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자리 만들기에 총력을 쏟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로 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가운데 여전히 3D업종을 비롯한 중소업체 그리고 소상공인들에게는 그림의 떡과 같은 공허한 외침 소리로만 들리고 있다.

일자리 부족도 부족이지만 일손을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서로간의 이해충돌적인 요소가 적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 가운데 정읍시내에서 30여년을 줄곧 100m내외를 전전하며 한길을 걸어온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김동섭(63/사진)씨로 현재 세무서 앞에서 동산방 표구사의 대표이다. 표구는 작품(그림과 서예)을 돋보이게 만들어 주는 예술작품이다. 그림이나 서예처럼 말이다. 또 작업을 하는데 있어 어느 공정 하나 심혈을 기울이지 않는 곳이 없다. 
표구사가 단지 표구를 만들어주는 곳이 아니라 작품의 가치를 높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라는 생각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런가하면 표구는 생필품이 아니기 때문에 경기를 많이 탄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생활하는데 별 지장이 없기 때문에 경기가 안 좋을 경우에는 어려움이 많다. 그래서 표구사란 장인의 길을 걷겠다는 젊은 사람들도 없어 조만간 맥이 끊기게 생겼다고 한다.
그런 외길인생을 걸어온 그는 요즈음 정읍시립박물관과 미술관, 고창판소리미술관의 소장되는 표구 일을 전담하고 있다고 했다.
표구를 잘하기란 쉽지 않다고도 했다. 쉬운 것 같으면서도 신경이 많이 쓰인다는 것.  
전두환 대통령시절만 해도 정읍관내에는 7군데의 표구사가 존재 했다. 그러나 이제는 대성표구사와 둘뿐이라는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시절부터 차츰 차츰 어려운 시기로 갔는데 김영란법까지 생겨나서 밥 먹고 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관내에서 역시 작가들이 활동이 없는 탓도 크다고 했다. 정읍에서 그나마 활동하는 서예작가로는 배선옥씨와 지암뿐이라고도 그는 전했다. 
김정섭씨는 줄포중학을 졸업 한 후 곧바로 전주에서 표구사 장인의 길에 뛰어 들었다. 정읍과 전주에서 집안 누나 한분이 동양자수를 업을 했던 것이 그가 표구 일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도 했다. 결국 김씨는 배운 것이 이것뿐이라 쇠락의 길을 가는 상황에서도 달리 도망갈 곳도 이제는 없다고 그는 씁쓸해 했다. 
그나마 80년대 당시는 직접 틀을 짜고 색칠을 할 때가 좋았다고 회고를 하기도 한다.
지금은 공장서 거의 품질이 향상된 완제품으로 만들어져 나와서 수공의 댓가(마진이익)별로다고 그는 말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알면 스승이 될 만하다."는 말, 子曰 溫故而知新(온고이지신) 可以爲師矣(가이위사의). 
세상에 쉬운 일은  단 하나도 없다. 옛것 아니, 오래된 것에서 그와 젊은이들이 또 다른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빌어 본다. 아무튼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와 인공지능시대에서 그래도 버틸 수 있는 정신은 아마도 장인의 길이 아닐까 싶다.<김태룡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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