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이 설국이다. 눈은 설을 좋아한다더니 설 목전에 내린 눈은 감정적으로 더 아름답다. 아직도 여린 감성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비록 하루가 다르게 육신과 영혼이 무디어가지만 그래도 내 안에 다소나마 따뜻한 감정의 숨결이 남아 혹한과 각박한 세상의 아픈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음은 그나마 다행이다.

 산과 들, 온통이 설국인 풍경을 마주하다보면 찬란함에 눈이 시리다. 내줄 것 다 내어주고 마지막 남은 순백의 결정체, 그것은 바로 아가페적 어머니의 마음같다. 이처럼 숭고한 순수의 절대치 앞에서 한 시대를 공유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이 눈처럼 하얗으면 좋겠다. 겸손하고 포근한 어머니의 마음이었으면 참 좋겠다.
 오늘도 광화문 광장에는 예외 없이 수십만 개의 촛불이 어둠을 밝혔다. 혹한과 눈보라에도 아랑곳없이 ‘박근혜 퇴진’과 국정농단의 무리들을 구속하라는 시민들의 함성은 여전하다. 자칭 보수의 탈을 쓴 일단의 극우세력들은 좌우대립의 진영논리를 들먹이며 발악하듯 물타기 작전에 골몰하고 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사즉생의 항전과도 같은 그들의 광기에 측은지심의 비애가 묻어난다. 감히 경고하건데 이 싸움은 정의와 불의의 대결이고, 부패권력과 성난 민심의 충돌이란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으로 통칭되는 박근혜게이트는 날이 갈수록 가관이다. 양파껍질도 이런 지독한 양파는 처음 본다. 혹자는 요즘 뉴스 보는 재미가 인기드라마를 능가한다고 함박웃음이다. 자고나면 터지는 새로운 비리들의 발호에 호기심이 발동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런대도 당사자인 비리의 주범 박근혜는 안방 문을 걸어잠근 채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시간 끌기에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강추위에 내몰린 국민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자신의 비리는 날이 갈수록 산더미처럼 쌓이는데도 한결같이 마이동풍에 마이웨이다. 필자의 독설이 조금 지나쳐보일지 알 수 없으나 이 뻔뻔스런 민낯 앞에 청와대나 대통령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신물이 나고 부아가 치민다. 참말이지 그의 말대로 ‘국가와 결혼했고 국민을 사랑한다.’는 마음이 단 1%라도 남아있다면 지금 즉시 대통령직을 사퇴하고 석고대죄의 심정으로 법의 심판대에 서는 것이 대국민 봉사의 마지막 기회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 와중에 박근혜사단의 대원군과 신데렐라 김∙조의 몰락은 그나마 상처받고 피폐한 민심에 청량제 구실을 톡톡히 했다. 문학과 예술의 자유조차 부정하고 핍박한 주홍글씨의 블랙리스트는 현대판 살생부에 다름 아니다. 한편 보편타당한 상식의 결과물을 획득하기까지 이처럼 멀고 험난한 여정을 감내해야하는 작금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에 반해 삼성 이재용의 면죄부는 부패권력과 재벌유착의 공생관계를 여실히 증명하는 단적인 증거다. 만약 이번 특검에서 고질적 패악을 청산하지 못한다면 당분간 재벌개혁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이에 특검도 비장한 각오와 사명감으로 영장 재청구 등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수구세력들의 반기문 띄우기가 예사롭지 않다. 하지만 반의 지지도는 정체와 추락의 선상을 맴돌고 있다. 설익은 정치초년생의 검증되지 않은 허접한 정치력이 도마에 오른 이유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그 나물에 그 밥’인 까닭이다. 정권교체나 정치교체 둘 다 국민이 원하는 바다. 문제는 정권교체를 통한 정치교체의 혁신을 국민들은 갈망하고 있다. 차제에 국민의 충정으로 덧붙일 한 가지가 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조항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향후 출범할 차기정권은 특사를 남발하지 말라는 것이다. 전두환이 그랬고 노태우가 그랬다. 용서와 화해의 차원을 빌미로 은전처럼 남발한 특사가 오늘날 이 지경의 위태로운 한국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우리 국민들은, 아니 민심은 부녀왕국을 꿈꾸며 역사를 왜곡하고 국정을 농단한 철면피 박근혜의 마지막이 어떤 몰골인지를 똑똑히 확인하고 싶다. 그래서 그 비극적 대물림의 허황된 공명심을 반면교사로 삼고 싶다.
 헌재의 보폭이 빨라지고 있음은 그나마 다행이다. 더 이상 죄 없는 선량한 국민들을 광장으로 내몰아 추위에 떨게 해서는 안 된다. 마음 같아선 이 달 내 탄핵이 용인되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겠지만 늦어도 다음 달에는 용인이 되어야 그나마 국력낭비와 국제적 위상실추를 극소화 할 수 있다. 이에 헌재는 ‘경제보다 정의의 실현을 우선해야 한다.’는 특검의 말을 귀담을 필요성이 있다.
 또 눈앞에 설이다. 이번 명절도 오순도순 둘러앉아 해맑은 웃음으로 덕담을 주고받으며 내일의 꿈과 희망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설을 기대하기에는 사치일 것 같다. 이 우울한 명절의 수묵화와 언제쯤이면 결별을 고할 것인지, 어차피 골이 깊으면 산도 높은 법이다. 아직 우리에겐 살아가야 할 내일이 있고 꿈을 버리지 않는 한 또 희망의 촛불은 우리 곁에서 오래도록 타오를 것이다.
 안팎으로 혼란스러웠던 지난 한 해 모두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설 명절 다복하십시오!  

-최광림
∙본보 논설∙칼럼위원
∙시인∙문학평론가
∙토요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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