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하면 얼마든지 살아갈 방법이 있더라”고 말해 근면성실 강조
자수성가형 가족 경영체제, 연간 매출은 25억 원 정도


(주)정읍신문

"가난을 자식들에게까지 되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 술과 담배도 배우지 않았다”는 김용환씨(사진/소망화학 대표)를 지난15일(수) 방산시장서 만났다. 트럭을 몰고 온 그는 서초등 동기생이자 이곳 시장에서 판촉물업을 30년 이상 해오고 있는 김영두씨(말글광고사 대표) 등과 함께 점심을 한 후에 곧바로 경기도 광주 소재 그의 공장으로 향했다.
오래전부터 기자가 500여 평의 도로변 대지에 건평 360평의 공장을, 12년 전에 임대에서 자가 소유의 공장으로 옮겼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기자는 빈주먹으로 상경하여 오랜 고생 끝에 일구어 낸 자수성가형 소규모 건실한 사업가였기에 본보에 소개를 하고 싶었다. 이동하면서 그는 방문 목적에 다소 쑥스럽다고 말하며 조심스럽게 “세상은 살만한 세상이다”면서“내가 정직하면 얼마든지 살아갈 방법이 있더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 말은 찢어지게 가난해도, 태생이 어쩔 수 없는 환경을 타고났어도, 성실과 근면으로 맞서면 기회는 잡을 수가 있다는 말로 들렸다.
기독교인이기도 한, 비닐생산 업체인 소망화학의 대표인 김용환씨는 정읍시 연지동 다리, 지금의 용흥동 근처에서 가난한 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중학교에 갈 형편이 안 되서 동신기술학교마저도 중도에 포기를 했다.18살 때 서울로 상경해서 정읍출신 임오순회장이 있는 일신화학, 비닐공장에 취직을 해 79년까지 그곳에서 일을 했다. 근면과 부지런함이 몸에 베인 그는 80년부터는 독립을 위한 임가공을 시작했으며 36세 때에는 난생 처음으로 자기 명의에 사업자를 내고서 공장을 경영했다. 그러나 시작은 용감했으나 2년여 동안은 엄청난 시련과 함께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조금씩 그의 근면 성실함을 인정해주는 고향 10여년 선배인 김성수씨(소성면/한양비닐대표)를 만나게 되었고 거기서 큰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신용을 잃으면 영원한 거래처도 없다”는 말을 강조하는 김용환씨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그는 내게서는 은인 같은 존재이다”라고 밝혔다. 그분의 말 한마디 “자네는 할 수 있어”라는 용기를 심어 주었기에 오늘의 자신이 또한 존재한다고까지 말했다.
그러면서 그가 말하는 김성수씨는 “배부르고 등 따뜻한 사람을 도와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열심히 살아남으려는 자는 도와주는 분”이라고 밝혔다. 그와의 오랜 세월 거래를 했지만 아직껏 식사한번 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오로지 신용과 품질만을 상호 신뢰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날 기자가 방문한 그의 공장 사무실은 소박을 넘쳐 초라하고 남루할 정도였다.
누군가에게 과시하고 보여주려는 생각은 전혀 없는 작은 공간의 사무실이었다. 공장에는 직원 한 분이 기계에서 뽑아져 나오는 비닐 생산 라인을 관리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물건을 빨리 납품해 달라는 주문이 인터뷰 도중에서 끊이질 않았다.
그가 안내한 2층에서는 1층에서 생산해 올라온 비닐에 인쇄를 하는 공정을 맡고 있다고 했다. 물론 그 일은 다른 이에게 하청을 주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 공장의 주문과 생산에서 납품까지는 한 공장 내에서 원스톱으로 해결되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인적자원 관리가 만만치 않은 상황임을 감안 조치라고 했다. 순수 비닐을 원자재를 가져와 용도에 맞게 재단하고 생산하는 그의 1층 공장에는 사무직원을 대신한 부인 이정자씨와 주야간 교대로 하는 두 명의 직원과 김용환씨가 전부다. 그러니까 사장이 영업과 배달을 하는

바지런하고도 근면 성실한 일상의 습관이,
오늘의 작지만 소박한 그의 꿈을 이룰 수 있게 한 원동력이....


(주)정읍신문

총4명의 가족 경영체제 급인데도 이 공장의 연간 매출은 25억 원 정도라고 했다.
물론 원자재가 70%이상을 대부분은 차지하는 비닐가공 생산업체이지만 그 수입 또한 짭짭하다고 했다.
이곳 소망화학에서 생산 취급하는 것은 농업용, 공업용, 하이댄, 등이라는 것. 하지만 주 생산품은 비닐 쇼핑백이다. 물론 주문 생산도 가능하다. 어쨌든 인건비를 따먹는 형상이지만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일감은 넘쳐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자재 인하에 대한 고지를 거래처에게 신속하게 통보하고 변동에 따른 증감을 결정해 주는 것 등에서도, 그가 상호신뢰를 쌓은 것이 오늘의 밑거름임도 잊지 않고 밝혔다.
“초심을 잃지 말자.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라는 김용환씨의 바지런하고도 근면 성실한 일상의 습관이, 오늘의 작지만 소박한 그의 꿈을 이룰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됐다.
조만간 이제 그는 경기도 어느 한 모퉁이에 황토 집을 짓고서 부인과 하나뿐인 미혼의 딸과 함께 그리고 가끔씩 친척과 지인들을 초청하여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는 꿈이 이루어잘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조금씩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돕겠다고 밝히면서, 제4기 청와대 포럼 개최를 축하하고 자신도 1구좌 1백만 원의 후원자가 되겠다고 말했다.
고향에는 양복점을 했던 맏형 김종식씨(80, 옛 구미동소재)가 살고 있다고 했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였지만 그는 언제나 건강하게 태어나게 해준 것만으로도 늘 감사해 하고 있다고 했다.<김태룡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저작권자 © 정읍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