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에서 정치 할 생각은... ?
“나는 원샷으로 끝 내겠다”는 생각을 버린 정치인들이 나와야 한다고 충언

(주)정읍신문

본보가 대한민국 최초로 단풍마라톤을 개최하면서 장관 표창을 시상할 수 있게 해준 장본인은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국장 박종문(사진/전 국민체육진흥공단 경륜운영본부 사장)씨이다.
장관 표장을 달라고 했던 이유는 전국의 초중고 대학생들에게 본 대회에 많이 참석하여 정읍을 알리는 동시, 지역경제에도 보탬이 되고자했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뛸 수 있는 공간과 여건을 만들어주어도 초청비 등을 제공 하지 않으면 마라톤의 꿈나무는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한 자치단체 보조금 등과 같은 혈세를 쏟아 붓지 않고 개최하는 단풍마라톤에, 사실과 다른 일방적인 마라톤 참가자들의 주장 때문에 장관 표창장을 가져 오기가 쉽지 않았다.
매년 주최 측인 본보가 요청 할 때 마다 순수성과 차별성에 대한 칭찬을 고사하고 당시 음해적인 투서에 대한 해명을 담당자가 바뀌어 있을 때마다 해명해야 했던 억울함, 그래서 결국에는 대회 취지와 목적에 해답이었던 참가자 증원도 안 되고 해서 장관 표창을 자진 반납 했던 과거사를 얘기할 수 있는 장본인을 기자는 만났다.
당시 전국 최초로 정읍 단풍마라톤에 장관 표창장을 전달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준 이는 당시 문화체육부에 체육국장 박종문씨(사진/F1국제자동차경주대회조직위원회 고문)이다. 기자는 그를 지난 3일(금) 점심을 겸해서 왕십리서 만났다.
박종문씨는 문광부를 떠나서 경륜운영본부 사장을 3년 마치고 전남으로 가서 조직위사무총장으로 3년 재임하는 동안 또 전주대학서 3년 정부 계약직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47년생인 그는 이제는 마지막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3년만 더 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정부 들어서도 좋은 분위기가 올 것 같다”는 뉘앙스를 내비쳤다. 정읍에서 정치를 할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는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하고 싶지 않다, 다만 할 기회가 온다면 서울에서 하고 싶다”고 말했다.
70세 이후 나이가 들어서 정치권에 기웃 거리는 것은 낭비라는 생각을 가진 박종문씨는 지인 외국어대학 허세욱 교수의 얘기를 소개하면서 자신도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허 교수는 죽기 전에 부인에게 1천3백여만 원을 빌린 후에 재직한 외국어 대학에 1억원의 통장을 전달하고 후진 양성에 보태달라고 했다는 것. 여행 다니고 친구를 만나고, 술 마시며 즐기며 살기도 바쁜 세상에서 월급쟁이가 그것도 내가 쓸 내 돈을 절약하고 모아서 사회에 기여하기란 쉽지 않은 행동이다.
문상을 가서 부인이 “내 돈도 갚지 않고 갔다”는 애정 어린 푸념에서 그 사실을 알고, 그 때부터 자신도 연금 외의 수입은 누군가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그 대상이 내가 아는 동료와 친구아들 딸들의 등록금 보태는데 주저 하지 않고, 작게는 1백에서부터 몇 백까지 전달해 주는 재미로 살고 있다고도 했다.
“주 수입에서 나오는 돈이 아닌 돈은 내 돈 이 아니다”는 생각을 갖고 “같이 나누자”는 마음으로 2004년부터는 대학 강의와 원고료 등은 나만을 위해 살았던 삶을 반성하면서 쓰고 있다는 것.
고향 정읍도 자주 가는 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또한 부모에 대한 효를 실천하고 사랑하는 친구를 찾는 것 등도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다”고 잘라 말했다. 정읍발전에 대해서는 “나는 원샷으로 끝 내겠다”는 생각을 버린 정치인들이 나와야 한다고 충언했다. 내 임기에 무엇을 남기겠다는 발상과 그 과실을 따먹고 재임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정치적 행위는 미래를 담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박종문씨는 2004년6월 본보 창간 14주년을 기해서 마련한 청소년과의 대화의 광장 특강을 해주는 등 2009년 5월에는 정읍신문펜클럽 초청에서도 특강을 해주었다. 현재 박종문씨는 미국과 베트남을 대상으로 한국 문화 등을 보여주는 즉 패션쇼, 공연, 아트 상품, 전통음식 등을 소개하는 GL엔터프라이즈 회사의 상임고문으로도 활동 중인 것으로도 확인됐다.

(주)정읍신문

셋 쌍둥이 아빠 안상훈씨 수원 가족을 찾아 갔다.
그중 한 딸은 부친 가업 잇고 한 딸은 회사원, 아들은 복학생으로 건강한 삶
한탕주의보다는 성실한 삶을 선택한 것이 오늘의 부와 건강한 삶을 누려..

지난 93년 당시 정읍신협에 다니는 안상훈씨(57/사진/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CNA 대표)에게는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일이 벌어졌다. 그 당시 딸이 두 명이 있었는데 또 다시 아내 김정옥씨(54)가 아들하나에 딸이 둘인 셋 쌍둥이를 생산했기 때문이었다.
산모와 아이들 순산 출산에 모두가 기뻐하고 축하해야 할 시기에 이들에게는 앞으로가 걱정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월급쟁이가 5명의 자녀를 혼자서 부양해야하는 책무가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본보가 이 같은 축복과 현실을 취재해 보도하자 가까운 이웃과 친지를 비롯한 각계에서 분유 한통을 비롯한 위로금이 답지하기도 했다. 그 당시에 감사의 말을 지난 3일(금)저녁 고양시 그의 가게 앞서 만난 안상훈씨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그 때의 고마움과 감사를 잊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지금은 이 가족은 수원에서 남부럽지 않은 행복한 가정을 꾸려 나가고 있다. 큰 딸 미미(28)는 현재는 유치원 교사로 재직 중에 있고 둘째딸 미지(25)는 여의도 성모병원서 물리치료사로 일을 하는 등 셋 쌍둥이 중 하나인 미현이는 아빠와 엄마가 경영하는 CNA를 맡았다. 그리고 쌍둥이 미진이는 삼성 자회사인 수원의 모 설계회사에 근무를 하며 쌍둥이 아들 현진이는 군대 갔다가 복학하여 단국대 3학년에 재학 중이라는 것.<가족사진 참조>
모두가 대학을 나오거나 재학 중으로 수원에 50여평의 집도 가졌고 고양시 덕양구 로데오 거리에서 잘 나가는 CNA 가게를 운영하고도 있다. 아이들 부양 때문에 신협을 나와서 당시 현재의 중앙로에 브이네스란 상호로 옷가게를 차렸다.
그러다가 수원에 직장 동료와 CNA 가게를 합자 운영하다가, 동업자에게 고향의 브이네스를 넘기고 자신은 IMF 전후하여 수원에서 CNA와 찜닭 집을 새롭게 시작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장사가 잘되자 주인이 빼앗아 가려는 파렴치한 행위와 한 때 찜닭집이 방송도 타고 잘 되자, 이것을 시기하고 질투한 사람들이 무조건 따라하려는 행태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왜 그 집이 장사가 잘되는 지, 무엇 때문에 그런지는 연구하지 않고 바로 옆에다 차려 함께 공멸하자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경험담도 전해주었다.
지금은 2001년부터 고양시 덕양구 로데오 거리에 있는 CNA 가게만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당시 IMF 당시 동대문과 남대문을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구입하고 다닐 때 노숙자들이 밥한 끼를 얻어먹으려고 긴 나무막대기로 줄을 세워 통제하는 과정을 지켜본 얘기를 안상훈씨는 그 때 아내에게 “우리는 저 사람들과 비교하면 엄청 행복한 사람들이다”는 말을 전했다고 했다. 당시 안씨는 빛을 내서 장사를 하는 터라 남들이 다 하는 자가용을 타고 물건을 구입하려 다니지 않았다는 것, 노숙자들보다 떳떳한 행동에 큰 위안을 삼고서 말이다.
5년 동안 차를 사지 않고서 무거운 비닐주머니 여러 개를 어깨에 메고 들고 지하철과 택시를 번갈아 타며 이동할 때에 이들 부부의 어깨와 손은 끊어지듯 아팠던 인고의 시절이 있었다.
이들 부부의 성실과 남의 돈을 무섭게 알았던 지혜는, 또 일확천금을 꿈꾸지 않고 허세를 떨쳐버렸던 셋 쌍둥이네의 피땀 어린 고생과 한 걸음 한 걸음 앞 만보고 달려온 결과는, 이들 가족에게 희망의 빛을 밝혀 주었고 오늘의 행복과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해주었던 것이다.
안상훈씨는 정읍시 시기동 옹기전 근처서 놀다가 동초등과 호남중, 제일고를 졸업했다.<김태룡기자/정리 김남륜 서울주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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