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정섭 칼럼위원

1977년 1인당 국민소득 1천불에 불과했던 우리나라가 2007년도에 2만불을 넘어섰다. 소득 2만불을 30년만에 이뤄낸 나라는 전 세계에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2만불이 되려면 보통은 수백년 걸리는 게 많은 선진국들의 예이다. 이걸 이뤄낸 지금의 어르신들 덕분에 우린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며 의료기술 발달과 함께 평균수명도 많이 늘어났다. 굶거나 집 없는 사람이 없고 차 없는 사람도 드물 정도로 우리 생활수준은 풍요로워졌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은 많이 행복해 졌다.

정말 행복해졌는지 조금 더 들어가 보자. 행복은 물질적인 것과 정서적인 것으로 나뉜다. 물질적인 행복은 통상 1년에 돈을 얼마나 버느냐 하는 양적인 잣대로 따진다. 즉 연봉이 얼마냐, 사는 아파트가 몇 평이고 어떤 차를 타고 다니며, 외식을 얼마나 자주 하느냐 등 대부분 돈이면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정서적인 행복은 그렇지 않다. 살면서 얼마나 가슴 뛰는 기쁨을 자주 갖느냐, 하루 몇 번이나 웃느냐, 사회규범들을 얼마나 잘 지키고 남을 배려하며 평소 기부를 얼마나 하느냐, 또한 제 2외국어는 몇 개나 구사할 수 있느냐 등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질적인 잣대로 따진다. 중산층이라는 용어도 그 잣대가 우리와 서양 선진국들 간에 차이가 난다.

맞다. 물질적인 풍요도 중요하지만 정서적으로 풍요로워야 진짜 행복이 시작된다. 그래선지 사람들은 기본적인 의식주가 충족되는 2만불을 넘어서면 물질적인 욕구는 조금씩 벗어난다. 대신 다양한 취미활동을 하고 자원봉사를 통해 나눔의 가치를 깨닫기도 하며 행복해 하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참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한 나라의 정서적인 행복수준을 평가할 때 척도로 쓰는 게 있다. 바로 그 나라의 1인당 꽃소비량이다. OECD 선진국 20여개국의 국민소득과 꽃소비량간의 관계를 분석해보면 서로 고도로 유의한 상관을 보이기 때문이다. 즉 소득이 높을수록 꽃소비액은 비례하여 많아진다. 근데 우리나라는 예외다. 소득 2만불이면 1인당 연간 꽃소비액이 5만원정도 되어야 하는데 우린 13천원대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이지만 꽃소비액으로 본 정서적인 행복은 한참 낮은 수준이라는 얘기다. 세계 자살률 1위, 교통사고 발생량 1위... 이런 통계들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의 정서와 문화수준을 결정짓는 또 다른 요인은 환경이다. 우린 대도시를 기준으로 80%이상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 아파트는 이웃이 누군지와 상관없이 오직 나만 편하게 살면 되는 구조다. 함께 상생하고 협력해야 이뤄낼 수 있는 공동체 정신은 아예 만들어질 수 없는 환경구조다. 게다가 흙도 밟지 않고 늘 콘크리트나 아스팔트 위에서만 사니 생명존엄성도 자리잡기 어렵다. 생업을 위해 부득이 대도시에 나가 아파트에 사는 선진국 도시민들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우린 여전히 아파트 위치와 평수가 부의 상징처럼 되어 있고 내부 시설은 점차 자동화, 편이성 추구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에겐 경작본능이란 게 있다. 인류가 유목생활을 거쳐 한곳에 정착하며 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경작성이라는 유전인자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도시농업이나 생활원예, 정원 및 텃밭가꾸기 등의 경작활동이 뜨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도시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행복감과 자긍심은 대단하다. 최근 국가정원으로 지정된 순천만 정원의 주인인 순천시민들은 삶의 자세가 눈에 띠게 달라지고 있다. 국가정원이니 유지관리에 필요한 예산을 국가가 대고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시민들 스스로 정원도시에 살고 있다는 자긍심과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수원시에서는 도시의 공원관리를 시민정원사들에게 맡겨 시민들의 주인의식과 공동체 참여의식을 높이고 있다. 최근 들어 서울은 물론 많은 도시들이 시민정원사를 양성하느라 열을 올리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가 관리하는 공원이나 녹지대를 시민단체들에게 위탁하여 시민들이 직접 관리하게 되면 시민들은 시의 공원이나 꽃길, 아파트 정원 등이 내 것이라는 주인의식이 생긴다. 우리 정읍도 이제 본격적으로 아름다운 정읍 만들기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우선 시 자원봉사자 중에서 꽃이나 정원가꾸기를 희망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시민정원사를 양성할 것을 제안한다. 핵심기술을 갖춘 시민 전문가들이 생기면 아파트는 단지내 정원에서, 주택가는 자기 집과 골목길을 중심으로 마을정원가꾸기를 공동으로 펼쳐 갈 수 있다. 마을정원 가꾸기가 발전하여 주택 밀집지역은 담장허물기로 이어질 수 있다. 아름다운 정읍만들기가 시민 자발적으로 확산된다면 관광 정읍의 또 다른 명물이 될 것이 확실하다. 궁극적으로는 시의 예산절약은 물론 참여민주주의의 건강한 발전으로도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 꽃은 우리 인류의 탄생보다 훨씬 이전부터 존재하면서 자연을 이루어왔다. 우리 삶 역시 태어나 죽을 때까지 주요 과정이나 희로애락에 꽃은 늘 함께 해오고 있다. 꽃(식물)의 가치는 그저 아름답고 향기롭다는 것만은 아니다. 답답하게 밀폐 오염된 실내공기의 정화, 숲에서 느낄 수 있는 음이온의 배출, 증산작용을 통한 온습도 조절 등 다양한 기능을 통해 우리 생활환경을 항상 쾌적하게 유지해 준다. 현대인들이 받지 않고 살 수 없는 스트레스도 말끔하게 풀어준다는 최근의 연구결과도 있다. 꽃이 자연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우린 배울 게 참 많다. 25만종의 꽃피는 식물은 제각기 자신만의 고유 모양을 갖고 있고, 벌 나비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며, 자기들끼리 모여 군락을 이루며 산다. 꽃처럼 산다는 것은 나만의 칼라가 있고, 나를 통해 주변이 행복해지며, 공동체 의식을 갖고 함께 항상 더불어 사는 걸 말한다. 우리 정읍시민들도 꽃의 가치를 알고 꽃이 생활문화로 정착되길 바라며, 꽃처럼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송 정 섭 이학박사(2000, 서울시립대)

· (사)정원문화포럼 회장(2014~)

· (사)한국도시농업연구회장(2014~)

· 농식품부, 산림청, 서울시, 경기도 꽃 및 정원분야 자문위원(2014~)

· 농촌진흥청 화훼분야 연구원, 화훼과장, 도시농업과장 역임(1981~2014)

· 서울특별시, 경기도 시민정원사 양성 전문강사(2005~)

· 최신화훼, 생활원예, 도시농업, 자생식물 외 다수 집필(1989~)

· 꽃, 정원, 도시농업, 귀농귀촌 분야 강의 컨설팅 자문 평가(2006~)

· SNS 페이스북 365일 꽃이야기 운영자 및 꽃담 회장(2011~)

· 정읍시 송죽마을 귀농(2015~)

· 꽃과 정원교실 ‘꽃필’ 운영(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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