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길
사)갑오동학농민혁명
유족보존회 전이사장

갑오농민동학혁명 국가 기념일 제정에 대한 논란에 대하여 1894년 정원 8일 석양에 주민들이 일으킨 갑오농민동학혁명은 일백년이 지난 2004년 3월 5일 비로소 그에 대한 법률이 제정되어 그 뜻을 높이 기리고 명예 회복과 기념사업을 추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도 법에 공표된 지 11년이 지나도록 첫 단추라 할 수 있는 기념일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간 기념일에 대하여 여러 가지 논란이 있었으나 최종결정을 하지 못한 데에는 두 가지 주장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하나는 황토현 전승일로 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1894년 5월 5일부터 11일까지 7일간 대접전 끝에 농민군이 대승을 거둔 날로 현재 모든 국가 기념시설이 집중되어 있는 날이다.

또 하나는 고부 봉기 2개월 후에 일어난 무장기포일을 정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고부봉기는 지역적인 문제로 발생하였고 발생 후 자진 해산 하였으며 세력이 미약하여 고부지역을 벗어나지 못한 민란 형태로 혁명의 전 단계 (주 전개와 정비) 라는 것이다.

무장기포는 동학이 기포하였고 민요군이 조직되었으며 무장포고문을 발하여 전쟁으로 이어져 혁명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상 두 주장을 보면 주장하는 차이는 있겠지만 지역감정으로 번졌으며 두 주장 간 한 치의 양보란 있을 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결국 지역 이기주의로 보는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갑오농민동학혁명은 미완의 혁명으로 끝이 났다. 그 후 2004년 3월 5일 보상법이 발효됨에 비로소 성공한 날이 되었다.

혁명이 성공하여 대미를 장식하였다면 그날을 기념일로 정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끝맺음이 없으니 맨 처음 봉기한 날을 기념일로 정하는 것이 순리다.

전개과정에서 있었든 하나의 사건을 들추어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기념일로 정한다면 그것은 인위적인 설정이며 또한 오류라고 본다. 즉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다.

고부봉기는 실패한 봉기가 아니라 고부 봉기 성공 후 말목장터 감나무 밑에 장투청을 설치하여 전봉준 장군의 민요군 수십 명이모여 해산 명령이 내려졌으나 해산하면 장두는 죽는다고 수직하며 이곳을 지켰으며 장두 외 수십 인이 무장에 있는 손화중 장군과 협의하여 무장기포가 이뤄졌던 것이다.

여러 가지 기념일 제정에 관한 과정이 있었겠지만 우선 내가 아는 지금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2011년 5월 관련 교수들 24명에게 기념일 제정에 관한 의견을 서면으로 제출받은 바, 고부봉기 2명, 황토현전승일 2명, 무장기포일 12명을 제출받아 기념일 제정위원회 위원장 신순철(원대 교수) 외 20여인이 참석하여 기념일을 무장기포일로 정하려했다. 그때 유적보존회 전회원이 물리력으로 중지시켰으며 전국 유가족 회에서 회원 상대로 투표를 한 바, 2004년 3월 5일 법령 공포일 64명, 무장기포일 24명, 황토현 전승일 12명, 기권 1명으로 법령공포일로 정하고자 국회를 방문, 김한길 대표위원이 문화공보위원장일 때 제출하였으나 갑오농민동학혁명은 고부봉기일로 해야 전국민이 알고 있으며 국정교과서에 있는 대로 된다면서 국회에서 결정하여 통보한다고했다. 그러나 그가 곧바로 대표위원으로 영전되는 바람에 유가족회에서 주장하는 뜻대로 되지는 못했었다.

또한 2014년 12월 27일 대전에서 전국 대표자들이 모여 결정하지 못하고 천도교 교령, 유가족대표, 교수대표, 재단 대표 등 4분에게 경정토록 위임하여 만장일치로 논산기포일 1894년 10월 19일, 전주화약일 1894년 5월 8일(음)/6월10일(양)로 두 안을 마련하여 총회에 부의하여 결정키로 했다.

그리고 2015년 3월 3일 대전에서 전주화약일로 전원 찬성하여 가부간 투표를 한 바 총 20명이 참석하여 찬성 13명, 반대 6명, 기권 1명으로 민주주의 방식에 아무런 하자 없이 전주 화약일로 결정된 줄로 알고 있다.

특히나 동학 농민 혁명 계승사업회 이갑상 대표는 황토현 전승일을 주장하지 않고 내려놓겠다면서 투표에 참여한다는 선언을 하고 투표를 한 결과였다. 그 결과를 2014년 3월 5일자 전북일보에 전일 5월 7일(음)로 결정된 것으로 대서특필 된 바 있다.

유적보존회의 의견으로는 여러 가지 논란이 있겠으나 전주화약일 5월 8일은 어버이날로 국가 기념일이기 때문에 다음날 5월 9일로 농번기도 피하고 황토현 전쟁이 5월 5일부터 5월 11일이기 때문에 황토현 전쟁중인날도 되므로 국가기념일을 정했으면 제안한다.

유적보존회에서는 2015년 1월 대통령이하 각 요로에 진정서를 제출하여 회신한 바 있으나 ‘국가 기념일은 고부봉기로 해야 한다’라고 주장한 바 있으며 나름대로 우리 유적보존회에서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행동했기 때문에 미련은 없으나 고부 봉기일과 황토현 전승일을 한날로 보지 말아주기를 바랄뿐이다. (대통령진정서 1부 최신 1부)

몇 년을 두고 한 이야기 하고 또 하고 수십 번을 해 봐도 지금까지 말 한마디 없다가 어쩐 일인지 또다시 지난 이야기만 하고 있으니 지금까지 겪었든 유적보존회에서는 참으로 난처하다 할 것이다.

전국적으로 관계되는 많은 당사자들이 무장기포와 황토현 전승일은 지역 이기주의로 흘러갔기 때문에 제외를 하고 제 3의 날로 국가 기념일을 정해야 된다고 결론을 내려 전주 화약일까지 진행되었는데 결정투표까지 참여했던 대상자들이 반대에 대한 반대를 한다면 어떡하라는 말인가 즉, 국가기념일을 정하지 말자는 뜻으로밖에 해석 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전주화약일이 홍계훈한테 폐정개혁안을 국왕에게 보고하고 농민군의 안전귀가를 보장 조건으로 체결하였으나 거짓말로 당했다면 2차 전주화약일 즉 집장소설치일(1894년 7월 6일)을 국가 기념일로 정함은 (유적보존회에서는 제2안으로 제언한다) 어떨는지?

국가 기념일을 제정한다 해서 정읍에 큰 덕을 볼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떻게 하든 국가기념일을 정해서 참여자의 떳떳한 보상 대우와 전국화 세계화로 나아가야 할 것으로 사료되어 제언한다.

(사) 갑오농민동학혁명유적보존회 전 이사장 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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