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사리 2천평 대지에 50칸 규모의 고택

정읍시 산외면 평사리의 평사낙안(平沙落雁) 모래 밭에 기러기가 내려 앉은 형국의 터에 자리잡은 강진김씨 고택인 소고당이 자리하고 있다.
정읍시 산외면 오공리에 있는 김명관 고택에 이어 평사리 있는 소고당은 강진김씨가의 미담이 서려 있다.
평사리에 위치한 소고당은 대지 2천평에 50칸 규모의 고택이다.
소고당의 뜻은 ‘옛것을 이어간다’는 의미다.
안채는 여성들의 공간으로 뒤쪽에는 마루가 있어 전라도 고택의 개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은 김환채씨의 장남은 김창균씨(사진)가 고택을 관리하고 있다.
김창균씨는 “청백리였던 할아버지의 정신을 이어받아 깨끗하게 살라는 당부를 잊지 않으셨다”면서, 가족 모임때는 항상 ‘돈님’과 ‘밥님’ 할아머지를 본 받아 재물을 아끼고 모은 후에는 유용하게 쓰라는 가르침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선조들이 이웃들에게 어떤 적선을 했는지는 잘 모른다고 했다.
이웃을 도운 사실을 식구들에게 알리지 않았으며, 아버지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전해줘서 알 정도였다고 했다.
▷강진김씨는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던 양주목사 김양묵(150-1558년) 이래로 이 지역에서 인심을 잃지 않았던 양반이면서 부자였다.
현재 소고당의 주인이자 장손인 고 김환재씨의 고조부인 김기혁은 별명이 ‘밥님’‘돈님’이었다.
밥과 돈에 대한 경의의 표현으로 님자를 붙인 것이다.
길을 지나가다 나락이 떨어져 있으면 도포자락에 넣었고, 길에서 개똥이나 소똥을 별견하면 집에 가지고 가 거름으로 사용했다.
그렇게 절약을 하면서도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베푸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증조부 김태흠도 역시 천석꾼이었지만 동네의 가난한 사람들을 보면 아낌없이 쌀을 내놓았다고 한다.
이 집안의 가풍은 다름아닌 ‘적선’이었던 것이다.
조부인 김영채는 집안 사람들에게는 무관심했지만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는 최선을 다했다.
1928년과 29년 대대적은 흉연으로 인해 먹을 양식도 없었고 세금도 문제였다.
그때 김영채는 산외면민들의 전체 호세를 대신 내주기도 했다.
이를 고맙게 여긴 산외면 주민들은 산고해심(山高海深)과 같은 은혜라고 칭송했다.
주민들이 비를 만들어 세웠지만 보기에 민방하다며 땅속에 묻어달라고 했고, 그가 죽은 해인 1971년에야 다시 꺼내 세워지게 됐다.
또 그 아들은 돈 2만평을 팔아 마을에 전기시설을 했으며, 손자는 쌀 장학금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했다.
이처럼 산외 강진김씨 소고당은 나눔의 가풍을 몸으로 실천한 선조들의 청빈하고 이웃사랑의 삶이 고스란이 담겨져 있다.(안종대 산외지국장, 이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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