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림 칼럼

 “나 정말 요즘 답답해서 미치겠어. 이러다가 우울증에 조울증도 올 것 같아.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즐기면서 넘겨야지.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더라.”
 해를 넘기고도 왕성한 번식력을 자랑하는 Covid-19 앞에 무력해진 한 지인의 푸념에 대한 필자의 담담한 응대다.
 요즘 날씨조차 이 천하에 몹쓸 괴질 병을 닮았는지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널뛰기가 한창이다. 한 며칠 잠잠했다가 갑자기 남극의 빙하기를 연상시키는 혹한과 폭설이 반복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말이지 갈 길은 아득하고 해는 저무는 격이다. 최소한의 사회적 활동조차 마비시킨 이 환란의 불씨가 마침내 경제마저 꽁꽁 얼어붙게 만들고, 고질적 주택대란에 치솟는 물가급등으로 최악의 삼, 사중고에서 악전고투하는 민초들의 올 겨울 자화상 역시 진행형의 암울한 수묵화다.
 이렇듯 극한의 상황에서 그나마 정치라도 제자리를 찾고 병들고 지친 국민들에게 위안이 되는 희망의 메시지라도 갈망했지만, 낯 뜨거운 셀프보신과 무차별적 쟁투로 사활을 건 회화적 작태에 일말의 작은 기대조차 접은 지 이미 오래다. 
 냉정한 눈으로 보자면 세상 무엇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다. 뒤틀리고 배배 꼬인 것 뿐, 온전한 것이 단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그만큼 우리는 중차대한 생존의 위기상황에 직면해있다는 반증이다.
 쉽게 말하자면 내가 사는 나라가, 이 사회가 날이 갈수록 자꾸만 몹쓸 병에 전염되고 있는 제일 큰 원인은 바로 상대방을 깔아뭉개고 흠집 내기에 이골이 난 그 못된 습성 탓이다. 잘하면 잘한다고 칭찬해주고, 잘못하면 잘못한다고 엄중하게 질타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최소한의 상식선에 충실하자는 말이다. 그런 가운데 공정 속에 정의가 있고 배려 속에 협치가 있다는 사실을 모두는 지금부터라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 길만이 우리가 가야 할 유일한 상생의 길임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덧붙여 눈높이를 낮추고 자신을 성찰하는 일에도 진력해야 한다. 소리를 내는 울림보다는 무언의 침묵 속에서 나오는 내면의 목소리를 가꾸는 일에 열중할 일이다. 좀 더 깊이 파고들자면 소리의 울림이 유정설법이라면 자연의 소리와 무언의 침묵은 무정설법과도 같은 것이다.
 상총常聰선사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사람의 말에 의지하는 유정설법은 한계가 있다. 이 유정설법을 뛰어넘는 것이 바로 산하대지, 우주자연의 설법 바로 자연의 이치와 섭리에 근거한 무정설법이다. 소동파도 감응한 이 말씀 없는 내면의 소리, 솔바람 소리, 대 바람 소리, 은은한 풍격소리, 영혼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나를 뒤돌아보고 여유로운 관조로 성찰할 때 우리들 마음속의 묵은 때도 조금씩 씻겨지지 않을까, 
 내친 김에 서산대사의 명귀名句 한 자락을 얹히고 싶다. 

踏雪野中去 
눈 내린 들판을 밟아갈 적에는

不須胡亂行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걷지 말라.

今日我行跡 
오늘 걸어가는 나의 발자국은

遂作後人程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우리민족의 최대명절이라는 설이 코앞이다. 오랜만에 포근한 고향 품에 안겨 삶의 여독도 내려놓고,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도 보고 연로한 부모님께 효도할 수 있는 기회인데 그조차 막아서는 이 환란이 서글프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하지만 어쩌랴, 내가 살고 우리가 살기 위해선 이 아픔을 딛고 일어서야하지 않겠는가.
 비록 몸은 천리타향을 배회하고 있을지라도 마음만큼은 고향열차를 타고 부모님 곁으로 가자. 맑은 정화수 한 사발 떠놓고 비원할지라도 우리에겐 또 맞이해야 할 내일이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당분간 혹독한 고통과 시련이 따르더라도 정부나 질본의 방역지침을 준수하고 제발 말 좀 듣자. 내친 김에 자신의 분수를 알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성찰의 시간을 갖자. 아니 조금만 더 참고 견디며 잃어버린 1년을 되찾자. 
 맘도 몸도 혹독한 추위라지만 그래도 봄은 온다. ‘혼자 꾸는 꿈은 단지 꿈일 뿐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더불어 손 꼭 마주잡고 희망의 꿈을 꾸자.
 마음만이라도 훈훈한 설 명절이 되십시오.

<최광림 본지논설위원 ckl0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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