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영 칼럼(본보 이사 겸 논설위원)
정경영 칼럼(본보 이사 겸 논설위원)

범죄 심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흔히 인용하는 깨진 유리창의 이론(broken windows theory)은 이제 국가나 기업의 경영, 사회 질서의 유지, 가속되는 문명의 비인간화 현상 등에 통용되는 인간의 심리 및 습관에 관한 다양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유리창이 깨어진 채 길가에 방치된 자동차나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을 지나칠 때 인간의 마음 속에 내재된 무질서를 용인하는 나태한 심리적 욕구는 꿈틀댄다. 그 결과 낙서나 쓰레기 투입, 파괴 등 사소한 단계의 무질서는 결국 걷잡을 수 없는 큰 범죄로 이어진다. 범죄의 환경적 접근에 관한 이론적 토대는 예측 가능한 사회 현상에 대한 사전 예방 및 선제적 대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급격한 고령화 및 초저출산의 국가적 위기는 지방소멸이라는 직격탄을 초래하고 있다. 여기에 대도시로의 인구 집중 현상은 지방 소도시는 물론 농촌 지역의 공동화를 가속화시키고 이로 인한 사회적 부작용은 경제, 의료 ,교육, 문화 등 사회 전 부분에서 심각한 불균형을 양산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정책이나 지방 정부의 행정은 갈수록 심화되어 가는 이 사회적 현상을 따라잡기에 역부족이다. 고령 인구를 위한 복지제도,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지원제도 등 각양각색의 맞춤형 정책을 수없이 쏟아내고 있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책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실로 고육지책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막연하게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된 공포에 가까운 시나리오였지만 정치도 행정도 그리고 그 어떤 이론적 접근도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농촌 지역의 빈집이 늘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도심 지역의 주택이나 상가도 텅텅 비어가고 있다. 현재 농촌 지역에 거주하는 고령 인구의 여명이 그리 길지 않음을 감안하면 빈집은 가히 폭발적으로 늘어날 추세이다. 인구 감소에 따른 지역 경제의 붕괴는 도심 지역 상권을 마비시켜 이면 도로나 골목에 위치한 상가는 흉물로 변해가고 있다. 지방 정부가 일부 공간을 매입하여 문화 공간이나 주차 시설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수도권 등 대도시의 상상 이상의 집값과 애물단지로 변해버린 농촌 지역의 빈집을 비교해보면 우리 사회의 고착된 불균형이 얼마나 두꺼운지 유구무언이다. 그간 농촌 빈집은 개인의 소유권 보호라는 명목으로 지자체가 직권 철거를 강제할 수단이 없었고 소유주가 자발적으로 빈집을 정비하는데 유인책이 없다는 문제 제기에 따라 작년 말 농어촌정비법이 일부 개정되었다. 지자체는 철거 대상의 빈집에 대해 소유주에게 철거 조치명령을 내리고 불이행시 소정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고, 직권 철거시 그 비용이 보상비를 초과할 경우 차액을 소유주에게 징수하도록 했다. 아울러 빈집의 개축 및 용도 변경시 건축법의 적용을 완화시켜 소유주로 하여금 자발적 정비를 촉구하고 있다. 빈집으로 인한 주변 환경 저해 및 경관 훼손, 범죄 유발 우려, 화재 및 안전사고 등 부정적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지자체의 적극 행정이 대두되는 시점이다.

정읍시가 올해 빈집 정비를 위한 정책을 공개하였다. 농촌 빈집 5채를 리모델링하여 취약계층에게 임대하고, 도심 빈집 2채는 철거 후 공용주차장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119채는 비용을 지원하여 자진 철거를 유도하고, 경관을 현저히 훼손하거나 붕괴 위험이 있는 10채는 행정 절차를 거쳐 직권 철거를 단행할 계획이다. 빈집 정비에 대한 정읍시의 정책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더라도 향후 지속적이고 가시적인 효과가 드러날 수 있도록 지역민 모두의 관심과 협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자체는 소유주나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공동체 주거환경의 안전을 확보하고 주민들의 복리 증진과 공공의 목적에 부합되는 빈집의 활용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하여야 한다. 탁상행정이 아닌 현장 중심의 행정으로 우리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나가는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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