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독자투고

  정읍신문 제1499호(2020.11.18.)에 기고된 한국 향토사 연구회 김재영 문학박사님의 “정읍사 망부석, 과연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라는 기고 글을 읽고 다른 견해를 개진코자 한다.
 정읍사 여인이 살았었다는 곳이 지금의 정해마을(샘바다)이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여러 고증으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금의 정해마을은 거슬러 올라가 백제시대 때 정촌현이 있었고 정촌현이 지금의 정읍시로 변천했다는 것도 엄연한 역사적 기록이다. 
백제 시대 때 정촌현에 살았던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한 여인이 행상을 나간 남편을 걱정하며 부른 노래가 정읍사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당연히 그 여인의 망부석은 정해마을 인근에 세워져야 맞다고  본다.
김재영 문학박사님께서 동국여지승람이 각 군현에서 수집한 자료를 근거로 했다고 하시면서, 현 정읍시 장명동 사무소를 당시의 관아인 현청으로 봐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 곳에서 북쪽 어딘가에 망부석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하지만 저의 견해는 다르다.
동국여지승람이 만들어진 조선시대의 군현을 기준으로 해석해서는 안되고, 동국여지승람이 적시한 군현은 조선시대보다 훨씬 그 이전인 백제시대의 현으로 해석해야 옳다고 본다. 그렇다면 백제시대 때 현청이 있었던 곳은 지금의 정해마을이 맞다. 따라서 정촌현에서 행상 나간 남편을 그리워하고 걱정하며, 그 당시 남편이 북향인 전주 방향에 어딘가에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10여리 정도까지 나갔다가 그만 망부석이 되었다고 하는 구전의 전설이 지금까지의 역사적 고증이다. 
또한 정읍시에서 오래전부터 추진해 왔고 현재 거의 완공단계에 있는 정촌가요 특구 역시도 정해 마을 인근에 조성한 것은 역사적 검증을 거친 위치 선정이었을 것이고, 그 곳에 망부석을 설치한 것 역시 역사적 기록과 구전에 합당한 위치 선정이었다고 본다.

           정읍을 사랑하는 안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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