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철 (전 정읍시청 국장)

(Ⅰ)

정읍천변 옆에 의젓하게 자리 잡고 있는 정읍시립중앙도서관 2층 열람실에서 책을 보다 잠시 창밖을 바라본다. 천변가로수로 심어져 있는 벚나무 잎들은 5월의 끝자락으로 가는 길목이라 그런지 더 싱그럽게 보인다. 만발한 벚꽃 잎들이 바람과 함께 하얀 눈이 내리는 것처럼 흩날리는 것을 바라 볼 때가 불과 얼마 전 같았는데, 새삼스레 빠른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 문득 창밖에서 ‘봄날은 간다’는 노래가 흘러오는 것 같다.

 

-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

 

이 노래는 1953년도에 손로원씨의 작사에 박시춘씨가 작곡하고 백설희씨가 불렀던 노래이다. 우리나라 많은 시인들이 대중가요 가사중 제일 좋은 노랫말로 뽑을 정도로 감미롭고 유명한 노래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름 있는 가수들이 다시 ‘리메이크’ 하여 이 노래를 많이 부르고 있다고 한다. 백설희씨 노래는 체념적인 느낌이 나는 낭랑한 목소리로 가는 봄날의 아쉬움을 노래하였다고 하고, 가장 한국적인 목소리라는 장사익씨의 노래는 자조적인 탄식과 한이 어우러진 목소리로 봄날의 여한을 불렀다고 말하고 있다. 추운 겨울삭풍을 참고 넘기고 와서 따뜻함과 포근함이 어울어지는 봄날이 오면 마냥 지속되리라 믿고 싶은데, 어느새 봄날은 슬그머니 우리 곁을 사라지기에 모두 다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중국 송나라때 시인 소동파(蘇東坡)도 해마다 봄이 가는 것을 서러워했다지만 봄은 언제나 그 서러움을 용납하지 않고 떠나가는 것이다.

 

(Ⅱ)

봄은 누군가의 말대로 ‘보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말이라고도 한다. 머물다

사라지는 우리들의 삶과 함께 눈부시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들의 봄날의 몰락, 아련한 어린 날들의 추억을 피게 하는 봄날의 아지랑이, 나풀거리는 여인들의 옷자락에서 풍겨지는 봄의 정취, 이런 것들을 봄날에 꽃과 함께 보게 된다. 흔히 꽃과 함께 인생의 무상함을 뜻하는 말로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이라고 표현한다. 즉 ‘열흘 붉은 꽃은 없고 부귀와 영화는 오래가지 못한다’ 고 뜻한다. 봄날에 꽃 천지인가 했더니 오히려 낙화(洛花)라는 잔해를 여기저기 흔적처럼 남기고 있다. 요사이 항상 봄날인 줄 착각하는 이들 때문에 우리 사회의 낙화의 경종(警鐘)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게 한다. 얼마 전에 서울에 있는 중학교 동창친구가 문자로 보낸 글귀가 떠오른다.

 

-『대지약우(大智若愚)』 직역을 하면 ‘큰 지혜는 어리석게 보인다’고 해석된다. 즉 ‘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잔재주를 부리지 않으므로 언뜻 보기에는 어리석게 보인다’는 뜻이다 -

 

잘난 사람이 너무 많아서 탈이라고 한다. 스펙이 좋은 똑똑한 자들이 패권주의에 사로잡혀 누구에게나 안하무인(眼下無人)의 막말을 퍼붓고 있어 무례(無禮)하기가 그지없다고 한다. 지금의 우리가 지향하여 할 삶의 탁월한 방향은 『대지약우(大智若愚)』즉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태도, 더 나아가 자신을 도외시하는 태도라고 친구는 역설하였다. 다시 봄날은 간다. 보는 것은 모든 것의 시작이라 한다. 시작이 좋으면 끝도 좋다고 한다. 내 주위의 모든 사람이 친구가 한 말을 잘 가다듬고 봄을 기분 좋게 보내고 싶다. 올해에도 봄날은 이렇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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