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사람들은 뛰고 있다. 남녀 할 것이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은 걷고 있다. 뛰는 것과 걷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특히 이곳의 여성들은 하나같이 뛴다. 그것도 남자들과 똑같이 뛰고 있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습관화된 탓이 클 것이라고 생각됐다. 과거 우리나라서는 여자애가 뛴다고 혼냈던 적도 있다. 우리가 상투 틀고 머리 기르고 그것을 매만지며 당쟁 등으로 시간을 허비 하고 있을 때 이들(캐나다를 비롯한 미국, 유럽 등의 선진국)은 머리 자르고 간결한 자림에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 결과의 차이는 엄청났다. 익히 아는 사실이다. 
당시 조선의 형세는 대원군의 쇄국정책도 문제였지만 그전부터 갑론을박, 네편 니편 가르고 싸우고 있었다. 그럴 때 이들은 문호개방, 남녀차별 없이 기회균등까지 그리고 세계화를 향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한국적인 맛과 선(線) 있는 기와와 서까래가 아름답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실용적이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손이 많이 가고 번거로운 것들이 우리나라의 것들에서는 많다. 좋은 점도 있지만 불편한 것도 많다. 우리가 기와와 짚으로 지붕을 덮고 매년 해갈이를 해야 할 때, 이들은 돌로 집을 또는 섬세하게 또는 아름답게 튼튼하게 백년만년 묵기로 건축물을 만들어 내 놓았다. 
그래서 지금도 그들은 그것 하나로도 먹고 살 수 있는 고부가가치의 관광 상품이 되었다. 짓는데 얼마나 걸리고 애썼는지 알 수는 없으나 천만년까지 쓸 수있는 재료로 웅장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 덕분에 자손들에게 돈벌이를, 국민들에게는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었다.

지난 9월 하순경 캐나다 몬트리올서 마운트 로얄 살롯(Mount Royal Salortmm)을 오르면서 많은 것을 보고 또 느꼈다. 특히 신체 건강한 여인들이 뛰는 것을 보면서 더 고민이 많아졌다.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들이 많을수록 가정이건, 회사이건 국가이건 탄력을 받고 힘이 되는 것은 진리 같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이라는 나라에도 거지도 많고 담배꽁초를 잔디밭에 버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문제성 있는 사람과 부족한 사람, 이기적인사람, 기부도 안하는 사람, 세금 한 푼도 안내는 사랑들도 적지 않은 것도 맞다. 하지만 그 숫자보다 그 반대의 정상적인 사람과 오피니언 리더층이 사회곳곳에 더 많기에 그들은 성장하고 선진국이 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 캐나다의 몬트리올뿐만 아니라 대부분 선진국이라는 나라를 살펴보면 여성들도 남자들과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가 있었다. 요즘 한국에서도 육사를 비롯한 다양한 곳으로 여성들이 지원 입대하는 것을 보고는 있다. 
하지만 미약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지난10월 6일 퀘백에서도 단체로 호텔에 묵으면서 행사를 하는 무리들 속에서도 똑같이 퀘백성 주변을 뛰고 달리는 여성들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여행 중 이렇게 많이 운동을 하는 캐나다 여성들을 보고서 기자는 과연 대한민국 여성들에게 우리는 다소곳이 아름다움과 전통을 지키자고 또, 보존하자고 주장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됐다. 남녀 차별과 부당 대우 철폐를 부르짖고 여성귄리를 신장받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또한 정부 부처에 여성부까지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여성이 남성에게 비해 뒤처진 현실은 눈에띄게 개선되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인지 다함께 냉철하게 되돌아 볼 필요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선진국이 그냥 선진국이 아닌 듯싶다. 경제적인 살림살이가 조금 더 좋아졌다고 선진국은 절대 아니다. 한국 사람이 잘 사용하는 말이 있다. 졸부라는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많은 돈을 벌었는데 하는 행동이 개차반이고 상식이하의 행동을 하는 사람을 통칭해 비하하는 말인 것이다. 
선진국 사람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베푸는 혜택도 싫어한다. 실용주의와 합리적인 사고에서 비롯된 행동에는 인정주의 같은 것은 통하지도 않고 전혀 없다. 한국적인 사고로 보면 왕 싸가지 같은 행동이 많은 것이다. 더치페이도 그중하나 일 것인데 따지고 보면 매우 합리적인 것이다. 
그런 저런 의미에서 과연 한국 여성들의 여권신장과 지위는 저절로 이루어 질수 있을 것인가와 그렇게 돼야만 하는가? 아니면 정당하고도 합리적인 여권신장은 앞으로 어떻게 가야하는가 등? 또 세계화시대에서 대한민국 여성의 지위와 경쟁력은 어디까지 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그래서 요구되고 필요한 시점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이는 미국과 캐나다를 여행하면서 이들 여성들의 행동거지를 줄곧 지켜보고서 기자 나름대로 생각을 해 본 것이다. 기자의 이런 생각 또한 여성 비하내지는 편견이라고 흠집을 내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자는 보고 느낀 바는 꼭 전달해야겠다. 그래야 여권신장은 물론 국가경쟁력을 제대로 준비하는 미래가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도약이 곧, 국가경쟁력에 원천이자 대안책일 수도 있기에 더 더욱 그렇다.
기자는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했을 때도 후버빌딩서 FBI요원들이 훤한 대낮에도 둘 셋씩 건물 2층 주변복도를 뛰는 여성들과 남성들을 여러 번 보았다. 아니 내가 워싱턴DC로 1주일간 출근 할 때마다 그런 모습을 매번 보았다. 
그럴 때마다 이 나라에서는 영화에서도 보았듯이 남자, 여자의 구분이 없다고 확인했던 것이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은 스스로가 나는 여성이니까, 남성보다 약하다거나 질것이라는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훈련서도 그러할 것인데 당연히 직장에서 또는 상하관계에서도 여성보스에 비아냥 부리려는 남성 부하도 없을 것 같았다. 
남녀차별을 생각해보지 않았던 오랜 전통 속에서 자랐던 그들은 그에 걸맞은 권리를 누리는 것 아닌가도 싶었다. 정보화 세계화속에 나약한 생각만으로는 한국은 그들을 따라 잡을 수가 없다. 움직이지 않고 뛰지 않는 한, 우리는 또 과거처럼 뒤쳐질 수밖에 없다. 똑같이 행동하고 실천해도 늦을 것이다. 그 이유는 대한민국은 땅덩이가 작고 인구를 비롯한 자원이 크게 부족하다. 체력은 국력이라고 했던 시절이 그리워지려고 한다. 
때가 때인 만큼 가난한 시절만 해당되는 낡은 구호가 아니다. 이제는 운동 잘하는 사람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협동심이 좋고 공부도 잘하고 일도 잘한다. 달달 암기하는 머리와, 협동심과 창의성 없이 독불장군 마냥 머리만 굴리는 사람은 이제 필요 없는 세상이 돼야한다. 토론을 통해서 상대의 존중함을 배우고 합리와 객관적 자세를 형성해 나가야 우리의 미래도 밝아 질 수 있다. 
또한 운동 즉, 체력을 통한 협업적인 협동과 단합심을 배우고 인내를 통한 공동체라는 것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이끌어 가는 세상이 돼야 경쟁력이 많다고 본다. 그런 시기이다. 
그래서 땀을 흘린 사람들이 정치도 기업도 합리적으로 잘 풀어 나갈 수 있다. 선진국들의 공통점도 다 그런류 형이 많았다. 남녀가 함께 걷는 것과 뛰는 것은 엄청난 차이다.
다함께 선진국과 캐나다 여성들이 오래전부터 뛰는 현상에 대해서 늦었지만 진지한 관찰과 고민이 있었으면 한다. <캐나다 현지서 김태룡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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