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시 산외면 오공리 야정마을에 세워진 동의기념비(同義記念碑)가 새롭게 복원되었다. 야정마을 회관근처 야산에 세워져있는 이 기념비는 한말 면암 최익현(崔益鉉), 돈헌 임병찬(林炳瓚) 등이 주도한 독립운동 관련 사실을 기록한 의친왕 이강이 글을 쓴 비(碑)다. 2016년 ‘정읍시 향토문화유산’ 6건 지정 복원사업 중 한 곳으로 오랜 세월 돌보는 이 없이 방치되어 잊혀져 가던 문화유산이 모두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동의기념비(同義記念碑)는 현충시설(관리번호 51-1-05)로 분류되어있으며 건립취지는 이러하다. △임병찬 선생은 1852년 2월 전라북도 옥구군 서면에서 출생, 호는 돈헌, 본관은 평택이다. 한말 관료로서 1889년(고종26년) 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과 낙안군수(樂安郡守)겸 순천진관병마동첨절제사(順天鎭管兵馬同僉節制使)를 역임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전국의 선비들은 비분강개하여 임병찬 선생은 최익현과 사제의 연을 맺고 의병을 모집하여 구국의 길에 동참하였다. 1906년 의병장 최익현과 더불어 태인(현 칠보)의 무성서원에서 의병을 일으켜 초모, 군량 및 병사훈련 등의 책임을 맡아 홍주 의병장 민종식과 함께 태인, 정읍, 순창, 곡성 지역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하다 6월 순창에서 일본군에 체포되어 대마도로 유배되었다. 1912년 고종황제가 내린 밀조에 따라 독립의군부를 조직하였으며, 그 후 총사령이 되어 일제의 내각총리대신 이하 모든 관헌에게 ‘국권반환요구서’를 보내 일제 합방의 부당성을 천명하고 국권회복의 의기를 일으켜 일제를 축출하려는 항일 의병 운동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1914년 일본경찰에 의해 동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어 거문도로 유배되고 1916년 5월 23일 유배지에서 단식 끝에 순국하였다. 1928년 유림들의 발의로 하청사가 세우고 최익현과 임병찬을 향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안종대 산외면 지국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저작권자 © 정읍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