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화 칼럼+ 네모사진
다산초당이 초당 대신 기와로 바꾼 이유

주말인 지난 4일(토) 정읍시 기적의 도서관 관계자들과 함께 ‘한 권의 책’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시인 영랑 김윤식 생가를 방문해 영랑의 일대기 공부와 함께 영랑이 시를 썼던 소재와 장소들을 둘러봤다.
일제 강점기때 온갖 압박에 굴하지 않고 버텨온 시인 영랑은 이제 강진군의 관광 메카로 자리잡았다.
강진사랑으로 가득한 해설사의 구수하고 맛깔스런 설명은 듣는이의 가슴과 귀를 사로잡았다. 
이어 들른 곳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체취가 어린 다산초당과 백련사였다.
다산이 다산초당에서 백련사까지 왕래했다는 오솔길을 걸으며, 다산이 살았던 그 당시를 생각하며 현대적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도 가졌다.  
한가지 관심이 가는 부분은 다산초당(茶山草堂)이다. 말 그대로 짚으로 지어진 초당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다산초당은 기와로 덮혀져 있었다.
다산초당은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된 후 1808년 봄에 거처로 옮긴 뒤 1818년 9월까지 10년동안 후학을 가르치고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등 600여권의 책을 저술한 곳이다.
이후 다산초당은 노후돼 붕괴됐고 다산유적보존회에서 1957년 복원했다. 현장 해설사는 ‘다산초당’이 초당이 아닌 이유를 수차례 설명했다. 
당시 복원하면서 초당이던 것을 관리의 편의를 위해 기와로 지붕을 이었으니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김생기 시장은 지난 13일 2017년 예산안 제출에 따른 시정연설을 통해 어려운 재정여건을 언급하며 불요불급한 부분은 과감히 없애고 재정의 효율화를 꾀했다고 했다.
사회복지분야 국·도비 보조금에 대한 시비 부담금과 각종 시설물에 대한 운영비 증가 등으로 해마다 시가 부담해야 할 사업비가 증가되어 지역발전 및 시책추진에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사용예산도 부족한데 매년 의무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예산과 그동안 수없이 지어놓은 시설물을 관리하는데 부담이 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여전히 지금도 새로운 사업만 시행되면 새로운 시설인 고정자산을 늘어만 가고 있다. 예전 복지회관을 커뮤니티센터로 이름만 바꾸어 새 건물을 짓는 것은 물론 국비 공모로 추진되는 상당수 사업 역시 지원되는 큰 돈을 한꺼번에 집행하기 쉬운 것이 건물 신축이기 때문이다. 당초의 의미도 저버린채 관리 문제를 들어 기와를 이은 다산초당의 예처럼 우리도 조만간 이들 건물의 새로운 용도를 찾는데 고심해야 할 때가 임박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농악인 갈등 대면조사후 어떻게 달라졌나?

정읍지역 농악인들의 갈등 해소를 위해 전북도와 문화재위원들이 정읍을 찾아 해결방안을 제시한 후 2개월이 가까워진다.
9월 21일과 26일 2회에 걸쳐 농악인 대면조사를 거친 후 해결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당시 조사는 1999년 ‘소고’로 전북도 문화재로 지정된 김종수(7-2)씨 문화재 지정후 불성실하게 활동하고 정읍농악과의 정통성도 안맞으니 문화재지정을 해지하라는 주장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이날 조사 대상은 유지화씨와 김종수씨 등 도지정 문화재 보유자와 제자들, 정읍우도농악보존회 임원들이었다.이틀간에 걸친 조사를 거쳐 관계자들이 내놓은 갈등 해결방안은 크게 세가지였다.
정읍우도농악보존회의 정관을 개정하고 회장의 임기를 2년으로 정해 새로운 회장이 돌아가며 보존회를 맡도록 한 것이다.
이밖에도 사외이사와 외부감사를 선임해 투명한 운영도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이번 해결방안은 수십년 갈등을 벗고 새로운 화합과 발전의 길로 나갈 수 있을 것인지를 가늠하게 할 것으로 보여 이들의 실천여부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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