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영화 덕혜옹주를 보았다. 패망해가는 왕조에서 태어난 옹주의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왔는지 550만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고 한다. 이 영화는 역사의 왜곡을  문제 삼는 관객도  많았다. 덕혜옹주와 영친왕이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상해로 망명을 시도하는 장면들과 애국심을 고취하는 장면들이 너무 허구에 치우쳤다는 논란이 그것이다. 적당한 팩트와 픽션의 조합은 영화의 재미와 완성도를 한 차원 높이는 역할을 하지만 역사에 기초한 영화는 역사를 왜곡하는 수준까지 만들어져서는 않된다는 생각이다. 친일에 더하여 매국의 수준에 이르는 인물들을 독립운동가로 둔갑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않되겠다. 독립 운동가이었던 의친왕이 상해 망명의 문제로 왕세자로 책봉되지 못하고  대신에 왕세자로 책봉된 인물이 영친왕이었으며 안중근 의사에 의해 사살된 이또 히로부미를 후견인으로 삼아 일본에 유학하고 일본의 군부에 입대하여 장성을 지낸 인물이며 일제의 지원 아래 자손들까지 편안한 삶을 살았으며, 해방 후까지도 일제의 후원이 중단될까 두려워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어느 기자의 한탄대로 조선의 왕들이 독립운동을 해가며 나라의 미래를 걱정했으면, 일제에 한일 합방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을사오적 이완용,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권중현의 이름은 절대로 잊어서는 않되는 이름들이다. 양심의 괴롭힘인지 모르지만 이들은 그리 오래 살지는 못한 것 같다. 대신 일제의 하사품들을 챙겨서 물려준 재산으로 후손들이 잘살고 있으며, 친일파 재산을 회수하기 위한 국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0.03%의 회수율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고 했던가 독립을 한지 70년이 지난 지금도 독립 운동가의 후손들은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재산을 물려받지 못해서 궁핍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조선은 이성계의 구테타로 고려를 멸망시키고 1392년 나라를 세웠고, 개국 초기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세조의 손자인 성종 때에 이르러 나라의 틀을 만들어간다. 외세의 침입이 거의 없어 태평성대를 이어가다가, 1592년 임진왜란을 계기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 사림세력의 등장으로 동인과 서인으로 갈리는 붕당정치의 시작이 그것이다.  양반들이 갖는 신분적 혜택은 일반 양민의 생활의 피폐를 의미했다. 1636년 병자호란을 계기로 남인과 서인, 노론 서론, 청남, 탁남으로 분열된 붕당 정치는 영조, 정조의 탕평책으로 소멸되는 듯하다가 19세기의 순조, 헌종, 철종 시대의 외척 세력을 불러와 60년간 계속되었다. 세도 정치를 타파하기 위해 등장한 고종의 아버지 흥선 대원군은 며느리와 정권 쟁탈전을 벌리고 당백전을 발행하여 국고를 탕진했으며, 며느리는 무당을 앞세워 청탁, 뇌물수뢰, 이권 개입 등 백성들을 수탈하면서 나머지 국고가 탕진이 되고, 밀려드는 서양 문물을 소화하지 못하고 한일 합방의 치욕을 당하였고, 70년이 지난 지금도 이때의 상처가 아직도 남아 신음하고 있다. 
문제는 지나간 상처가 아니라 앞으로 벌어질 미래의 일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후진국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현재의 국제 정세는 조선 말기의 열강 확장 시대를 방불할 만큼 치열한 각축장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브렉시트를 표방하는 영국, 신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는 미국과 이미 세계의 열강이 되어버린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뒤늦게 채결한 FTA를 기반으로 자유 무역으로 수출을 늘려갈 구상을 하였지만, EU를 비롯한 미국이 ‘신고립주의’를 표방한  보호무역으로의 회귀를 준비 중이다. 95% 이상의 국부를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침몰의 위기를 다시 맞을 수밖에 없다. 조선 말기의 위정자의 정권다툼은 백성들의 경제의 파탄으로 이어지며 국가의 몰락의 길로 이어짐을 교훈으로 남겨주고 있다. 나라가 부강하지 못하면 또다시 노예로 전락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올해 4월의 총선을 전후한 위정자들의 붕당을 얘기할 필요도 없이 현재 대한민국은 분열, 분열의 길을 끝없이 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나라에는 어른이 없다. 원로들이 나서서 한마디를 하면 자기와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신상 털기, 마녀사냥을 일삼는다. 어른을 모실 자세가 되어있지 못하다보니 어른들은 입을 닫고 침묵한다. 자기와 생각이 다르고, 의견이 다르면 자기의 적이 되고 공격의 대상이 된다. 토론의 문화가 정착이 되지못하니 토론의 자리를 마련하면 싸움판을 만들어 버린다. 세계 최고의 인터넷 인프라가 세계 최악의 여론 몰이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익명성을 악용한 SNS가 나라를 망국으로 몰고 가는 도구로 이용될까 우려스럽다.
2016년 11월은 1910년 8월의 국치일에 버금갈 만큼 부끄러운 하루하루가 될 것 같다. 조폭, 무당의 집단, 얼굴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르는 후안무치(厚顔無恥)의 집단이 나라를 다스리도록 방치한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동안 언론들은 무엇을 했는가? 두려움 때문에 복수를 당할까봐 두려워 침묵하고 있었을까? 
4류의 정치수준과 1류의 국민 의식이라는 단어가 회자된 지가 오래되었다. 국가의 위기나 환란에도 국가를 지킨 이들은 민초였으며, 국가를 책임져야 할 무리들은 도망가거나 나라를 팔아먹는데 혈안이 되었던 것이 부끄러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5차에 걸친 시위문화는 세계가 칭찬할 만큼 평화로운 시위 문화로 정착되고 있는 것 같다. 빠른 시일 내에 국가가 안정되고 정상화되기를 기원해 본다. 우리의 2세들에게는 지금의 부끄러운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자랑스럽고, 살기 좋은 나라를 물려줘야하지 않겠는가?   

           
이충훈 본보 칼럼위원
원광대 교수전북과학기술위원회(태양광분야)연구 위원장(2010년~2016년)·(사)한국물리학회 재정위원장(2015~2016)·(사)한국3D프린팅학회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저작권자 © 정읍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