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최낙운 본보 편집위원(sky학원장)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만큼 매미도 눈 뜨자마자 종일 울어대기 바쁘다. 불볕 태양이 내리쬐는 한여름, 매미소리 커져가는 만큼 여기저기에서 백일홍나무도 덩달아 꽃을 더 피워낸다. 언제부턴가 절에나 서원 그리고 묘지 옆에 있던 백일홍나무가 거리로 공원으로 터를 잡기 시작했다. 아예 전라남도는 백일홍나무를 가로수로 권장하고 있다. 고 김대중 대통령께서 생전에 즐겨 보았다던 백일홍나무를 생가인 하의도의 공원에 조성한다고 한다. 충북 음성군에서는 몇 년 전에 가로수로 심었다가 모두 추위에 고사된 적도 있었다. 백일홍나무는 한여름 내내 꽃에 영양분을 주느라 얇은 껍질이 말라 벗겨진다. 백일홍나무가 남도에만 유독 많은 이유는 백일홍나무가 껍질이 벗겨져 알몸으로 겨울을 나느라 추위에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충북 음성군처럼 백일홍나무를 심고 싶어도 심을 수 없는 지역이 많을 것이다. 백일 가까이 피고 지는 꽃이 이 꽃만 한 꽃이 없다보니 가로수로도 정원수로도 탐낼만하다. 더우면 더울수록 더 많이 꽃을 피워내는 꽃으로는 연꽃, 무궁화, 백일홍이 있다. 불볕 태양에 항거하듯 피고지고 지고피고를 매일 거듭하며 심장이 요동치듯 붉은 빛으로 살아있음을 과시하는 모습은 폭정에 맞서 쓰러지고 일어서듯 총칼에 맞서 횃불을 들고 촛불을 밝히듯 흡사 우리민족의 기질과도 같아 보인다. 연꽃이나 무궁화는 기승을 부리던 태양이 말복을 지나 수그러들면 찬바람 맞고 시들어버리지만 그 중에서도 백일홍은 청명한 가을 녘에도 고상한 자태를 쉬이 놓지 않는다. 

유독 서원이나 묘지에 백일홍나무가 많은 연유는 무엇일까? 서원이나 묘지에 백일홍나무를 심은 조상들의 맘은 떠나간 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태인면 출신인 충신 박문효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주까지 선조의 피란에 동행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개성전투에서 전사를 했다. 태인면에서 남편을 기다리던 부인 송씨는 비보를 접한 후 자결하였다. 태인면 서재마을에 있는 서현사지(전북 정읍시 태인면 서재길 13)는 훗날 순조 19년(1819년)에 이르러 이를 기리고자 세워 준 서원이었다. 고종의 서원철폐령으로 안타깝게도 몇 채만 남아있지만, 담장 안에는 수령이 이백년이 다 되어가는 백일홍나무 십여 그루가 여름철이면 사당의 처마마다 곱게 채색된 단청과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그들의 넋을 기리듯 매미는 하염없이 울어주고 담장너머 파란 하늘로 뻗어가는 수많은 백일홍 붉은 꽃송이들도 긴 세월 내내 때 되면 어김없이 그들을 기억하듯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봄이면 벚꽃으로, 가을이면 단풍으로, 겨울이면 설경으로 자연경관이 수려한 우리고장은 여름의 볼거리를 찾느라 고심이 많았다. 정읍허브원은 그런 고심의 흔적이자 방편이었을 것이다. 길어야 열흘이나 보름 피고 마는 꽃보다 한여름 내내 백일동안 풍성하게 피워내는 꽃이 지척에 있다. 서현사지의 백일홍은 우리고장 여름경관의 백미다. 연못 속에서 잠들어 있는 붉은 백일홍나무 한그루만으로도 유명한 진도의 운림산방에 견줄만한 곳이다. 또한 내장산 우화정 주변 그리고 내장사 일주문 지나 왼쪽에 있는 백일홍나무는 초록단풍잎을 병풍삼아 그 위에 빨간 마음 수놓듯 새아씨 마냥 화려하다. 최근에는 정읍문화광장에도 관상용으로 휴식처로 백일홍나무를 조성해 놓았다.

내장산조각공원의 백일홍나무도 서래봉을 바라보며 활짝 피어있다. 보림사의 백일홍, 북면 복흥보건진료소 맞은편에 있는 백일홍도 가볼만한 곳이다. 이렇듯 우리고장에는 아름다운 백일홍이 여기저기 가는 곳마다 활짝 피어 빼놓을 수 없이 아름답다고 자랑하고 다녀도 그리 과하지 않을 듯싶다. 새로운 것을 만들기보다 우리고장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내어 이를 활용하는 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 
 코로나가 물러가면 타지의 지인들을 불러 우리고장의 백일홍투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다.  백일홍나무 그늘에 앉아 호박전에 막걸리 한 잔 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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