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사 망부석, 과연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주)정읍신문l승인2020.11.22l수정2020.11.22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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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안도현이 말했다. ‘정읍은 세 가지가 뜨겁다.’고. “갑오년 백성들의 혁명의 불길이 뜨겁고, 가을날 내장산의 활활 타는 단풍이 뜨거우며, 천년을 기다려 온 ‘정읍사’ 여인의 사랑이 뜨겁다.” 정읍사는 정읍을 구성하는 중요한 문화요소가 된다는 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정읍사 망부석의 위치에 대한 논란이 학계를 중심으로 다시 일고 있으나 그 주장들이 하나같이 사료(史料)에 근거한 주장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 주장과 해석이 너무 자의적이어서 우려하는 바가 크다. 

망부석, 북면 ‘월붕산(月朋山/달을 벗 삼았다)’에 있었다

현전하는 조선시대 이전 망부석 관련 사료가 없다. 다만 조선 중종 때 쓰여 진 『신증 동국여지승람』에 망부석이 “재현북십리(在縣北十里)”에 있다는 기록이 유일할 뿐이다. 따라서 이 기록을 바탕으로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면 될 일이다. 

첫째, 󰡔동국여지승람󰡕이 각 군현에서 수집해서 중앙정부에 올린만큼 망부석의 위치를 백제 때 정해마을이 아닌 조선시대 관아가 있었던 현 정읍시 장명동사무소(정읍경찰서와 정읍여중 자리 포함)를 기준으로 북쪽 10리를 살펴봐야 하는 것은 상식에 가까운 일이다. 『동국여지승람』에 현청자리가 어디인지 기록해 놓지 않았으나 각종 거리가 표시된 곳에서 역산하면 현 장명동사무소 근처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실제로 󰡔동국여지승람󰡕은 모든 지명이 현 장명동사무소를 중심으로 거리표시가 되어 있다. 

그럼 북쪽을 지금의 어디로 봐야 하는가? 그 해답이 바로 최초의 지명 자료인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 있다. 북면은 말 그대로 정읍의 북쪽에 있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다. 이와 같이 군현의 치소를 중심으로 관할구역을 동·서·남·북으로 나누는 것은 행정관리상 편리하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해 오던 방식이었다. 그렇다면 망부석이 있어야 할 곳을 북면 쪽에서 살피는 것 역시 상식에 가까운 일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10리라는 거리가 지금 북면의 어디쯤에 해당 되는지 살펴야 할 일이다. 조선시대 1리는 제도상 420m였으나 실제로는 562m(󰡔대동여지도󰡕)였다. 그렇다면 장명동사무소에서 북쪽으로 10리, 즉 5.6㎞ 지점이 망부석의 위치로 비정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두루 따져 볼 때 필자는 북면 금곡(錦谷) 마을 뒷산인 월붕산(月朋山/국립지리원 정읍지형도)을 망부석의 위치로 비정하였다.(「정읍신문」, 2001년 5월 31일자 보도). 이를 뒷받침하는 사료가 바로 『정읍군지』와 『고장생활』이다. 장봉선(張奉善)이 1936년에 쓴 『정읍군지』에 “망부석은 북면과 정우면의 경계지점 일등도로변에 있다.”고 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망부석에 관한 이야기를 ‘세전’(世傳登岾望夫石)이라 표현했으니 ‘세전’은 기록자 자신이 직접 답사해서 확인한 것이 아니고 들은 대로 구전된 것을 적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1959년에 나온 『고장생활』 정읍편에서는 앞선 기록의 내용이 아닌 실제 충실한 조사가 이뤄졌던 것으로 보인다. 1959년에 나온 『고장생활』 정읍편에서는 “북면과 정우면의 일등도로를 찾아가면 망부석이 서 있으니 이곳은 오랜 세월에도 남북으로 통하는 큰 길이었는데…”라고 표현함으로써 1959년까지도 망부석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규 10770)에 소장되어 있는 전라북도 각군읍지 「정읍현 지도」에도 금곡마을 맞은 편 승부마을이 북 10리로 명확히 표기되어 있다. 이러한 망부석에 관한 기본사료가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들이 이를 검토하지 않고 덕천 천곡으로 몰고 가는 억측에 가까운 주장을 하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다. 여기에 동조하는 사람들 또한 그 저의가 심히 의심스럽다.

망부석의 위치가 북면 ‘월붕산(달벗산/달벗뫼)’이라는 사실을 필자가 사료로 입증하고 있는 만큼 소모적인 논쟁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따라서 ‘망부석 공원’을 ‘월붕산’에 조성하고, 망부상을 옮기는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현 공원은 정읍사 공원으로 그대로 유지하면서 시민을 위한 휴식처로 개방하거나 시내에서 접근성이 좋은 만큼 ‘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하면 될 것이다. 

- 김재영(사단법인 한국향토사연구전국연합회 부이사장/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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