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읍신문

기자와는 중학교 때 선후배 사이로 함께 전주유학을 꿈꿔...

지난 15일(목) 오후5시경, 전주노동청사 앞에 위치한 정읍 연지동 출생 치과의사 안낙현 원장(56. 푸른솔치과)을 찾아갔다. 오찬을 겸한 김완주 도지사와 한지협 전북협의회 사장단과의 간담회를 마친 후, 예고 없는 갑작스런 기자의 방문이었다.
기자가 찾은 푸른솔치과 안 원장은 고교 졸업 후 각자의 진로를 선택 한 이후, 중년의 나이인 40대 후반에 즈음하여 다시 연결이 된 정읍중학교 1년 선배다. 중학교 다닐 때 당시 삼남의원 근처 유비아이 학원, 전주고 진학반에 다니면서 알게 되었고 가까워졌다. 그가 재수를 할 때 함께 공부하고 때론 학원서 기자의 집이 그래도 그의 집보다는 가까워, 당시 중국 소학교 옆(지금은 한국방송통신대 학습관으로 바뀌어졌다) 우리 집에서 평상을 막아 놓고 탁구도 치고 함께 공부했던 아름다운 시절도 있었다.
당시 그는 성공했고 기자는 실패를 했다. 어쨌든 우리는 전주 유학시절을 마친 뒤 줄곧 떨어져 소식을 모르고 있다가 다시 소식이 이어진 것은 최근 10여년 전의 일이다.
그도 우연히 정읍신문을 보고서 기자의 소재를 파악하게 됐고, 우리는 곧바로 전주서 만나 옛 회포를 풀었다. 당시 우리는 현재 삼성전자 전무로 활동하는 호남중 출신 이효종 전무와도 학창 시절, 그러니까 전주 유학을 꿈꾸면서 함께 서로의 집을 오가며 말다툼도 하고 싸우며 그야말로 동거숙하다시피하며 지냈던 막역한 사이들 이었다.
세 사람은 그렇게 전주서 헤어지고 그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다함께 회합을 갖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효종 전무이사와도 얼마 전, 한번 서울 팔래스 호텔 커피솝서 차 한 잔 나눈 것이 전부였다.
죽기 전에 3명이 다함께 모여 술잔을 자주 기울이며 옛 추억을 떠올리기를 우리는 희망했었다. 둘이서 혹은 각자가 그렇게 희망을 했었다. 그래도 전주에 둥지를 튼 안 원장과 기자는 가끔씩 오가며 소통을 하며 지낼 수 있어 좋았다. 그날도 그래서 불쑥 찾아 간 것이다.
언젠가는 기자는 그의 모친과도 어릴 적 방천 뚝 밑, 그의 집과 관련된 추억이 떠올라, 내친김에 “내 생전에 다시 한 번 뵙고 싶다”고 기자가 요청해 안 원장 모친과도 함께 식사를 한 적도 있다.
성실했던 안 원장은 전북대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85년 인후동 모래네 근처에서 치과병원을 첫 개원하여 현재의 아중리 전주노동부청사 앞으로 이전해 왔다.
비교적 사회성이 약한 안 원장은 어쨌든, 이제는 북면이 고향이고, 정읍여고 출신인 부인 한미희(52)씨와 사이에 두 딸을 둔 중년의 나이가 됐다. 큰 딸은 현재 유일여고 수학교사로 재직 중인 안지영(27)씨이고, 둘째는 전북대 영어교육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안지은 양이다.
그리고 이들 가족에게는 큰 축복이자 든든한 울타리인 그들의 부모이자 할머니인 노계현(87)여사와 함께 건강하게 정읍 사람으로서 당당하게 전주서 살고 있다는 것이며, 기자가 필요할 때 고향 땅의 소외계층에 대한 무료진료도 해줄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김태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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