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면과 덕천면 사이로 펼쳐진 호남평야에는 다 익은 벼들이 추수를 앞두고 황금물결치고 있다. 해질 무렵 만석보터 기념비가 서 있는 호남벌 정읍천에 서서 멀리 두승산을 바라보며 120여 년 전 민중들의 삶을 걱정했을 녹두장군을 생각해 본다. 

호남벌의 가을들녘에 붉은 노을이 들면 그 또한 장관인데, 입가에는 대학시절에 불렀던 노래가 절로 웅얼거려진다.  
‘녹두장군 말달리던 호남벌에서 황토길 달리며 우리 자랐다. 노령의 힘찬 산맥 정기 받아서
바위같이 굳세게 힘을 길렀다. 눈보라도 지나고 쇠사슬 풀고 온 누리 달리던 우리 형제들
갈기갈기 찢어진 깃발을 안고 얼싸안고 춤을 추며 노래 부르자‘
 동학농민혁명을 동학농민운동이라고만 불러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동학혁명을 기념하는 기념탑 하나만이라도 겨우 세워 두었던 곳은 정읍의 황토현 한 곳이었다. 
그러다가 1982년 여름에서야 광주학살로 호남의 민심을 잃은 전두환 정권은 인심 쓰듯이 지금의 황토현에 기념관을 건립하였다. 전봉준 장군이 자신의 가문이라 내세우기 위해서라는 이야기도 회자되었다. 
어떻든 동학을 기념하고 동학농민들의 얼을 이어오기 위해 애쓴 고장은 정읍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무관심 받던 동학농민혁명이 세상에서 제대로 조명받기 시작하면서 여러 지방이 동학의 역사를 자기 고장의 유산으로 각인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버렸다. 
각 고장마다 기념비석이 세워지고 관광 안내판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고부봉기, 황토현 전투로만 각인되었던 동학농민혁명이 무장봉기, 전주확약, 우금치 전투 등 여러 각도에서 각인되고 있다. 물론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는 데에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국가기념일을 제정하면서 각 지방마다 지역이기주의가 팽배해 있는데에 있다. 각자의 지역을 각인시키는 날로 기념일을 정하려는 아전인수식의 주장이 아직까지도 기념일 제정을 가로막고 있다.
 우선 기념일을 자기 지역에 관련된 날로 정하려는 지자체의 의도는 무엇인가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국가기념일이 제정되면 해마다 기념일에 기념행사를 하고 또 그 정신을 계승하는데 있어 시설확충이나 연구.학술 등에 지원하는 예산을 집행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자기 지역을 내세우는 것이라고 본다. 
역사적으로 자랑스러운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진정 계승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기념일을 올바르게 제정하는 데에 앞장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역으로 예산집행이 넘어 가지 못하도록 전력을 다해 막아내는 데에만 전념하고 있는 볼썽사나운 모양새다. 
 그럼 동학농민혁명의 올바른 기념일은 고부봉기, 무장봉기, 황토현 전승일, 전주확약일, 우금치 전투일 이중 어디로 정하는 것이 올바른 일인지 다른 여러 기념일을 참고하여 생각해 보자. 삼일절이 3월 1일 하루만 하고 끝난 운동이 아니다. 
몇 달 동안 전국에서 만세를 부르다가 많은 국민들이 일본군의 총칼 앞에 쓰러지고 투옥된 운동이다. 처음 서울에서 33인의 독립선언서 낭독은 그리 희생이 크지도 않았다. 오히려 제암리에서 많은 국민이 희생되었다. 
규모면에서도 3월 1일보다는 지방에서의 규모가 큰 곳도 있었다. 그런데 왜 3월 1일로 정했는가? 바로 삼일운동의 시초가 3월 1일이었기 때문이다. 
5.18민주화운동도 5월 18일 시작하여 열흘 동안 광주시민이 군사정권에 맞선 민주화운동이었다. 시민군이 도청을 점령한 날을 기념일로 삼지 않고 여기도 시초일인 5월 18일을 기념일로 제정하였다. 우리나라만 그렇게 정한 것이 아니다. 
세계사에서 가장 의미가 있는 기념일이 프랑스대혁명 기념일이다. 7월 14일은 1789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날이다. 바르세이유 궁전을 함락시킨 날도 아니다. 프랑스 대혁명도 다 완성하는 데에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2차봉기, 3차봉기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날은 혁명에 최초로 불을 지핀 날인 것이다. 
살펴보았듯이 그럼 동학농민혁명기념일은 언제일까 답은 나와 있다. 바로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최초로 보여준 고부봉기가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보고, 그 날을 기념일로 제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고부봉기를 다른 지역이 반대한다 해서 황토현 전승일을 타협책으로 주장하는 정읍지역에서의 주장을 이해는 하지만 가장 명분이 있는 주장은 고부봉기여야 한다.
 무장봉기를 기념일로 주장하는 것은 5.18 광주에서 광주시민들이 금남로에서 계엄군과 대치한 날을 기념일로 하자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전주확약일을 기념일로 하자는 주장은 광복절을 건국절로 하자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우금치 전투일을 기념일로 하자는 것은 5.18기념일을 계엄군에 진압당한 날로 하자는 것과 같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후세에 올바르게 남기려는 노력이다. 동학농민혁명의 유산을 찾아내고 발굴하여 보존하는 일과 그 정신의 올바른 정립에 앞장서야 할 때이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몸소 보고 배울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에도 전념해야 한다. 지금의 황토현 기념관은 방치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동학농민혁명 계승사업이 지지부진한데도 언제까지 지역이기주의에 사로잡혀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일에 비토를 놓을 것인가? 
지자체가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을 돈이 되는 사업으로만 인식하는 한 국가기념일 제정은 십년이고 백년이고 힘들 것이다. 국가기념일 제정에 숨겨진 비밀이 제발 돈 문제가 아니길 바란다.

-최낙운 
-본보 칼럼위원
-sky학원장-전 고려대 정읍향우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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