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신문
칠보출생 의정부 법무사회 회장 신현기씨
샘골아그들 후원금으로 1천만원 쾌척.
법원 부이사관 선두 승진, 활발한 교수 활동 등 두각 나타내


경기도 북부지방 법무사회 신현기 회장(사진/법무사)를 지난 4일(토) 고양시에 위치한 그의 법무사 사무실에서 기자가 만났다. 신 회장과의 연결은 본보의 초대발행인이자 사장이었던 임희동 포천군 법원장인 임 판사로부터 소개를 받았다.
그와의 첫 만남은 칠보가 고향이라는 것과 그가 의정부시, 동두천시, 포천시, 고양시 남양주시 등 11개 시·군 지역 즉, 의정부지방법원 관할 구역을 관장하는 법무사회 회장에 최근 선출됐다는 소개 외에도, 기자는 그날 신 회장과의 짧은 만남에서 그가 살아온 인생 60중반까지의 세월이 평범하지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제일 먼저는 그는 8남매의 장손으로서 집안이 어려워 주경야독으로 전북대 공대 장학생으로 입학했고, 당시 사법행정예비시험에 합격한 것이 결국 98년 서울고등법원서 부이사관까지 공직생활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퇴직을 전후하여서는 학구파로서 법원공무원 교수와 왕성한 저술 활동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칠보중 총동창회장 재임시에 모교인 칠보중학교 3억 장학재단을, 일부 동문들의 반대의견을 설득해가면서 라석찬씨(홍익병원이사장 1억2천 기부) 등과 시골학교 장학재단을 만드는데 일조하는 등 앞장서왔다는 사실이다.
또한 신 회장은 법원에 근무하면서도 취미 활동으로 시작한 농악에 심취해 고등법원 재직시에는 직원40여명으로 구성된 ‘법쌈채’를 조직하여 그가 리더인 상쇄를 맡기도 했다. 그런 남다른 취미 활동은 10 여년전 우연히 접한 본보의 보도를 통해서 이광수씨가 지도하고 운영하는 사물놀이‘샘골아그들’의 어려운 처지를 알게 됐다. 그래서 그가 그 당시 샘골아그들 후원금으로 1천만 원을 전달했다는 사실도 기자는 그날 알게 됐다.
그는 오랜 세월이 지났고 우연히 기자를 만나 또 다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나왔다면서 그 때는 그 돈을 전하면서도 철저하게 비밀에 부칠 것을 이광수와 약속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 당시 계속해서 샘골아그들이 연습하며 기량을 습득할 수 있는 공간마련을 위한 지원자금인, 매월 50만원의 약속은 갑작스런 사정과 어려움에 봉착하여 지키지 못한 것이 못내 죄송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샘골아그들이 계속해서 정읍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해체됐다는 기자의 최근 근황을 전해 듣고서 더욱더 마음 아파하는 등 아쉬움을 전했다.
8년 전 노모가 생존시에 “언제가 제일 행복한 때 였습니까”를 묻는 아들의 답변에 “나는 너희 아버지 친구들이 놀러 와서 잘 먹고 그 다음날 아침에 가면서 대접 잘 받고 간다는 말을 들을 때다”라는 생전의 노모 말씀이 가장 감동으로 남는 말이었다는 그는 요즘 세상 변화에 대한 사고의식에 문제와 자신의 과거사에 대한 진솔한 생각을 조심스럽게 꺼내기도 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는 공부밖에 없다는 생각, 전주고를 뒤늦게 다니게 된 이유, 전북대 공대에 입학해서 총장 집 아이를 가르치며 생활했던 일, 그의 부친이 중학교까지 마친 자신 한사람의 희생으로 둘째부터 공부를 나누어 시키겠다는 당시 가난한 삶에 대한 생각 등을 진솔하게 밝혔다.
그런 그가 법원에 몸을 담으면서 사법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설움과 한을 재임기간 독서삼매와 저술삼매경으로 풀면서, 퇴임 후에는 인생 80을 정점으로 한 왕성한 저술활동과 후학지도로 매진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기자에게는 그의 최근 저술한 ‘2010 민사집행서식총람’ 이란 묵직한 책 한권이 건네졌다. 칠보 백암초등 출신이기도 한, 신 회장은 법원일반직 공무원 승진시험 출제위원, 법무사 시험출제위원, 공인중개사 출제위원 법무사연수교육원 교수 등을 역임했거나 현재 활동 중에도 틈틈이 많은 저술 활동과 논문발표 등을 통해 그가 살아있음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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