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1일차  2017.6.24 토요일   흐린 후 비 조금    전주 집-인천공항-터키 이스탄블공항

이번 해외여행은 고향인 50년 지기 정읍 중고등학교 친구 부부모임 7쌍 14명이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 4개국 북유럽을 8박9일 일정으로 다녀오기로 의기투합해 수개월 전부터 어느 여행사에 가 예약을 해뒀다.

그러나 출발 열흘 전 20명의 기준 모객이 성사되지 않았다는 것을 빌미삼아 특별 약관이라는 갑질의 일방적 통지로 취소되고 말았다.

모처럼 친구들과의 해외여행을 기대하며 들떠 있던 기분은 한순간 물거품이 되었다.

부랴부랴 '참좋은여행사'를 통해 출발 하루 늦는 일정에 또 하루 짧아진 7박8일 일정의 상품을 찾아 예약을 했는데 1인당 100만원이 절약되어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여행국인 핀란드로 가기 위해서는 터키항공을 이용 이스탄블로 이동 후 다시 핀란드행 터키항공으로 갈아타야 하는 환승 스케줄로 바뀌었다.

인천공항에서 23시45분에 출발하는 비행기에 오르기 위해 전주 집에서 점심을 먹고 인천공항으로 가는 리무진을 탔다.

14명 모두 집결 장소에 제 시간에 모여 그동안 안부를 물으며 즐거운 여행은 시작되었다.

여행기간 일행이 될 25명을 인솔할 가이드까지 동행하게 되었으니 이번 여행은 한층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 기내로 가져갈 물건과 탁송할 물건을 구분해 맡기고 출국심사대를 무사히 통과했다.

터키로 떠나는 비행기는 정시에 활주로에서 벗어나 공중을 향해 힘껏 솟구쳤다.

누구나 그렇듯 좁은 좌석에 10시간 넘게 눌러 앉아 몸이 굳어지는 어려움과 불편이 따르지만 여행의 설렘으로 그나마 참고 감내할 수 있었다.

 

 

- 여행 2일차  2017.6.25 일요일 맑음    터키 이스탄블공항-핀란드 헬싱키공항-암석교회-시벨리우스공원-마켓광장-스웨덴행 크루즈 승선

비행시간은 더디게 흐르다 10시간10분 만에 터키의 수도 이스탄블공항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이곳은 우리나라와 6시간 늦는 시차로 인해 새벽 4시가 조금 넘는 시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환승장에서 소지품 검색 등 출국 수속을 밟은 후 핀란드 헬싱키로 가는 07시45분발 터키 국적의 비행기에 다시 올랐다.

 

이스탄블공항을 이륙 2시간55분간 비행을 하다 11시08분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공항에 내려 입국 수속을 미치고 나오자 30대 중반의 여성 가이드가 일행을 맞이하고 있었다.

관광에 앞서 점심부터 먹기로 하고 버스에 오르며 핀란드라는 나라 소개와 아울러 이곳에서 하루 체류하는 관광 일정을 가이드가 간단히 소개했다.

핀란드는 북유럽 국가로 면적은 우리 남한의 4배 규모로 크며 53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데 수도 헬싱키에는 6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핀란드 역시 터키와 마찬가지로 우리와 6시간의 시차를 두며 스페인으로부터 600년 간 지배를 받아오다 다시 러시아로부터 지배를 받아 1817년 독립 해 올해가 1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독립의 해라고 한다.

 

1인당 국민소득이 4만달러로 사회보장과 복리후생이 잘 되어 있으며 핀란드 고유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일부는 스웨덴 언어를 사용하고 있단다.

지금은 초여름 날씨로 관광에 최적의 시즌이라 하며 6-7개월 동안 긴 겨울이 있고, 년 평균 기온이 영하 10도 정도라고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와 달리 긴 팔 옷을 입어야 할 정도로 선선하고 건조하다.

러시아군을 격퇴하고 대통령까지 역임해 국민들로부터 추앙을 받았다는 마네르하임 장군 동상이 있는 중심가 마네르하임 거리를 지나며 전깃줄에 의해 움직이는 전차가 시선을 고정해 어렸을 적 서울의 전차거리가 떠올랐다.

벽돌을 쌓아 올린 중세 고딕 건물들이 고풍스럽게 들어 찬 골목의 한 호텔 식당에 들어가 뷔페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첫 관광 일정으로 바위 속의 템펠리아우키오 암석교회를 방문했다.

암반을 파 동선으로 만든 둥근 지붕을 얹었는데 바위와 지붕 사이에는 180장의 유리 창문이 사용되어 자연광이 잘 들어오고 음향 효과도 좋아 콘서트와 결혼식에 자주 이용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작은 콘서트장이 연상되었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오후 예배가 있어 예배를 보는 시간에는 관광객을 받지 않는다.

암석교회에서 나와 핀란드가 낳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곡가 시벨리우스를 기념하여 만든 시벨리우스공원을 찾았다.

시원한 발티해와 인접해 있는 바다 옆에 위치해 헬싱키 시민들의 쉼터로 공원 중앙에는 조각가 에이라 힐튜넨이 조각한 거대한 스테인리스 파이프 오르간 조형물과 시벨리우스의 얼굴을 이상적으로 표현한 조각품이 있었다. 

 

다음 목적지로 핀란드 대통령 관저와 집무실이 있는 시내 중심의 원로원 광장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하얀 조각품처럼 보이는 대성당과 광장에는 러시아의 알렉산더2세 장군의 동상이 핀란드를 호령하듯 서 있었다.

러시아 장군 동상을 철거하지 않고 보존하는 이유는 당시 알렉산더2세가 핀란드를 지배할 당시 핀란드인들에게 민주적이고 선량한 정책을 펼쳤던 인물로 각인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광장 옆에는 대통령 관저와 집무실 건물이 있었는데 우리나라 청와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되어 보이고 일반 건축 양식의 평범한 건물이었다. 

또한 어떤 위해로부터 안전을 보호 하는 시설 하나 없이 외부로 노출되어 인상적이었다.

 

광장에서 해변 방향으로 내려오면 유럽에서는 보기 힘들다는 이색적인  마켓 야시장 광장을 만날 수 있었다.

포장마차에 과일, 생선, 야채, 고기 등 식료품과 목공예, 수 공예품까지 다양한 물품들을 전시 판매하고 있었는데 체리를 구입해 먹었더니 시지 않고 달콤했다.

또 멸치같이 작은 생선과 샐러드를 철판에 볶아 만든 음식을 가져간 소주와 먹어보는 별맛도 즐겼다.

마켓광장에서 나와 언덕에 있는 우스펜스키사원을 관람했다.

지대가 높은 곳에 있어 대통령 관저와 해안 풍경 그리고 핀란드의 명물이라는 헬싱키 성당이 한눈에 바라보였다

 

오늘 마무리 일정으로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가는 호화 여객선 실자라인 크루즈에 승선하기 위해 헬싱키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투르크로 이동했다.

발티해에서 가장 아름답고 큰 크루즈라 자부하는 실자라인은 북유럽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손꼽히는 여행의 한 과정이다.

전체 길이 212m에 2,800여 명의 승객을 수용할 수 있으며 다양한 레스토랑, 다섯 개의 바, 어린이 놀이방, 훌륭한 사우나, 백화점과 회의실까지 있는 여객선으로 중심에는 산책로까지 조성되어 있었다.

20시15분에 출항하는 크루즈에 올라 8층 2인1실의 좁은 객실을 배정받아 짐을 옮긴 후 7층으로 내려가 수십 가지 음식의 뷔페를 즐겼는데 대부분 짰다.

오늘로써 여행은 이틀째지만 실제 관광은 첫 날인 핀란드 관광을 마감하고 스웨덴으로 향했다.

 

 

- 여행 3일차  2017.6.26 월요일 맑음   스웨덴 스톡홀름항-스웨덴 왕궁-바사호박물관-스톡홀름 시청사

전날 핀란드 투르크 항구에서 보트니아만 해협을 가로지르며 스웨덴을 향해 밤새 이동하는 크루즈는 요동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조용했다.

비행기 안에서 거의 뜬눈으로 지냈던 피로로 인해 단잠에 빠질 법도 한데 날짜 변경선을 지나며 로밍 된 휴대폰에서 울려대는 각종 안내 문자로 깨고 말았다.

스웨덴은 핀란드보다 1시간 더 늦어져 결국 우리나라와 7시간의 시간차를 두고 있다.

한참을 뒤척이다 알람 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각에 몸단장을 하고 기다렸다 05시 선내 식당으로 내려가 아침식사를 마쳤다.

여객선은 쉬지 않고 스톡홀름을 향해 달리다 06시에 선착장에 접안했다.

천 명이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물밀듯 빠져 나오는데 출국 수속 없이 핀란드를 벗어났듯 스웨덴 역시 EU연합국가라는 구실로 별도의 입국 절차 없이 내 집 드나드는 양 밖으로 나와 담당 여성 가이드와 합류했다.

 

일행이 버스에 오르자마자 시내로 이동하며 스웨덴 여행에 있어 주의사항부터 공지를 했다.

스웨덴 역시 국민소득이 높고 기초생활 보장이 잘된 부강한 나라지만 관광객을 상대로 자국민 또는 원정 소매치기단이 있을 정도로 피해가 많이 발생하고 있으니 항상 조심하라는 당부였다.

이어 스페인에 대해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남한의 5배 규모의 면적에 인구는 천만 명이고 우리 교민은 2,899여 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6.25전쟁 때 부산에 의료지원단을 파견하며 고아들을 보살피는 연유로 인해 입양을 하기 시작한 이래 만 여명의 입양아가 있다는 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시내 중심가 역시 핀란드에서 봤던 중세 건축 양식으로 별반 다름없어 보였다.

이곳은 EU연합국가지만 자체적으로 크로나 화폐 단위를 사용하고 있었다.

너무 이른 시각이라 시청사나 박물관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아 중심가가 한 눈에 바라보이는 전망 좋은 곳으로 갔다.

스톡홀름 중심까지 깊게 들어온 해안을 따라 형성된 도심에는 스웨덴 왕궁과 대광장, 시청사 등 명소들이 두루두루 파노라마처럼 내려다 보였다.

스톡홀름의 원래 뜻은 스톡은 통나무, 홀름은 섬이라는 뜻으로 결국 통나무 섬이라고 하는데 임업자원이 풍부해 베어 놓은 통나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북유럽 날씨는 변덕쟁이라 할 정도로 일기 변화가 심했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려는 듯 항구에서 버스에 오를 때 내렸던 비가 잠시 그치더니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얼마 후 비가 그치고 또 하늘이 맑게 열리고 있었다.

10월이면 낙엽이 지고 이듬해 4월까지 눈이 내려 많이 춥다고 하는 곳이 스웨덴이라고 한다.

따라서 해가 별로 뜨지 않는 날씨로 인해 스웨덴 사람들은 비타민D가 부족해 별도 건강관리를 해야 하고 햇볕이 내리쬐는 시간에는 일부러 일광욕을 즐기는 문화가 생겼다고 한다.

마침 어제가 1년 중 해가 가장 긴 시간 동안 떠 있는 하지라고 해 이 날을 명절이라 여겨 휴가를 떠난다는데 공원 벤치에 앉아 일광욕을 즐기는 풍경이 눈에 종종 띄었다.

또한 밤이 엄청 길어 우울증 환자가 많이 발생하는데 이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술 판매가 엄격하고 밤 8시가 넘으면 가게에서 술을 팔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고 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북유럽의 베니스라 불리는 스톡홀름 시내 관광에 나섰다.

먼저 감라스탄 구시가지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스웨덴왕궁을 둘러봤다.

일과시간이 시작되며 왕궁을 지키는 경비대의 절도 있는 몸동작을 취하며 배치되는 광경이 신기했다.

감리스탄 독일교회에서 600년을 이어오는 전통의 근엄한 종소리가 들려오며 시계를 과거로 돌려놓고 있었다.

공주가 왕실의 완고한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평민 신분인 헬스 트레이너와의 깊은 사랑에 빠졌던 달콤한 러브스토리를 들으며 골목길 시간여행은 계속되었다.

 

왕궁 주변 대성당 뒤쪽을 따라 현재 주민들이 아파트로 살고 있다는 중세 유럽풍이 물씬 풍기는 건물 1층에는 관광객을 상대로 한 상점이 줄지어 있어 주요 볼거리였다.

아파트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분수대가 있는 넓은 마당이 있는데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네모지게 돌을 다듬어 포장한 보도블록을 밟으며 걷다 쇼윈도우로 비치는 스웨덴 전통복장과 생활용품들이 발목을 붙잡았다.

 

잘 정돈된 중세 도심 골목을 따라 중앙 깊숙한 곳에 감라스탄 큰 광장을 만났다.

얼마나 넓으면 큰 광장이라 불릴까 궁금했지만 막상 다가가니 축구장 반절 크기의 작은 마당이었다.

과거 주요 광장에는 반드시 분수대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곳 역시 화려했을 지난 날의 역사를 말해주려는 듯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석조상 틈 사이로 물줄기가 쉼 없이 흐르고 있었다.

광장 뒤쪽으로는 원통형 모양의 색다른 간이 남자 화장실이 예술 작품처럼 울긋불긋해 보이지만 그전에는 엄연한 경비초소였다고 한다.

한국방송에 소개되어 소원을 들어주는 명소로 유명해졌다는 큰 광장 바로 옆 정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주 작고 깜찍한 철제 인물 조각상의 머리를 쓰다듬으면 소원을 이룬다는 풍설이 있어 관광객이 몰리고 앞 다퉈 만져보려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옛 도심에서 벗어나 해저에 침몰된 배를 인양해 복원 전시한 바사호박물관을 찾았다.

스웨덴에서 가장 오래된 전함으로 바사왕가의 구스타프2세가 재위했던 1625년 건조를 시작해 1628년8월10일 처녀항해를 나섰다 침몰한 배의 바사호다.

그나마 국내외 많은 귀빈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수식을 하자마자 물이 스며들어 수분 만에 침몰했다니 얼마나 참담하고 수치스러웠을까.

이 사고로 인해 배에 승선하고 있던 150여 명 중 30여 명이 익사했다고 한다.

그 후 333년이 지난 1961년 난파된 바사호가 다행히 해저에서 통째로 발견되어 복원을 했는데 당시 수장되어 인양된 각종 무기, 생활도구 심지어 사람의 뼈까지 보존 전시하고 있어 17세기 초 스웨덴의 해양 역사를 한꺼번에 말해주는 듯했다.

 

다음은 스웨덴에서 마지막 코스로 스톡홀름시 행정의 중심지이며 최고 걸작의 건축물이라 일컫는 시청사를 관람했다.

시내 전경이 해안을 따라 펼쳐 보이는 곳에 위치한 시청사는 건축가 라구날 오스트베리가 설계하고 800만개의 붉은 벽돌과 1,900만개의 금도금 모자이크 타일을 붙여 지은 건물로 사무를 보는 시청사라고 하기엔 놀랄 정도의 규모와 아름다운 장식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해마다 12월10일에는 이곳에서 세계 노벨상 시상식과 더불어 평화상 축하 만찬회가  열리고 있어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 스웨덴 최고의 명소다.

이런 품격 높은 장소를 안내할 가이드 역시 전문 가이드가 아니면 할 수 없다고 해 일행도 가이드를 바꿔 구체적인 설명을 들었다.

시청사를 나와 10분 거리에 교민이 운영하는 남강회관에서 김치찌개로 점심을 먹었다.

 

내일 노르웨이의 오슬로로 넘어가기 위해 스톡홀름에서 약 450km 떨어진 샤로텐베르그라는 도시를 향해 출발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스칸디나비아반도를 횡단하는 대장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와 같은 산이라기보다는 구릉지대에 소나무와 자작나무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드넓은 들판에는 밀이나 호밀 그리고 가축 사료를 재배하고 있었다.

지역을 옮길 때마다 간혹 비가 쏟아지다 얼마 가지 않아 높고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이 나타났으며 아침 13도로 시작해 최고 18도를 오르내리는 기온으로 선선하고 쾌적해 우리의 초가을 분위기였다.

제주도 날씨가 변덕이 심하다고 하지만 이곳 날씨는 정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했다.

6시간 가까이 걸려 숙소인 샤로텐베르그의 Thon Hotel에 투숙해 저녁 식사를 호텔에서 해결했다.

밤 10시가 훌쩍 넘어가고 있는데 밖은 아직도 어두워지지 않는 낯선 풍경에 잠을 제대로 이룰지 궁금하다.

 

 

- 여행 4일차  2017.6.27 화요일 맑음   노르웨이 이동-오슬로 시청사-국립미술관-비겔란드공원-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스키 점프대

단잠에 빠졌다 휴대폰 문자 소리에 깼더니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지금 한창 일과시간이 시작된 오전 10시라 문자가 마구 쏟아진 것이다.

창문 커텐 사이로 환한 빛이 들어와 가로등 불빛인가 싶어 내다보니 새벽처럼 환했다.

그렇다면 이곳의 밤은 언제 지나갔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분명 어젯밤 11시가 다 될 때까지도 훤했었고 오늘 눈을 떴을 때도 훤한 것으로 봐 백야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정말 이방인에게는 이해 못할 생소한 진풍경이었다.

5시가 조금 못 되어 호텔 밖으로 햇볕이 비추기 시작했다.

 

6시에 호텔 식당으로 내려가 식사를 마치고 07시30분 노르웨이 오슬로를 향해 일행은 태운 버스가 출발했다.

10분도 되지 않아 국경초소를 아무런 절차 없이 무정차로 통과했다.

노르웨이는 EU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국경을 넘을 때는 출입국 절차를 마땅히 받아야 될 것이라 여겼는데 그 궁금증은 한국에서 동행한 인솔자의 설명으로 곧 해결됐다.

EU연합 구성 당시에 가입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었지만 준 회원국으로 인정해 별 다름 없이 상호교류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노르웨이는 한반도의 1.7배 규모의 면적에 인구 530만 명이 살고 있는데 길게는 남북으로 1,700km, 짧게는 동서로 6km까지 해안을 따라 길게 뻗은 해상반도 국가이다.

수도인 오슬로에는 68만 명이 거주하고 우리 교민은 600명 정도가 선박이나 유전 등의 업무에 관련된 직종에서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국민소득 1인당 8만 달러 수준의 다양한 사회보장이 잘 된 나라이며 1970년대부터 유전개발이 활성화되었으며 특히 연어, 대구, 고등어 등 수산자원이 풍부해 수산업 분야에서는 세계 2위를 자랑하는 나라란다.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이 길고 5월부터 4개월은 백야현상이 발생하는데 멕시코만류의 영향으로 많이 춥지는 않다고 한다.

국경에서 오슬로까지는 134km로 3시간 후 오슬로 시청사에 도착하자 담당 여성 가이드가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청사는 오슬로시 창립 900주년을 기념하여 1950년 건축하였는데 예술과 문화의 도시답게 온통 벽화 그림으로 장식되어 청사 내부가 모두 겔러리였다.

이곳에서 매년 12월10일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장소로도 널리 알려져 있으며 김대중 대통령 또한 이곳 시청사에서 수상한 바 있다.

 

다른 부분의 노벨상은 모두 노벨의 모국인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사에서 선정하고 수상하는데 그 이유는 노벨의 유언 때문이라고 한다.

1층 중앙홀에서 시상식이 거행되고 있고 2층 여러 방마다 저마다의 상징성을 띤 많은 그림들이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시청사에서 나와 도보로 7분 거리에 있는 국립미술관으로 이동했다.

주변에는 독특한 유럽 양식의 건축물이 천년 고도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었고 국립극장 뒤편으로 노르웨이 국기가 내걸린 왕궁이 올려다 보였다.

국립미술관에 입장하자 노르웨이가 낳은 세계적 명성의 미술가나 조각가들이 빚어 놓은 걸작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미술 분야에 지식이 부족한 이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진 뭉크의 특별 전시관 내에 있는 많은 작품 하나하나를 설명하는 가이드의 자세한 설명에 시간이 갈수록 심취되고 말았다.

뭉크는 어렸을 때부터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등 큰 충격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삶의 고통을 화폭에 그대로 담아 낸 비운의 작가였다.

마지막으로 학창시절 교과서에 자주 봤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의 조각상을 직접 가까이 보니 정말 감개무량했다.

자리를 옮겨 비겔란드 조각가의 작품이 야외 전시되어 있는 비겔란드공원을 찾았다. 

정문 우측에는 비겔란드 조각가의 동상이 묵직하게 광장을 지키고 있었다.

 

비겔란드가 일생을 살아오면서 40여 년간 심혈을 기울여 만든 화강암과 청동 조각품을 모아 놓은 전시장이 바로 공원이었다.

갓난아이로 태어나 성장을 거듭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속에 나타나는 희노애락이 작품 속에서 그대로 묻어나는 것 같았다.

특히 인생을 주제로 하는 생로병사의 과정을 조각상으로 표현해 분수대를 빙 돌아 전시되어 있는데 삶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 되었다.뒤편으로 17m높이의 화강암에 121명의 남여로 이루어진 원통형 조각상 앞에서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웅대하고 기교함으로 가득 찼다.1시간 넘게 조각공원을 두루 감상한 후 10분 거리에 있는 허름해 보이는 식당으로 가 된장찌개로 점심상을 차렸다.

 

이제 내일 노르웨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피요르도로 손꼽히는 게이랑에르에서 헬레쉴트 구간의 유람선 관광을 위해 북쪽으로 내달렸다.

도심을 막 벗어나자 미에사 호수와 로겐강이 도로를 따라 끊임없이 졸래졸래 따라 붙으며 영화를 감상하듯 눈을 즐겁게 했다.

크고 작은 산 언덕배기에 19세기 후기의 목재 주택들이 옹기종기 자연과 어우러져 안락한 마을을 이루는 풍광이 커다란 풍경화로 연결되고 있었다.

3시간 조금 지나 1994년 제17회 동계올림픽을 개최했던 릴레함메르의 스키점프대 경기장에 잠깐 들렀다.

 

지금은 황량하리만큼 눈이 없어 앙상해 보이지만 그 당시 경기를 지켜보던 수많은 관중과 기량을 펼치는 선수들의 높은 함성이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끝없는 강변도로를 따라 오슬로를 출발한지 6시간 지나 숙소인 돔바스호텔에 도착하자 저 멀리 고산지대에는 지난겨울 내렸던 눈들이 듬성듬성 남아 생소하게 바라보였다.

호텔에서 저녁밥을 먹고 시간이 한참 지났어도 어둠은 내려오지 않고 있었다.(전 정읍중학교 21회 회갑기념 북유여행기 - 김용인, 전 정읍경찰서 청문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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