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림 칼럼>

(주)정읍신문
<최광림 객원논설위원>


며칠 새 봄기운이 완연하다. 간혹 얼굴을 비치는 햇살도 달아오르고 차디찬 바람도 견딜 만 한 날들이다. 먼 산골짜기마다 희끗희끗한 잔설이 외투 깃을 세우게 하지만 한두 번 꽃샘추위가 시샘하고 나면 마침내 연둣빛 싹이 돋아나고 개울물도 긴 동면에서 깨어나 마른 대지를 촉촉이 적실 것이다.
팬을 잡을 때마다 입버릇처럼 해댄 소리지만 이렇듯 교과서적인 자연의 순리나 섭리를 거스르는 자는 오직 미물인 인간밖에 없나보다 라는 생각이 스칠 땐 오싹 소름이 돋는다. 그만큼 잘 못 살아온 자기 고백적 소회인 동시에 우리들 모두에게 던지는 물음이기도 하다.
겨울 내내, 아니 지난해에도 그랬다. 글을 써야 할 이유와 명분, 그 의미나 존재가치를 찾지 못해 필자는 단호한 절필을 작정했다. 쓸 지면이 없어 분노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오히려 청탁이 두려운 세상, 변명성의 소신을 앞세우기 전에 배가 불렀다는 반증으로 매도 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앞으로도 필자의 절필행위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적어도 내 가치관과 소신에 사회적 괴리나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 한.
유감스러운 일은 바로 이 ‘울며 겨자 먹기’다. 필자의 의중을 도외시하는 주변인들의 반란이 그것이다. 책을 내는데 서평이 필요하다. 창간이나 복간을 하는데 축사나 칼럼을 써 달라. 심지어 자식들 결혼주례에까지 빈번히 끌어 앉히는 이들의 야속한 이적행위는 먼 훗날 내 삶을 무슨 색깔로 치장하고 또 어떤 족적을 남길지 몹시 궁금한 의문부호다. 그래도 이런 지인들이 필자 곁에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만약 이들마저 나를 경원하거나 도외시한다면 지금 당장 숨 쉴 명분조차 없을 테니까.
요즘 들어 지인들의 출판기념회가 넘쳐난다. 난생 처음 책을 상재하는가 하면, 한꺼번에 너 댓 권의 책을 쏟아놓고 옷소매를 잡아끈다. 작가에게 있어서 한권의 책이 세상 밖으로 나온다는 것은 산고의 진통과도 같은 출산의 고통에 다름 아니다. 그런 광영의 자리에 인색한 축하는 같은 글쟁이로써 상상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출판기념회라는 것이 순수한 목적과 의도를 이탈한 가면의 탈을 쓰고 이상한 색칠로 무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인의 전유물과도 같은 코스프레나 포장도 보편적 상식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순수라는 미명하에 가려진 역겹고 식상한 정치놀음이 한 여름 해우소의 분 냄새보다 더 지독한 독소가 되어 후각을 마비케 한다. 필자도 지금까지 개인시집 7권과 칼럼집 등 8권의 책을 상재했다. 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빈약한 탓에 단 한 번도 출판기념회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다. 이만하면 필자의 곤궁함에 연민을 느끼는 독자도 제법 상당하리라.
어디 이뿐이랴, 가까운 선, 후배 지인들의 6·4 단체장 선거 출사표가 봇물처럼 넘쳐나고 있다. 물론 정치적 소신과 능력을 겸비한 이들에게는 결례가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한 마디 묻고 싶다. ‘도대체 정치가 무엇이며, 무엇을 위하고 또 누구를 위해 몸을 던졌는가?’말이다. 정치란 정의실현이요, 바르게 다스리는 수사적 표현을 떠나 ‘한 사회의 가치들을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것’이라는 데이비드 이스턴의 말에 필자도 공감한다. 말하자면 정치는 지지세력과 반대세력을 결집시켜 사회공동체의 목적달성을 당위적 명제로 삼아야 한다.
지난 대선 이후로 지금까지 우리정치는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사회통합도 소통도 요원하다. 이는 자신의 정치적 생존과 지지집단의 이익의 극대화에 초점을 맞춘 참담한 결과다. 비록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자들은 자신들의 넘치는 밥그릇을 상대에게 덜어주고 채워주는 보편적 상식과 일반적 정의를 정치공식에 대입하기를, 아니 빛과 그림자 중 빛이 되어 내리기를 거듭 주문한다.
봄이 되면 자연은 용케도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화사한 햇살과 새싹들의 싱그러움을 선물한다. 이 희망의 전령을 차단하거나 빼앗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남을 탓하기 전에 내 자신을 뒤돌아보며 성찰하고 비워가는 마음을 가질 때, 그 고운 심성이 서로의 가슴으로 들불처럼 번질 때 우리는 갈등과 대립으로 분열된 어두운 질곡의 세월을 딛고 희망찬 봄과 내일을 기대해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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