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읍신문
최근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명량’이 대박을 터트렸다고 한다. 아바타를 앞지른 것이다. 그런가하면 최근 한국을 방문한 교황 프란치스코의 방한에 한국 사람들, 다수는 열광을 했으며 또 그의 행보는 많은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물하고 돌아갔다.

영화 명량이 대박을 터트린 이유와 교황의 방한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표명한 이유는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작금에 한국사회는 급속한 풍요로움과 민주화의 혜택 속에서 나눔과 배려 그리고 사랑과 포용이 근본을 이루고 있는 선진의식을 다수는 제대로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

민과 관의 반목과 갈등도 있고 가진 자와 덜 가진 자와의 상생은 고사하고 이해불가론이 심각해지고 가정구성원과 조직사회의 위계마저도 무너져 내리고 있는 듯 보이고 있다.

특히 지도층인 정치권부터 리더 층과 가진 자들의 진정한 리더십이 부족한 것이다. 그런가하면 매사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때를 쓰듯, 개인 및 집단 이기적 생각이 난무함으로서 빚어진 총체적인 국가관의 부재 속에서 오늘의 영화 ‘명량’의 이순신과 교황의 방문은 국민들에게 신선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청량제 역할을 해낸 것이다.

풍요 속에 빈곤함을 느껴서인지 아니면 갑작스런 풍요로움 때문에 그것을 누리는 자들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국민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망각해서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이기적인 생각에 정치권의 우왕좌왕을 즐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것들은 곧 이 나라에 정치력부재와 리더십 부족 등으로 이어졌으며 또한 그런 집단과 개인의 이기주의적 욕심들은 국민적 갈등을 더 부추겼다고 본다.

이순신과 교황의 공통점은 자신의 몫은 없다는 것이다. 또 그들에게서는 편견과 이기적인 욕심도 없었다. 있다면 국가관과 세계관 그리고 대의와 사랑뿐이었다. 결코 보통의 사람들이 드러내는 욕심 즉 자신의 몫을 챙기려는 행위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서는 진정성만이 있었던 것이다. 누구에게도 또 윗사람이든 가식적인 행위로서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 없었다는 공통점이 많았다.

무소유의 삶을 사는 성철 스님도 그러한 것처럼, 종교지도자뿐만 아니라 지도자들의 청빈의 생활과 투철한 국가관과 국민을 위하는 위민의 생각들이 곧 시대와 한 나라의 경계를 뛰어 넘어서 많은 국민들을 감동케 했다.

이번 교황의 방한 중 우리에게 보여준 언행 역시 그의 청빈과 무소유의 삶속에서 나오는 진정한 나눔과 배려, 사랑과 관용의 진정성을 가진 실천적 행보뿐이었다. 그가 무엇을 해결해 주는 해결사의 행보가 아니었다.

아프고 고통 받고 있는 자들에게는 위로와 함께 쓰다듬어 주었다. 또한 피해자이든 이해관계인이든 모두가 서로가 사랑할 것을 주문했다. 그 나머지는 스스로가 자문자답하듯 각자가 풀어야 할 몫임을, 무언적인 행동과 함께 보여주고 돌아가신 것이다.

자칫 또 교황의 깊은 뜻과 행보를, 자의적인 잣대로서 곡해 해석하며 서로가 또 네 탓과 내 탓을 하지 말았으면 싶다. 서로가 먼저 보듬고 이해하고 서로가 안아주려는 실천적 행동이 우리들에게는 필요한 때이다.

매사 서로간의 이기적인 욕심이 화를 낳고 그 욕심 때문에 폐가 망신과 함께 국론이 분열되고 국가 안위마저도 위태롭게 했던, 당쟁과 당파싸움이 만연했던 과거사를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김태룡주필/2014년8월20일/11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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