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영 칼럼본보 사외이사겸 논설위원
정경영 칼럼본보 사외이사겸 논설위원

전제 군주시대 선왕의 최고 통치 덕목은 세금과 치수이다. 경제 규모가 원시적인 시대에도 국가가 거둬들이는 세금은 궁핍한 민초들의 최대의 관심사였고, 농경사회의 생존 여부인 홍수와 가뭄도 오롯이 군주의 몫이었다. 19C 조선 후기 들불처럼 타올랐던 70여 차례의 민란 역시 조세제도인 삼정의 문란이 그 원인이다. 무능한 왕실과 권문세가의 세도정치는 환곡, 전정, 군정 등 조선시대 대표적인 조세제도를 뿌리채 농락하고 만연한 부정부패는 백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홍경래의 난을 필두로 임술 농민봉기 그리고 동학농민전쟁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민란이 모두 타락한 관리들의 매관매직과 붕괴된 조세제도로 촉발되었다. 법에도 없는 변질된 세금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탈하는 왕실과 관리들의 무자비한 횡포는 백성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흡혈귀와 다를 바 없다. 다산은 목민심서에서 당시 부패한 관리들을 마치 큰 도적과 굶주린 솔개와 같다고 일갈하고, 흰 도포를 한 점 먹물로 더럽히면 끝내 다시 씻을 수 없다고 집권세력을 질타하였다.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위한 조세 정의는 예나 지금이나 권력을 가진 자들의 선정을 평가하는 지고의 잣대임이 역사의 반증으로 확연히 드러난다.

매번 선거철이 되면 집권 세력은 경기 부양을 앞세워 세금을 줄이고 규제를 풀겠다는 속칭 줄푸세를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 든다. 그 숨겨진 의도나 꼼수를 모를 리 없다. 국가가 부과하는 세금이 국가 경제의 근간이 됨은 물론 다양한 복지, 백년대계의 교육, 자주 국방을 위한 초석으로 우리 실생활과 밀접한 터인지라 애써 묵인하기엔 한계가 있다. 이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신랄하게 비꼬면서 시작된 취득세, 종부세, 양도세 등 부동산 관련 세금의 대폭 감세 및 완화 조치는 그 세세한 명목을 들여다보기 전에 과연 조세 공평과 실질 과세의 대원칙에 부합하는지 곱씹어 볼 일이다. 개인의 노력으로 축적한 고가의 부동산이나 다주택자들에 대한 과도한 세금 규제는 자본주의 정서상 상식에 어긋나고 부동산 실물 경제를 해치는 주범이라는 인식이 그 출발점이다. 법인세를 깎아 그 여력으로 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하여 고용 창출 및 경기 부양을 도모한다는 상투적인 논리는 웬지 어색하다. 국민 대다수는 아무 관련도 없는데 일부 가진 자들의 조세 부담을 덜어주는 게 부자 감세가 아니라면 소가 웃을 일이다. 지난해 세수 부족이 60조이고 한국은행의 누적 단기 차입금 규모가 117조이다. 돈을 빌려 쓰는 정부의 반복적인 행태가 부족한 세수를 충당하는 올바른 방법이 아님을 한국은행도 잘 알고 있다.

올해 들어 정부는 민생토론회라는 형식을 빌어 국정 각 분야별 현안에 대한 정책 기조와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침체된 경제 위기와 불안한 정치적 입지를 극복하기 위한 저간의 조급함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하며 이미 시행 중인 주식시장 공매도 한시적 금지, 10억에서 50억으로 상향된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기준 완화에 이어 국회의 합의를 거쳐 시행 예정인 5천만원 이상 투자 수익에 대한 금융투자소득세의 폐지를 선언하고 상속세 완화를 위한 세법 개정을 언급하고 있다. 이 모두의 논리적 배경에는 저평가된 국내 금융시장을 부양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개인 투자가들의 안전한 투자 수익을 확대할 수 있다는 형용 모순이 존재한다. 우리 금융시장의 극소수 부자들을 위한 감세 정책을 국민 대다수를 볼모로 삼아 화려한 레토릭으로 포장하고 있다. 상생 금융을 통한 기회의 사다리를 확대하겠다는 슬로건 뒤에 그 대가로 표를 사겠다는 저열한 영합의 그림자가 보인다. 정책의 진정성은 때를 논하지 않아야 하고 조변석개의 가벼움을 경계해야 한다. 목적이 수단을 침범하여 가고자 하는 길을 잃어버리는 대오를 자초함은 모두의 불행이다. 납세는 헌법상 의무이고 그 생명은 공평과 정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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