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취미생활을 통해 소소한 기쁨을 누리는 어르신들.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낸 흔적이 안면에 역력하다. 좌절과 성취를 겪어가며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낸 90세의 김명철 어르신의 특별한 서예사랑을 소개한다.

“몸이 성하지 않은데 저 양반 붓만 잡으면 몇 시간이고 저자세야”

그의 아내의 만류에도 좀처럼 붓을 놓지 않는 김 할아버지. 하루 최소 20장에서 40장을 한글과 사자성어, 논어 등에 나온 한자를 한지에 옮긴다고. 지친 기색 하나 없는 그의 건강을 묻자 그는 “괜찮다. 몸은 분명 멀쩡하지 않은데 서예를 하는 동안은 행복감이 전신에 퍼지는 듯하다. 서예를 시작한건 행복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는 1년 동안 서예교실 다녔고, 이후 6년 동안 스스로 서예 교본을 구매해 한자와 한글 글귀를 한지에 옮겨 적기 시작했다. 그 시간동안 자신이 쓰고 싶었던 이야기를 한지에 옮기며 감격에 찬 시간들을 보내왔다고.

“중년의 어느날 신체의 좌측 부분이 사실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됐다. 수 십 년간 한방치료에다 한약을 복용해봤지만 차도가 없었다. 처음 서예를 시작해야겠다고 맘먹은 것은 내 정신을 온전하게 보전하기 위해서였는데 지금은 삶을 사는 기분이 좋아서 쓰면서 생기는 희망 때문에 하고 있다”

그는 1926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해방과 한국전쟁 등 다난한 세월을 보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현재까지 자신의 인생과 정읍의 역사 등 관심을 가진 세상일을 한지와 편지지에 옮겨 적은 것만 수백 장에 달한다.

“왜정에 시달리다 8월 15일 해방을 맞았을 땐 하늘로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대한민국 만세를 그토록 외치던 것이 엊그제 같건만, 곧바로 38선에 가로막혀 민족이 나눠져 버리더라. 그때의 심경이야 말할 수가 없다”

그날들에 대한 기록을 한글로 옮겨 적는 것은 김 할아버지만의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다. 한글과 한자가 적힌 한지 한 장 한 장에 역사와 할아버지의 인생이 고스라니 실려 있었다.

손아귀 힘이 들어가지 않을 때까지 붓에 먹물을 묻히겠다고 얘기하는 김 할아버지. 붓을 잡은 후 그의 안면에 아이 같은 순진하고 맑은 표정이 스쳤다.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삶을 긍정하게 만들었던 것은 좋아하는 서예에 몰두 하면서 느꼈던 ‘기적 같은 행복’때문이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택하는 것이 젊은 청춘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되어버린 세태에 할아버지는 ‘행복’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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