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눈이 좋다

사흘이고 나흘이고

호남벌 배들평야에서 내장산까지
허벌나게 내리는 정읍눈이 
나는 좋다

밤새 함박눈이 마당에 사복사복 내리면
홍어회평에 막걸리 한 잔 마시고선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사랑가 한 두 소절을 웅얼거리시던
그 옛날의 아버지가 생각나는 정읍눈

한번 쏟아 붓고 나면 깡깡하게 얼어버리는 강원도 눈보다도
나무에 달라붙어 강추위에 얼음 꽃을 만드는 한라산의 눈보다도
한 번 겁나게 내리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 듯이 
한 동네 이웃인심처럼 바람도 포근해서는
하루 이틀이면 다 녹아버리는
정읍눈이 나는 좋다

잊을 만하면 연락오고 찾아오는 친구마냥
다 녹고 나면 다시 찾아와서 쌓인 정 다 풀듯이 
허벌나게 또 내리는 정읍눈
드넓은 호남 벌을 한 순간에 깨끗한 도화지로 만들어
사랑하는 연인들이 손잡고 발자국으로 그림을 그리게 하는 정읍눈
내장산 기슭에 겨우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홍시 위에
친구처럼 살포시 얹혀있는 
정읍눈이 나는 좋다

안 오면 연인 기다리듯 기다리게 하고
퍼부으면 옛 친구 보듯하고
하얀 들판 길을 사랑하는 사람 손잡고 
또 다시 걸으며 눈 위를 뒹굴고 싶게 하는 정읍눈
고향집 마당에 밤새 내려주면
막걸리 한 잔 홍어회평 안주에 
사랑가를 부르시던 아버지가 그립게 하는
내 사랑 정읍눈이 
그래서 
좋다 

최낙운 본보 칼럼위원
sky학원장
전 고려대 정읍향우회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저작권자 © 정읍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