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예로부터 우리 민족의 찬란한 민속 문화의 기틀을 토대로 했던 민족의 영산(입암산)이 굽어보고 있는 입암 대흥마을은 일제강점기의 혼돈의 시대적 상황에서 우리 민족의 위대한 민족성을 선양하며, 전국적인 열정의 700만 구도인을 끌어안았던 민족종교(보천교)가 자리한 역사의 마을이다.

 일제강점기 보천교는 일제에 의해 철저히 유린당한 우리 민족의 유구한 민족성의 자긍심 내지는 자존감을 회복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던 민족종교 단체였다. 또한, 일제에 의해 빼앗긴 조국 대한 독립을 열망하며 아낌없는 열정으로서 항일 민족운동을 주도했던 것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일제) 제국주의에 당당히 대응하며 우리 민족의 강인한 민족성의 대담함을 선보였던 보천교는 일제의 전략적 공작에 의해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보천교와 함께 희노애락을 같이 했던 대흥리 마을 또한 대흥리라는 본래의 지명을 잃었으며 접지리라는 지명의 명칭으로 쓰여지게 되었던 것이다.  
 앞서 기술한 혹자의 무지에서 유추해 볼 수 있듯이 지난 일제의 잔재에 의한 그릇된 역사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이곳의 대흥리 마을에는 신념있는 이들의 발품에 의해서 청신호가 켜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대흥리란 본래의 지명을 다시 되찾은 것이다. 이로써, 대흥리 마을 주민은 이를 기념하기 위한 수순으로서 견고하고 단단한 대흥리라는 지명의 표지석을 세우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입암 대흥지국장 신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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