나갈 생명력을 담아가길 바랐다.

취임식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묻자, “취임식 예산을 아껴 어르신을 위해 식사를 대접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다. 정읍 내장사는 지역주민들이 고향처럼 느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내장사에 오고 나서 지역 주민과 함께 할 수 있는 자리 만들고 싶었다. 내년 5월 말 초파일 후에는 경로잔치 열 계획도 하고 있다. 봄날 따스함을 만끽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수행자의 삶과 깨달음에 대해서는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살다보면 매순간 선택을 하게 된다. 마치 주사위를 던지는 것과 같다. 주사위가 한번 던져지면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 던져진 것을 바꾸려고 할수록 혼란스럽고 고통이 생기게 된다. 어쩌면 바보 같은 일이다. 삶의 여러 선택에서 힘들어하는 이가 있다면 절의 문턱을 낮춰 언제든 나를 만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도완 스님은 큰 부자만이 선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덧붙였다. 현대사회에서 필수가 되어버린 나눔은 각박한 현실을 살만한 세상으로 바꾸는 희망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로 봉사하고 나누는데 크고 작음은 없다고 설명했다.

도완 스님과 대화를 나눈 후 작은 것을 나누며 행복해 할 줄 아는 순수한 세상을 떠올려 봤다. 봄의 내장사는 정겹고 평화롭다. 문턱을 낮춰 정읍 지역민을 맞으려는 주지 도완 스님은 산사를 찾는 방문객의 마음에 행복의 씨앗이 움트길 바라고 또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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