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서 진짜 자전거 천국을 만난 것 같았다. 노르웨이서도 현지가이드가 자전거도로에서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그런데 코펜하겐서도 현지가이드 김현숙씨는 매우 강도 높게, 도심 자전거도로에서 사고가 나면 보상을 받지 못한다며 자전거가 오면 무조건 피하라고 전했다. 자전거는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전거는 멈추지 않는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으며 부럽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기에 그랬다. 어쩌다 와곽지역에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어 놓았다고 해도 그 정도로 엄격한 법규범이 마련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코펜하겐 공항을 가는 길에 기자는 전철역 입구에서 엄청난 자전거를 보았다.<사진

참조1> 자전거 보관대를 비롯한 주변에는 셀 수가 없을 정도의 엄청난 자전거가 되돌아올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럽과 연결된 중앙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과 캐나다를 발로 걸으면서 또는 버스와 전철을 타고서 184일, 6개월 이상 돌아 다녔어도 그렇게 많은 자전거무리를 본적이 없었다.
도저히 셀 수가 없을 만큼의 자전거가 보관되어 퇴근 후에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사진2>
비가 오는데도 이곳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현지가이드의 김씨의 말에 의하면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이곳 사람들은 자전거가 생활화됐다고 했다. 태어나서 제일 먼저 받는 큰 선물은 남녀가 빨강과 파란색의 자전거를 받는다고 했다. 
유치원 때는 경찰관의 지도하에 자전거 교육을 받는다고 했다. 이렇게 덴마크 정부는 자동차 보다는 자전거를 타도록 권장하고 있는데, 우리네처럼 말로만은 아닌듯 보였었다. 
눈이 올 때면 자전거도로의 눈을 맨 먼저 치울 정도라고 한다. 상황이 우리와는 크게 달랐고 정반대였다. 
눈이 오면 자동차도로를 우선으로 눈을 치우는 실상과는 엄청난 생각과 환경의 차이다. 말로만 지구환경을 보존 하자고 말하는 지도자들의 빈말이 공허해 보이는 한국의 실상과 정책들이 부끄러워지는 대목이다. 
그런가하면 지난주 KBS1스페셜에서 방영된 이곳 덴마크의 정치인의 유권자들과 소통 또한 정치인들과의 협치하는 것이 무엇인지의 현장을 살펴봤다. 그리고 정치인들의 공약이 빈공약이 아닌 것을 덴마크 정치축제의 현장프로그램을 통해서 또 다시 확인이 됐다. 

기자가 공항으로 이동하는 중에 큰 사거리한 곳에서는 자전거 신호등도 자동차와 보행자와 마찬가지로 뚜렷하게 한자리를 자치하고 있는 것도 확인을 했다. 
그만큼 이 나라에서는 자전거타기 좋은 환경이 곳곳에서 잘 만들어진 것이다. 코펜하겐 시내 중심가에서도 자전거 타기가 좋은 전용도로가 참으로 많았다. 
또한 자전거타기 좋은 한경을 만들기 위해서 자동차들의 일방통행로가 적지가 않았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현지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그래서 덴마크시민들은 자전거를 많이 타며, 멀게는 48km의 거리에서도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고도 말했다. 
정읍서 전주 효자동까지의 거리를 자전거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자전거 복장에서 근무복으로 교환과 샤워까지도 가능한 편의시설이 잘 됐다고도 했다.
유ˑ무료 공영주차장에 차를 맡길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귀담아 들어 보았으면 싶다. 비가림 시설도 없는 코펜하겐 역사마다 세워진 무수한 자전거를 바라보면서 기자는 많은 생각이 교차됐다. 무엇이 우선해야 할 것들인가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한 공익적인 투자가 돼야 하는지, 그리고 교육을 왜, 우리가 항상 받으며 또, 배우고 학습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말이다. 
덴마크를 살린 두 국부가 있다. 한분은 달가스 대령이고, 그 이전부터의 정신적 지주였던 덴마크 건국의 아버지이자 교육자였던 그룬트비 목사이다. 기자는 이 두 분 중에 국민계몽 등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그룬트비의 삶에 대해서 코펜하겐 현장에서 들은 가이드의 말에 추가하여 조금 더 공부를 해보았다.
오늘의 덴마크가 무엇 때문에 세계최고의 복지국가로 또한 척박한 기후환경에서도 살기 좋은 나라가 됐는지를 또 살펴 본 것이다.<김태룡 대표기자>

<참고> 덴마크 건국의 아버지, 니콜라이 프레데리크 세베린 그룬트비(Nikolaj Frederik Severin Grundtvig, 1783년 9월 8일 ~ 1872년 9월 2일)는 덴마크의 신학자, 루터교 목회자, 시인, 민족운동가, 역사가, 민속학자, 정치가, 저술가, 교육자, 교육학자, 철학자이다.
엔리코 달가스(Enrico Mylius Dalgas, 1828년 6월 16일 - 1894년 4월 16일)은, 덴마크의 부흥 운동가다.
1864년에 덴마크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 지고 국민들이 실의에 빠져 있을 때,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찾자"고 국민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으면서 황무지 개간에 앞장섰다. 그의 열성에 감동한 국민들이 그와 함께 모래땅에 나무심기를 거듭한 끝에 거친 국토는 푸른빛으로 바뀌었고, 이로써 덴마크 부흥의 기틀이 다져졌다.<인터넷서 가져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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