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酒道)와 한시(漢詩)

申鉉基 2014. 6. 15. 作成
2014. 6. 23. 修正

Ⅰ. 술의 예절
1. 프롤로그
가. 건전한 술문화의 형성
술(酒)은 조물주가 만들어 낸 영약(靈藥)이지만, 현대인들은 술을 마시면서 예절을 지키지 않아 여러 사람이 낭패를 보거나 개인적으로 신세를 망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선현(先賢)들은 술을 마시고 오히려 정신적인 고도의 세계에 들어가 시조(時調)를 읊곤 했다. 이 글은 술과 관련된 재미나는 한시(漢詩)도 소개하면서, 술좌석에서 지켜야 할 주도(酒道= 주례酒禮 술의 예절)에 관하여 필자 나름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 글의 동기 내지 목적은 사회 초년생이 주도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일생을 망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고, 술 때문에 세상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조금이나마 방지하면서, 어차피 이 세상에 술이 존재하는 한 사람들은 술을 마시게 되므로 건전한 술문화가 형성되어 살기 좋은 세상이 영속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또한 술을 선천적으로 마시지 못하는 사람도 술문화를 이해하고 동참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나. 술의 역할
옛날부터 술은 “以酒助興(이주조흥)- 술로 흥을 북돋을 수 있고, 以酒壯行(이주장행)- 술로 장도를 축하하며, 술의 힘을 빌려서 借酒賦詩(차주부시)- 시를 짓고, 借酒抒懷(차주서회)- 회포를 풀며, 借酒消愁(차주소수)- 근심을 없앤다.”고 했다. 현대에도 술좌석은 엄숙했던 분위기를 완화시켜 평소 못 다한 마음속의 이야기를 정답게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로서, 사회생활에 활력소의 역할이다. 또한 공식석상에서 시간의 제약 등으로 다루지 못했지만 긴요한 사항을 술좌석을 통하여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 술은 잘만 마시면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정신적인 건강에도 유익하면서, 혈액순환을 도와 육체적인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남송(南宋)시대 성리학(性理學)을 집대성한 주자(朱子= 주희朱熹 1130~ 1200 졸70세)도 “濁酒三杯豪氣發(탁주삼배호기발)- 탁주 석잔에 호기가 나니, 朗吟飛下祝融峯(낭음비하축융봉)- 시 한수 읊으며 축융산 봉우리 뛰어넘겠네!”라고 했다.

다. 애주가
역대 왕후장상(王侯將相), 영웅호걸(英雄豪傑), 문인묵객(文人墨客) 등이 술을 좋아했고, 이백(李白)은 주선(酒仙) 두보(杜甫)는 주호(酒豪)로서 애주가였기에, 이백의 1,500여 시 11.3%가, 두보의 1,400여 시 21.4%가 각 술과 밀접한 관련이라는 통계다. 한편 초당(初唐)시대(618~ 712) 왕적(王績 585~ 644 졸59세)의 오언절구(五言絶句) <취후(醉後) 취하고 나서>의 내용 “①阮籍醒時少(완적성시소)- 완적은 깨어 있은 적이 적었고, ②陶潛醉日多(도잠취일다)- 도잠(도연명)은 취한 날이 많았다지! ③百年何足度(백년하족도)- 인생 백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나? ④乘興且長歌(승흥차장가)- 흥겨워 길게 노래 부르노라!”을 보면 완적은 죽림칠현의 1인이니 그렇더라도,죽림칠현(竹林七賢)은 한(漢)나라가 멸망한 이후 위진(魏晉)시대(220~ 316) 정치권력에 등을 돌리고 죽림(竹林)에 모여 거문고와 술을 즐기면서 청담(淸談)으로 세월을 보낸 7명의 선비로서, 산도(山濤 205~ 283 졸78세), 완적(阮籍 210~ 263 졸53세), 완함(阮咸 ?~?), 유령(劉伶 221~ 300 졸79세), 혜강(瑞康 223~ 263 졸40세), 상수(尙秀 227~ 272 졸45세), 왕융(王戎 234~ 305 졸71세)이다.
<귀거래사(歸去來辭)>로 유명한 도연명(陶淵明 356~ 427 졸71세)도 애주가였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자신의 저서 <향연(饗宴)>을 통해서 스승 소크라테스는 두주불사(斗酒不辭)의 엄청난 술꾼이었지만 술에 취한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소크라테스야 말로 세계의 4대 성인(聖人)의 한 사람이면서 술에 관해서도 진정한 성인이었나 보다.소크라테스(Socrates BC470~ BC399 졸71세)의 제자 플라톤(Platon BC429~ BC347 졸82세)의 저서 <향연(饗宴)= Symposium>은 성대한 잔치로서 주연(酒宴)과도 상통한다. 지금에 와서 심포지엄(Symposium)은 특정한 문제에 대해 2인 이상의 전문가가 각기 다른 각도에서의 의견을 발표하고 참석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의 토론회를 뜻하지만, 원래 Symposium의 어원은 술(posia)과 함께(sym)의 합성어로서 술잔치에서 비롯되었다.

라. 술 마시는 순서
술을 마시는 순서대로 정리해 보면, ①거배(擧杯)- 술잔을 들어, ②정배(停杯)- 잠시 멈추고 마련된 술자리에 감사드리며(통상 이때 건배사가 있음), ③함배(銜杯)- 말(馬)에 재갈을 물리 듯 술의 향기를 맛보고, ④경배(傾杯)- 잔(盞)을 기울이며 천천히 마시되, ⑤건배(乾杯)- 축복하는 기분으로 술잔을 비운다. ⑥행배(行杯= 권배勸杯)- 자신의 기본(基本) 잔으로 다른 사람에게 술을 권한다. ⑦반배(返杯)- 자기가 받았던 잔은 반드시 되돌려주어야 한다. ⑧주불쌍배(酒不雙杯)- 두잔 이상을 자기 앞에 오래도록 두고 있으면 예의가 아니다.

2. 반배와 주불쌍배
가. 반드시 지켜야할 예절
반배(返杯)란 받은 잔을 되돌려 준다는 뜻이고, 주불쌍배(酒不雙杯)는 2잔 이상의 술을 받아놓고 오래도록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통상 술좌석에서 기본잔(基本盞)은 1인에게 1잔이므로, 기본잔이란 맨 처음 자신이 받았던 그 잔만이 아니라 어느 경우든 자신 앞에 술잔이 하나일 경우다. 만일 반배법칙을 지키지 않으면 자기의 기본 잔으로 술을 권하고 잔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기본 잔이 없어 더 이상 술을 마실 수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술잔을 새롭게 권할 수도 없게 되며, 한 사람이 2잔 이상을 가지고 있으면 좌중의 누군가는 술잔이 없게 되므로, 반배법칙과 주불쌍배는 상관관계로서, 원만한 술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할 술의 예절이다.

나. 행배(권배)와 반배
행배(行杯)란 술잔을 실행하여 자기의 기본잔으로 다른 사람에게 술잔을 권하는 것이므로 권배(勸杯)가 더 적절한 용어지만 건배(乾杯)와 구별을 위한 용어다. 2잔 이상의 소유자는 반배의 의무만 있지 행배할 권리는 없다. 왜냐하면 먼저 반배의 의무를 완수하고 기본잔이 된 후라야 행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며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좌중의 누군가는 술잔이 없게 된다.세상에는 권리(權利)와 더불어 의무(義務)가 존재한다. 의무를 성실히 이행한 자만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의무의 이행 없이 권리만을 주장한다면 얌체다.
반배의 방법은 반드시 받았던 바로 그 잔만이 아니어도 무방하다. 상급자(좌중에서 관심이 집중 되는 사람 포함)가 석잔 이상을 겹치기로 받았을 때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반드시 받은 순서대로 술잔을 되돌려주는 것이 예의다. 되돌려 주면서 받은 잔의 술이 많다면 자신의 다른 잔에 덜어내어 마시고 되돌려 주어도 된다. 특히 2잔 이상을 가진 사람이 반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술잔을 주지 않고 엉뚱하게 다른 사람에게 술잔을 권하는 행위를 삼가야 한다. 이는 반배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 아직 권리도 생기지 않은 상태에서 행배를 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3. 술좌석의 매너(manner)
가. 원만한 술좌석
술은 사람마다 마실 수 있는 주량이 다르므로, 선천적으로 술 실력이 약한 사람(또는 당일에 술을 마실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포함)은 비록 적극적으로 술을 권하는 행배를 할 수 없더라도, 받은 술잔은 반드시 되돌려 주는 반배는 해야 한다. 이런 경우 애초에 술잔을 받으면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적게 따르도록 하여 다 받아 마신 후 반드시 술잔을 되돌려 주어야만 술좌석이 원만하게 된다. 그렇지 않고 술을 많이 마실 수 없는 데도 주는 대로 가득 채워 여러 잔을 받아만 놓아 마시지 않고 잔을 되돌려 주지 않으면, 술을 마시거나 권하고 싶은 하급자(좌중에서 관심이 적거나 과묵한 사람 포함)는 자기 앞에 술잔이 되돌아오지 않아 마실 수도 권할 수도 없게 되기 때문이다. 주량이 적은 사람이 행배하고 싶다면 미리 자신의 잔에 술의 양을 적게 받아서 자신의 기본잔으로 행배하면 된다.

나. 술좌석의 발언
자신의 생각을 너무 앞세우는 것은 어느 모임이나 회의석상에서도 곤란하다. 특히 술자리에서는 흥(興)이 고조(高調)되므로 자칫 평소와 달리 흥분하기 쉬워 다툼이 생길 수도 있다. 양보정신이 더욱 요구되는 상황이다. 만약 10인의 술좌석이라면 자신에게 할당된 시간은 1/10이라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고 발언해야 한다. 또한 술에 취하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고 별도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목소리가 필요 이상으로 커지면서 난장판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술이 고조 될수록 한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해야만 이야기하는 사람도 기분이 상하지 않아 필요 이상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교양 있는 술자석이 유지될 수 있다.

4. 자신의 주량파악
가. 주량이 약한 사람에 대한 배려
술이 술을 마신다는 속담이 있듯이 자칫 과음하기가 쉽다. 더구나 술에 약한데도 불구하고 술좌석의 분위기를 위해 가득 채운 잔을 계속 마실 수밖에 없는 경우를 미리 경계해야 한다. 즉 평소에 자기의 주량을 파악해 두었다가 술좌석의 분위기를 위해 적당하게 조절하면서 마실 필요가 있다. 술잔을 받으면서 자신의 주량이 약하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억지로 가득 따라주는 행위는 술의 예절이 아니다. 다만 평소에 주량이 많으면서 특별한 사정도 없는 사람이 술을 사양함으로써 술좌석의 분위기를 깨는 행동은 경계 대상이다. 세상에 술을 많이 마실 수 있는 사람만 호걸(豪傑)이 아니고 주량이 약한 사람도 술을 적게 마시면서 술좌석의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런데 술을 많이 마신 사람이 평소와 달리 자기만의 큰소리로 떠들어대는 것은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워 자연히 술자리 자체를 기피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경우가 생긴다. 이는 술에 약한 사람이라도 회식 등의 모임에 참석하거나 술자리의 분위기를 즐길 권리가 있는데, 그 권리를 박탈하는 현상이 되므로 유념해야 한다.

나. 사회 초년생의 입장
사회 초년생(생소한 모임의 주인공 포함)이 자신의 주량을 파악하지 못하고 불필요한 호기(豪氣)를 부리면서 과음으로 실수를 저지르면 장래의 사회생활에 지장이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술 마시고 자신도 모르게 주사(酒邪 술 마신 뒤의 못된 버릇)를 부려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과 사귀고 싶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사회 초년생은 대개 술좌석에서 하급자일 경우가 대부분인데, 상급자에게 술을 권하고 싶을 때는 반드시 자신의 기본잔을 들고 가서 술을 따르고 그 자리에서 즉시 술잔을 되돌려 받아야만 자신의 기본잔을 유지할 수 있다. 만일 따라만 드리고 돌아가면 상급자는 관심있는 중급자 등에게만 행배(사실은 반배 없는 행배는 예의가 아니지만)를 함으로써 술잔이 하급자에게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점은 혹시 사회 초년생이 술좌석의 주인공이 되었을 때(환영파티 등)는 평소에 파악해 두었던 자신의 주량을 넘게 마시지 말아야 한다. 그 방법으로는 좌중 모두로부터 적어도 1잔씩을 받을 분위기라면 처음부터 받을 때 잔에 채우는 술의 양을 조절하면서 받아야 한다. 주량을 넘어서 실수를 하게 되면 좌중에 모인 사람의 뇌리에 좋지 않게 각인되어 앞으로의 진로에 장애사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Ⅱ. 술에 관한 재미있는 한시 몇 수
1. 성동장에서 연회
초당(初唐)시대(618~ 712) 최민동(崔敏童 ?~?)의 칠언절구(七言絶句) <연성동장(宴城東莊) 성동별장에서 연회>는 다음 내용이다. 제목의 성동장은 최민동의 종형(從兄) 최혜동(崔惠童)의 별장이다.
①일년우과일년춘(一年又過一年春) 한해가 또 지나면 한해의 봄인데
②백세회무백세인(百歲會無百歲人) 백년 돌아와도 백세 사람은 없지!
③능향화전기회취(能向花前幾回醉) 꽃 앞에 몇 번이나 취할 수 있나?
④십천고주막사빈(十千沽酒莫辭貧(십천고주막사빈) 만전(萬錢)으로 술을 살터이니 가난하다고 사양 말게!
위 시에 대해 최혜동(崔惠童 ?~?)의 칠언절구 <봉화동전(奉和同前) 앞의 시에 화답하다>는 다음이다.
①일월주인기회소(一月主人幾回笑) 한달에 주인은 몇 번이나 웃을꼬?
②상봉상치차함배(相逢相値且銜杯) 이렇게 만났으니 우선 한잔 하세!
③안간춘색여유수(眼看春色如流水) 봄색을 보는 것은 유수와 같으니
④금일잔화작일개(今日殘花昨日開) 오늘 남은 꽃은 어제 핀 것이지!

2. 월하독작
성당(盛唐)시대(713~ 765) 시선(詩仙) 이태백(李太白= 이백李白= 청련거사靑蓮居士 701~ 762 졸61세)의 오언배율(五言排律) <월하독작(月下獨酌 달빛 아래 홀로 술 마심)> 4수(首) 중 제1수와 제2수는 다음 각 14구(句)씩이다.당(唐)나라의 4대 시인(詩人)으로 ㉮이백은 시선, ㉯두보(杜甫)는 시성(詩聖), ㉰왕유(王維 699~ 759 졸60세)는 시불(詩佛), ㉱이하(李賀 790~ 816 졸26세)는 시귀(詩鬼)라는 존칭(尊稱)이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이백의 시1,100여 편 중 음주관련이 170여 수(首)이고, 후술하는 두보(杜甫)의 시1,400여 편 중 음주관련이 300여 수(首)다.
<월하독작 제1수>
①화간일호주(花間一壺酒) 꽃 사이의 한 동이 술을
②독작무상친(獨酌無相親) 친한 이 없어 혼자 마실 적에
③거배요명월(擧盃邀明月) 잔 들어 밝은 달을 맞이하여
④대영성삼인(對影成三人) 그림자를 대하니 셋이 되었네!
⑤월기불해음(月旣不解飮) 달이야 본래 술 마실 줄 모르지만
⑥영도수아신(影徒隨我身) 그림자는 나를 따라 흉내 내니
⑦잠반월장영(暫伴月將影) 잠시나마 달과 그림자를 데리고
⑧행락수급춘(行樂須及春) 봄철에 마음껏 놀아보세!
⑨아가월배회(我歌月排徊) 내가 노래하니 달은 거닐고
⑩아무영능란(我舞影凌亂) 내가 춤을 추니 그림자는 제멋대로네!
⑪성시동교환(醒時同交歡) 취하지 않을 때는 함께 즐기다가
⑫취후각분산(醉後各分散) 취한 뒤에는 각자 흩어지지만
⑬영결무정유(影結無情遊) 그림자와 무정하게 놀던 인연 맺었으니
⑭상기막운한(相期邈雲漢) 아득한 은하에서 다시 만나세!
<월하독작 제2수>
①천약불애주(天若不愛酒) 하늘이 만약 술을 사랑하지 않으면
②주성부재천(酒星不在天) 주성은 하늘에 없을 것이고
③지약불애주(地若不愛酒) 땅이 만약 술을 사랑하지 않으면
④지응무주천(地應無酒泉) 땅에는 응당 주천이 없지!
⑤천지기애주(天地旣愛酒) 천지가 이미 술을 사랑했으니
⑥애주불괴천(愛酒不愧天) 술 사랑이 하늘에 부끄럽지 않네!
⑦이문청비성(已聞淸比聖) 이미 청주가 성인에 비유됨을 들었고
⑧부도탁여현(復道濁如賢) 또한 탁주가 현인에 비유되는 도리라지!청주와 탁주에 대한 은어로서 성인과 현인에 관해서 후술 <음중팔선가> ③좌승상 이적지 - 고래 “함배낙성칭피현(銜杯樂聖稱避賢)”의 주석을 참조 바란다.

⑨현성기이음(賢聖旣已飮) 현인(청주)과 성인(탁주)을 이미 마셨으니
⑩하필구신선(何必求神仙) 어찌 반드시 신선만을 구하려 하는가?
⑪삼배통대도(三杯通大道) 석잔 술에 대도에 통하고
⑫일두합자연(一斗合自然) 1말술에 자연과 화합이네!
⑬단득주중취(但得酒中趣) 다만 취중에만 얻어지는 진리이니
⑭물위성자전(勿爲醒者傳) 깨어있는 이에게는 전하지 말게!

3. 음중팔선가
성당(盛唐)시대 시성(詩聖)인 두보(杜甫 712~ 770 졸58세)는 시선(詩仙)인 이백(李白)의 11세 연하로 이백을 존경했다. 낭만적인 이상세계를 표현한 이백과 달리, 두보는 현실을 표현했고, 말단의 공직은 잠시일 뿐 평생 가난하게 살았으며, 당시(현종과 안록산의 난 등)의 상황을 묘사한 시가 많아 시사(詩史)라고도 한다. 두보 34세(746년)의 작품인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 술에 취한 8명의 신선을 노래함)>는 다음 내용으로 22구(句)인데, 제6수(首)에서 이백에 대해서는 특별히 4구(句)로 읊었으며, 두보와 동시대 사람인 8선(仙)은 나이와 관작순(官爵順)으로, ①하지장(賀知章 659~ 744 졸85세)하지장은 이백을 보고 “적선인(謫仙人 하늘에서 지상으로 귀양 온 신선)”이라며 자신의 재산인 금귀(金龜 금거북)를 팔아 이백과 함께 술을 마셨다.
②여양왕(汝陽王)-이진(李璡) ③좌승상-이적지(李適之 ?~ 747) ④최종지(崔宗之) ⑤소진(蘇晉 ?~ 734) ⑥이백(李白) ⑦장욱(張旭) ⑧초수(焦遂) 등이다.<음중팔선가>는 소인(騷人 문인이나 시인)과 묵객(墨客 서예가)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8선(仙) 중 ⑧초수만 평민이고 모두 관작을 가진 공직자여서 공무에는 엄격해도 술의 낭만이 용납된 시절이었다. 술을 마셔도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스스로 멋을 부렸을 뿐이고, 모두 선인(仙人)의 경지여서 학문이나 품행이 높지도 못한 보통사람이 흉내 내면 곤란하다.
두보 자신도 오히려 이백보다 더 술을 좋아했다고 보인다.
①하지장 - 우물
지장기마사승선(知章騎馬似乘船) 술 취한 하지장 말 타면 배를 탄 듯
안화락정수저면(眼花落井水底眠) 눈은 게슴츠레 우물에 빠져도 잠드네!
②여양왕 - 주천
여양삼두시조천(汝陽三斗始朝天) 여양은 3두 음주라야 정무시작이고조천(朝天)은 천자를 배알(拜謁)하는 뜻으로 정무의 시작을 의미한다.

도봉국거구류연(道逢麯車口流涎) 길에 누룩수레 만나도 군침 흘리며한부이봉향주천(恨不移封向酒泉) 주천고을에 벼슬 못함을 한탄하네!
③좌승상 이적지 - 고래
좌상일흥비만전(左相日興費萬錢) 좌상은 하루 유흥비로 만전을 쓰고음여장경흡백천(飮如長鯨吸百川) 큰 고래가 강물 마시듯 술 마시며
함배낙성칭피현(銜杯樂聖稱避賢) 청주만 마시지 탁주는 피하지!음주방법에서 함배(銜杯)란 눈을 지그시 감고 숨을 한번 고르면서 말이 재갈을 물 듯 잠깐 입술에 대어 술의 향기를 맛보고 나서 마시는 것이다. “낙성칭피현(樂聖稱避賢)”이란 직역하면 성인으로 부르기를 즐기지 현인을 피한다는 뜻이지만 여기서 성인은 청주를 현인은 탁주를 의미한다. 이는 삼국시대 조조(曹操 155~ 220 졸65세)의 금주령(禁酒令)일 때 애주가들이 몰래 술을 마시면서 은어(隱語)로 청주(淸酒)를 성인(聖人)으로, 탁주(濁酒)를 현인(賢人)으로 각 표현한데서 유래다. 전술한 <월하독작 제2수>의 ⑧⑨와도 관련이다.

④최종지 - 백안
종지소쇄미소년(宗之瀟灑美少年) 종지는 깔끔한 미남으로
거상백안망청천(擧觴白眼望靑天) 거배에 곁눈질로 청천 보는 모습백안(白眼)은 곁눈질인데, 위진남북조시대(魏晉南北朝時代 220~ 589) 진(晉)의 죽림칠현(竹林七賢)인 완적(阮籍 210~ 263 졸53세)이 선비에게는 정중한 예의였지만 세속인에게는 백안(白眼)이었다는데서 유래다.

교여옥수임풍전(皎如玉樹臨風前) 백옥나무 바람에 흔들리는 듯하네!
⑤소진 - 참선
소진장제수부전(蘇晋長齊繡佛前) 소진은 부처에 오랜 정진이다가도
취중왕왕애도선(醉中往往愛逃禪) 취하면 때로 참선 도망을 잘하네!
⑥이백 - 신선
이백일두시백편(李伯一斗詩百篇) 이백은 1말술 마셔야 시백편이고장안시상주가면(長安市上酒家眠) 취하면 시장바닥 술집에서 잠자지!
천자호래불상선(天子呼來不上船) 천자가 불러도 배에 오르지 않고자칭신시주중선(自稱臣是酒中仙) 자칭 “신은 술 취한 신선”이라네!
⑦장욱 - 초서
장욱삼배초성전(張旭三杯草聖傳) 장욱은 석잔 마셔야 초서를 쓰고탈모노정왕공전(脫帽露頂王公前) 탈모 민머리로 왕공귀족 앞에 나가
휘호낙지여운연(揮毫落紙如雲煙) 종이에 일필휘지 구름 연기 같네!
⑧초수 - 고담웅변
초수오두방초연(樵遂五斗方草然) 초수는 다섯 말은 마셔야 신명이 나
고담웅변경사연(高談雄辯驚四筵) 고담준론 말솜씨에 모두들 놀라지!사연(四筵)이란 잔치자리에 합석한 사람을 의미한다. 한편 술의 위력이 대단해서 원래 초수(樵遂)는 평소에 말더듬이다가 술만 마시면 고담웅변이었다.

4. 송강의 한문수필 계주문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 1593 졸57세)이 한참 술을 즐기던 42세에 쓴 한문 수필 <계주문(戒酒文) 술을 경계하는 글>의 일부를 보면 “某之嗜酒有四 不平一也 遇興二也 待客三也 難拒人勸四也(모지기주유사 불평일야 우흥이야 대객삼야 난거인권사야)- 내가 술을 즐기는 4가지 사유가 있으니, 첫재 마음이 불평해서이고, 둘째 감정이 흥겨워서이며, 셋째 손님 접대를 위해서이고, 넷째 남이 권하는 것을 거절하기 어려워서다. 不平則理遣可也 遇興則嘯詠可也 待客則誠信可也 人勸雖苛 吾志旣樹 則不以人言撓奪可也(불평칙이견가야 우흥칙소영가야 대객칙성신가야 인권수가 오지기수 칙불이인언요탈가야)- (그러나) 불평이 있을 때는 이치상 그저 그렇다고 해 버리면 되고, 흥이 일어나면 시(詩)로 읊어버릴 수 있으며, 손님을 접대할 때는 성신으로 하면 되고, 남이 비록 억지로 권하더라도 내 뜻이 이미 서 있으면, 남의 말에 내 뜻이 흔들리거나 빼앗기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然則捨四可 而就一不可之中 終始執迷 以誤一生 何也(연칙사사가 이취일불가지중 종시집미 이오일생 하야)- (그런데) 이 4가지 방도를 버리고, 한 가지 옳지 못한 가운데 빠져들어, 마침내 미혹에 집착하여 일생을 그르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라고 읊다가, 46세에 드디어 좋아하던 술을 끊으면서, “問君何以已斷酒(문군하이이단주)- 그대가 내게 즐기던 술 왜 끊었느냐 묻는다면, 酒中有妙吾不知(주중유묘오불지)- 술에 오묘함이 있는 줄을 나 자신이 알지 못해서이네! 自丙辰年至辛巳(자병진년지신사)- 내가 병진년에서 신사년까지(25년 동안), 朝朝暮暮金屈巵(조조모모금굴치)- 아침저녁마다 황금술잔을 들었건만, 至今未下心中城(지금미하심중성- 지금껏 마음속의 성벽 밑에 이르지 못하여, 酒中有妙吾不知(주중유묘오불지)- 술 속에 오묘함이 있는지를 나는 모르겠노라!”라 했다.

5. 조지훈의 주도유단
1956년도에 기고한 수필 시인 조지훈(趙芝薰 1920~ 1968 졸48세)의 <주도유단(酒道有段)>을 요약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많이 안다고 반드시 교양이 높은 것은 아니 듯이, 술도 많이 마시고 많이 떠드는 것만으로 주격(酒格)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어서, 첫째 술을 마시는 연륜(年輪)이 문제요, 둘째 술을 같이 마시는 친구(親舊)가 문제요, 셋째 술을 마시는 기회(機會)가 문제이며, 넷째 술을 마시는 동기(動機)가 문제이고, 다섯째 술버릇인 행동(行動)이 문제다.
음주 버릇에는 18단계가 있어, 급(級)의 단계에서 다음과 같은데, 9급에서 6급까지는 아직 술의 진미(眞味)를 모르는 사람이요, 5급에서 2급까지는 어떤 목적을 위해서 술을 마시니 술의 진체(眞諦)를 모르는 사람으로서, 술을 배척하는 척주(斥酒)내지 반주당(反酒黨)인 셈이다. 1급에서부터 비로소 주당(酒黨)의 대열에 속하게 된다.
9급은 부주(不酒)- 술을 아애 먹지 못하는 사람,
8급은 외주(畏酒)- 술 마시기를 겁내는 사람,
7급은 민주(憫酒)- 술 취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는 사람,
6급은 은주(隱酒)- 아쉬워서 혼자 숨어 마시는 사람,
5급은 상주(商酒)- 상업적인 이익이 있을 때만 술을 내는 사람,
4급은 색주(色酒)- 성생활을 위하여 술을 마시는 사람,
3급은 수주(睡酒)- 잠이 안 와서 술을 마시는 사람,
2급은 반주(飯酒)- 밥맛을 돕기 위해서 마시는 사람,
초급은 학주(學酒)- 술의 진경(眞境 진정한 경지)을 배우는 사람으로 주졸(酒卒)이라고도 한다.
보다 높은 단(段)의 단계는 다음과 같은데, 초단에서 4단까지는 술의 진미(眞味)와 진경(眞境)을 이미 통달한 사람이고, 5단에서 8단까지는 술에 관해서 신선 내지 성인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다.
초단은 애주(愛酒)- 술의 취미를 맛보는 사람으로 주도(酒徒)라 한다.
2단은 기주(耆酒)- 술의 진미에 반한 사람으로 주객(酒客)이라 한다.
3단은 탐주(耽酒)- 술의 진경을 체득한 사람으로 주호(酒豪)라 한다.
4단은 폭주(暴酒)- 주도를 수련하는 사람으로 주광(酒狂)이라 한다.
5단은 장주(長酒)- 주도삼매(酒道三昧)에 들어 주선(酒仙)이라 한다.
6단은 석주(惜酒)- 술과 인정을 아끼는 사람으로 주현(酒賢)이다.
7단은 낙주(樂酒)-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으로 주성(酒聖)이라 한다.
8단은 관주(觀酒)- 술을 보고 즐거워하되 이미 마실 수 없는 사람으로 주종(酒宗)이라 한다. 마지막으로 9단은 폐주(廢酒)- 술로 말미암아 다른 술 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으로 열반주(涅槃酒)라 하면서 이승 사람이 아니므로 이 세상에 9단은 없다고 한다.

-이상-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저작권자 © 정읍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