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림(객원논설위원)



 습관처럼 한 해가 가고 또 새해가 찾아왔다.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는 그렇다 치고 날과 달, 계절과 해를 구분한 것도 문명의 이기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한낱 미물인 인간이기에 이에 순응하며 담담한 심정으로 또 한 해를 맞았다.

 늘 그랬던 것처럼 보신각 타종을 시작으로 문을 연 무자년 새해도 훌쩍 일주일이 흘렀다. 희망을 입에 담기에는 아직도 거리가 먼, 아니 희망이란 단어조차 거북스러운 군중들의 무표정한 얼굴들이 마른 나뭇가지에 처연한 낮달로 매달려 있다.

대체 무엇이 이렇듯 우리네 소시민들의 가슴을 옥죄고 발목에 족쇄를 채우는 것인지 안타까움을 넘어 작은 분노가 치민다. 오늘보다는 내일, 달과 해가 바뀌면 뭔가 달라지리라는 소박한 기대마저 희미해지는 무자년 새해 겨울묵시록이 천근의 무게로 굽은 어깨를 짓누른다. 하지만 만약 우리에게 희망이 없다면, 아니 내일에 대한 희구가치를 상실한다면 과연 존재의 명분과 의미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역설적 표현이긴 하지만 희망이 사치라면 분명 절망도 사치일 수 있다. 더 이상의 좌절과 포기는 신성한 책무에 반하는 직무유기며 방종이다. 이제 우리는 보다 맑은 눈과, 맑은 머리, 맑은 가슴으로 내일을 열어가야 한다. 어쨌거나 희망은 꿈꾸는 자의 몫이기에...

 새해 첫날 해맞이를 하자는 운동회원들과 마을 앞산(개웅산)에 올랐다. 팔각정 정상부근은 이미 운집한 사람들로 인해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간신히 고개를 디밀고 동녘하늘을 바라보았다. 7시 50분, 마침내 관악산 능선을 타고 오른 햇살이 찬란한 광채를 뽐내기 시작했다. 새해 일출이다. 수많은 이들의 함성과 기도 속에 그렇게 또 한 해가 열렸다.

 이쯤해서 필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생각하고 사고하는 시각의 차이는 바로 마음 안에 있다는 것이다. 수면 위로 떠오르는 정동진의 일출이나 산등성이를 타고 오른 앞산의 일출이 별반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직시할 때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임을 다시금 깨닳게 된다. 더불어 떠오르는 해가 탄생이요, 희망일 때 지는 해는 죽음이요, 절망이다. 말하자면 희망은 절망을 딛고 일어선 소중한 전리품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새해와 더불어 새 정권의 출범이 목전에 다다랐다. 노무현 정권의 실정에 의한 반사이익이 10년 만에 야당의 정권창출로 이어지고 또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기대와 우려 속에 담담한 마음으로 차기정권을 주시하며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명박 당선자와 정권인수위의 발 빠른 행보가 신선감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정략적 계산을 앞세운 듯 한 의구심이 든다.

 한나라당이 소위 이명박 특검법의 효력정지를 요청하는 가처분신청과 함께 특검법의 국회 의결과정이 잘못됐다며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자 이에 헌재가 심리를 서두르고 있다. 당선자의 입장이나 보는 시각에 따라 현격한 차이가 있겠지만 특검 수용은 이씨 스스로가 공약한 대국민과의 약속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승자의 만용에 도취된 거만한 행태는 갈수록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차기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라도 진실규명은 선결과제라는 사실을 당사자와 한나라당은 명심해야 할 일이다.

 또 하나, 인수위가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위한 밑그림을 완성하고 이명박 정부 임기 내 완공을 목표로 착공준비에 돌입했다. 실로 불도저다운 명성에 걸 맞는 처신이 아닐 수 없다. 일자리 창출에 관광이나 개발 등의 기대효과는 있겠지만 비경제성과 부동산 투기, 천문학적인 건설비용과 환경파괴를 생각할 때 밀어붙이기식 행정이 결코 능사일 수 없다.

 어느 국민이 특검을 피하고 운하만 파라고 했는가, 재차 강조하건데 특검은 이 당선자의 신뢰회복은 물론 정략적 차원을 떠나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는 일이며 대운하 역시 추진력만을 앞세우기보다는 민의에 부합하는 신중한 재검토가 절실한 시점이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상황은 그리 녹녹치 않다. 북핵문제와 중일밀월, 미소의 패권경쟁은 우리에게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부여하고 있다.

이 당선자가 눈앞의 과욕에 집착하지 않고 넓은 안목으로 멀리 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음을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된다.      

 어쨌든 새해 첫날 일출은 희망차고 아름답다. 이 환희와 희열을 가슴에 간직하고 희망찬 내일을 향해 정진하는 한 기필코 꿈은 이루어진다. 두루 복 많이 받으십시오.

                                                     <choikwanglim@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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