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광림 칼럼위원

한바탕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빗줄기가 굵어지는가 싶더니 먹구름 속에서 이내 뽀얀 햇살이 얼굴을 들이민다. 비 갠 들녘은 밀레의 만종처럼 아름답다. 특히나 노을이 지는 황혼녘 풍경은 자연이 빚어내는 한 폭 수채화다. 저 경이롭고 신비로운 자연의 오케스트라적 합주에 몰입하고 감응하는 이는 비단 필자뿐일까,

일찌감치 찾아온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올 여름나기도 만만찮을 것 같다. 벌써부터 장마전선이 북상중이고 한 달이 넘게 장마가 이어지리라는 예보도 염려스럽다. 다만 대비에 만전을 기하고 지혜롭게 대처한다면 간혹 무르소의 총구에 녹아드는 뜨거운 태양열을 식혀줄 한 여름 시원한 빗줄기는 모두의 생명수가 될 수도 있으리라.

요즘 들어 많은 지인들이 빈번하게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다. 상식선의 수를 다한 고인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요절로 인한 불귀의 객이 된 고인의 영정을 마주할 때면 울컥 한 움큼의 비애가 묻어난다. 어쨌거나 헤어짐이나 이별이란 단어는 슬프다. 더구나 이 단어 앞에 마지막이라는 수식어가 주는 의미는 형벌과도 같은 아픔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한평생 자신만을 위해 살다 가는 범부와의 이별도 슬플 진데 소외받고 굶주린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자유와 민주를 위해, 아니 이 민족과 국가를 위해 한 목숨을 초개와 같이 내던진 이들의 값진 죽음 앞에서는 절로 숙연해지고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4∙19와 서울의 봄, 5·18항쟁의 희생이 오늘날 자유와 민주의 토대를 굳건히 다졌다면 6∙25의 희생 역시 국가의 존립을 보장해 준 숭고하고 거룩한 희생이다. 그런 까닭에 현충일은 항상 내 자신을 뒤돌아보고 겸허한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자랑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누굴 원망하거나 후회해 본 적은 더더욱 없다. 우리는 그때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했다. 내 살던 나라여! 내 젊음을 받아주오! 나 역시 이렇게 적을 막다 쓰러짐은 후배들의 아름다운 내일을 위함이니 후회는 없다.’

낮엔 석탄을 케고 밤엔 공부를 하던 태백중학교 126명의 학생은 6∙25가 발발하자 박규칠선생과 함께 학생복에 배낭을 메고 3일 동안 산길을 걷고 또 걸어 3사단 23연대를 찾아가 학도병에 지원했다. ‘너희 같은 어린 애를 받을 수 없다. 모두 돌아가!’라는 연대장의 말에 한 사람이라도 낙오되면 포기하겠다는 약속으로 부대에 편입했다. 단 5일간의 기초 군사훈련을 마치고 키보다 더 큰 M-16 소총으로 748고지 전투, 949고지 탈환 전투, 가칠봉 전투, 김화지구 전투등 수많은 전투에 참가, 부여받은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3년 넘게 지속된 치열한 전투가 휴전을 앞둔 1953년 7월 25일 태백중학교 학도중대가 중심이 된 특공대는 전투임무를 완수하고 해산되었다. 하지만 126명 중 18명의 학우는 끝내 돌아올 수 없었다.

민족적 최대비극인 이 전쟁에 조국을 지키고자 교복을 입고 펜 대신 총을 손에 쥔 학도병은 30여만 명에 달했으며 해외에서 급거 귀국 입대한 학도병도 700여명이 넘었다. 매년 6월이면 태백중학교에서는 학도병 추모식이 열린다. 이들의 나라사랑과 고귀한 희생정신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이쯤 해서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에 천착 할 필요성이 요구된다. 누란의 위기에서 구국의 일념으로 목숨을 내던진 호국영령과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에 응대하는 차원에서라도 각자 주어진 본분에 최선을 다하며 남은 날을 후회 없이 장만해야 할 일이다.

‘매일 아침 당신에게 86,400원을 입금해주는 은행이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러나 그 계좌는 당일이 지나면 잔액이 남지 않습니다. 시간은 우리에게 마치 이런 은행과도 같습니다. 매일 아침 86,400초를 우리는 부여받지만 매일 밤이면 이 시간을 다 사용하지 못하고 그냥 없어질 뿐입니다. 그날의 돈을 사용하지 못했다면, 손해는 오로지 당신의 몫입니다. 내일로 연장 시킬 수도 없습니다. 단지 오늘 현재의 잔고를 가지고 살아갈 뿐입니다.’ 전 코카콜라 앤터프라이즈 사장 브라이언 다이슨의 연설문 중 일부다.

‘내가 죽고나면 남는 것이 무엇?’이냐는 우문에 ‘남는 것도 있고, 남는 것도 없다.’던 한 스님의 선문답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이 선문답에서 필자가 노획한 전리품은 ‘죽어도 사는 삶이 있고, 살아도 죽는 삶이 있다.’는 것이다.

하루가 지나면 잔액이 남지 않는 계좌, 이 86,400초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삶과 죽음의 극단의 희비가 공존하고 있음을 명심할 일이다. 다시는 되풀이해서는 안 될 비극적인 동족상잔의 6·25를 사흘 앞 둔 필자의 단상이다. 조국을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바친 선열들과 호국영령의 명복을 빈다.
 

-시인

-문학평론가

-토요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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