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호리 일대에는 구마모토[熊本利平] 농장 창고 건물과 일본인 경리과장 및 농산과장 사택, 일본인과 조선 농민의 합숙소, 일본인심상고등소학교, 조선인공립보통학교 건물, 해방 이후 우체국으로 이용되었던 다우에타로 농장 사무실, 동양척식회사 사무실과 양말공장 등 일제강점기 건축물들이 마을 곳곳에 남아 있다. 이를 관광자원화 할 경우, 그 파급효과에 거는 기대가 자못 크다.

다만 콘텐츠는 많은데 너무 방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관계로 어떻게 비용을 마련해야 할지 시에서도 고민하고 있다.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이야기다. 따라서 5년이든, 10년이든 중장기 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부산에서는 서울 광화문 광장(1만 8,000㎡)보다 두 배 가까이 넓은 ‘송상현(宋象賢) 광장’을 개장하였다. 1994년 해당 부지에 대한 토지 보상을 시작한 지 20년 만에 이루어진 쾌거로 1,850억 원을 들여 마무리 지었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어렵다면 사업 규모를 축소하고,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근대 건축물을 매입하여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목포의 동척회사 지점을 시민단체가 매입해서 근대역사관으로 활용한 사례가 있다.

화호리 일대 근대문화유산은 활용하기에 앞서 우선은 보존을 서둘러야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다우에타로 농장 사무실은 건물주가 ‘적산가옥(敵産家屋)’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는지 건축물 일부를 헐다가 중단한 상태로 현재 붕괴 직전에 있기 때문이다. 진즉 등록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하는 쪽으로 갔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그것도 문화재는 사유재산이라도 함부로 헐어서는 안 된다고 제지하는 바람에 그나마도 지금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아이들이 밤늦은 시간에 허물어져가는 건물 안쪽에 들어가는 담력시험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 같고 금년 장마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으니 건물이 온전할까 염려된다. 반면에 자손들이 특별히 필요없는 일제건축물을 팔아버리라고 해도 고집스레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동척회사 사무실과 날로 훼손되어가는 경리과장 사택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막을 씌워 관리하고 있는 용서(龍瑞)마을 이장같은 분들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분들을 위해서라도 활용방안을 서둘러야 한다. 용역만 끝내고 방치할 일이 아니다.

농장 사무실은 전형적인 일본식 건축이긴 하나 보존가치가 일대에서는 가장 뛰어나다. 뿐만 아니라 농장 사무실 일대에는 생필품과 식료품을 팔았던 가게와 대장간과 문방구를 팔았던 건물이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마을의 중심인 당산나무 아래에는 구마모토 창고 건물이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구마모토가 총독부에 건의해 설치했다고 하는 화호지서 자리와 사무실은 없어지고 터만 남아 있으나, 용역을 맡았던 전북대학교 함한희 교수의 말처럼 화호리는 마을 전체가 살아있는 ‘생활사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 수탈의 현장인 화호리 일대의 보존 가치 타당성 조사는 이미 2007년에 시작되었다. 당시 현지 이장과 읍장이 동행한 가운데 함교수는 문화재 복원과 지정, 국가문화재 지정이 시급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대략적이나마 타당성 조사가 끝난 지 8년이 지난 시점에도 큰 틀에서 방향은 제시되었으나 사업추진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될 일이다. 예산이 적으면 적은대로 빨리 착수해야 한다. 옛것에서 신성장 동력을 찾는 마인드가 필요하다. 근대 식민도시로 형성된 목포와 군산 등지의 성공적인 사례를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 것인가.

김재영(세계문화유산위원회 전라북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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