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승명가 악기장 서인석씨

가야금, 북, 장구 등 국악기를 제작하며 장인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전승명가 악기장 서인석씨가 지난달 28일 전북도 무형문화재 악기장(장고·북 제작) 보유자로 인정됐다.

100여 년 전 그의 할아버지 서영관 선생이 소목장을 운영하기 시작한 것부터 전북도 무형문화재 제12-1 악기장 보유자 아버지 서남규 장인, 그리고 지난해 무형문화재로 등록된 서인석씨까지 3대가 명장의 길을 걷고 있어 화제다.

“아버지를 따라 나무를 패고, 대패로 다듬고 그것이 10살 때부터였으니 이 길로 들어선 게 벌써 40년도 더됐다. 사실 문화재 등록은 10여 년 전부터 나왔던 얘기다. 2015년이 가기 전에 문화재가 돼 기쁘다”

그가 있는 샘고을 전통시장 전승명가를 방문하자, 제일먼저 도료를 칠하지 않은 백색의 뽀얀 장구 몸통이 눈에 띄었다. 나뭇결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장구, 크기와 모양도 갖가지며 쓰임에 따라 장구에 입히는 색감과 그림도 달라서 서인석 문화재의 예술성과 장인정신이 그대로 녹아나 있는 듯하다.

“장구 제작은 나무선별부터 시작한다. 깎고 다듬는 것 못지않게 나무를 건조하는 작업도 중요한데 건조기간만 2년~ 3년 정도 걸린다. 건조가 잘 돼야만 대패도 할 수 있고 그렇게 만들어진 장구의 소리가 더 맑기 때문에 신경을 쓴다. 장구에 쓰이는 가죽을 고르는 것과 마무리 단계를 포함하면 하나의 장구 당 기본 5년이 소요된다”

현재 1년 365일을 장구와 함께하고 있는 서 문화재는 20대 초반 남원의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체계와 질서가 잡히지 않아 탁상행정이 만연했던 당시 공무원 생활에 회의감을 느끼고 2년 만에 사표, 군 제대 후부터 본격적으로 가업을 잇기 시작했다. 80~90년대 그의 수공공작 장구는 그 예술성과 독창성이 전국 각지에서 명성을 떨치며 경탄을 자아냈다.

악기장의 거장 전승명가의 장구는 연 400~500개가량 제작돼 서울과 대구 충남 등 전국의 악기장에게 보내진다고.

“정읍농악을 이끌던 아버지는 단장을 하시며 손수 제작한 장구로 정읍농악을 선보였다. 그것을 본 전국 농악 관계자 및 악기장들은 소리의 울림을 칭찬하면서 장구에 관심을 갖고 거래를 요청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전국 명인들의 찬사를 받은 정읍 장구. 그가 사랑하는 것은 장구나 북 악기를 만드는 것만이 아니었다. 정읍 농악을 이끌던 아버지의 영향을 그대로 이어받은 그는 정읍농악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었다. 지난 80,90년대 정읍시립농악단 단장을 맡아 전주대사습전국대회에서 연거푸 우승도 차지했다. 

전통의 미와 소리를 그대로 장구에 옮겨 놓은 서 문화재의 관심은 '정읍농악의 발전'이고, 그의 걱정 또한 '정읍농악'이었다.

그는 “정읍에 뿌리를 둔 젊은 인재들이 전수를 통해 농악의 전통성을 굳건히 해야 하며, 그럴 수 있는 환경과 장소가 필요하다. 우도 농악의 본거지 정읍 농악이 갖고 있는 우수성과 전통성을 알리고 굳히는 것은 남은 과제일 것이다”고 정읍농악과 악기를 다루는 이들을 염려했다.

그의 수 천 번 손 짓 끝에 고운 소리를 낼 수 있는 국악기가 탄생한다. 특유의 끈기와 인내로 빚어낸 걸작은 수공공작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선대로부터 전해오는 기술을 창작하고 개발하면서 전통을 보존하고 발전시켜온 서 문화재. 악기에 숨을 불어넣어 진정한 예술로 다가서게 했던 그의 바람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종류의 국악기를 다룰 수 있도록 교본을 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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