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둡시다...!!

골은 골짜기, 고을을 뜻하는 말 아니다

김재영(사단법인 정읍역사문화연구소장)

한자로 정읍(井邑), 어떻게 읽어야 할까. ‘샘 정’으로 읽는 사람도 있고, ‘우물 정’으로 읽는 사람도 있다. 헌데 샘과 우물은 원래 다른 말이니 둘 중 하나는 틀렸다. ‘우물 정’자로 읽는 것이 맞다. 우물은 원래 ‘움과 같이 파인 곳에 고인 물’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 뜻 사이의 접촉으로 말미암아 ‘물이 솟아나와 고인 샘터’를 가리키게 되었다. 우물이 샘으로 그 의미가 확장된 것이다. 
우물 ‘정(井)’자는 본디 지하에 흐르는 천(川)을 돌 또는 목재(二)로 물막이를 하고 물을 가두는 상형문자로 이루어진 글자다. 우리말로 우물은 ‘움’에 ‘물’을 더해 이루어진 글자로 ‘움’의 끝소리 ‘ㅁ’이 떨어져 나가 우물이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 샘골 이름을 갖다 붙인 게 하나 둘이 아니다. 
농협을 비롯, 터널, 보건지소, 장학재단, 산악회, 어린이집, 다리, 지업사, 가든 심지어 정읍의 정체성과 관련해서 써서는 안 될 도로명과 공연단의 이름에도 버젓이 사용되었다. 
반면에 샘고을 이름을 붙인 것은 시장과 요양병원, 교회, 식당, 식품가게, 아동센터 등이 있으나 수적으로 샘골이 더 많아 보인다. 이러다 정읍은 샘고을이 아닌 샘골이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문제는 관공서나 관변단체까지도 아무런 의식 없이 샘골 명칭을 쓰다 보니 사람들이 자꾸 헷갈려한다는 점이다. 
잘못된 것은 행정에서 앞장 서 계도할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정읍시 홈페이지에는 정읍을 상징하는 마크를 샘고을이 아닌 샘골로 설명하고 있고, 심벌이 아닌 심볼로 표기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학교 남녀공학이 추진되면서 통합되는 학교 이름이 샘골중학교가 되어야 하는지, 샘고을중학교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워낙 양쪽 주장이 팽팽하다보니 논란 끝에 둘 중에 하나를 투표로 결정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한다. 투표 전날 이와 관련한 한통의 문의전화를 받았다. 오랜 통화 끝에 결국 다음날 샘고을중학교로 학교 이름이 정해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러면 ‘골’과 ‘고을’은 어떻게 다른가. 

옛날에는 주, 군, 현의 의미로 쓰인 고을과 마을이나 골짜기를 의미하는 골을 구별하여 사용하였다. 최세진의 『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는 ‘골 곡(谷)’, ‘골 동(洞)’과 ‘고을 현(縣)’, ‘고을 읍(邑)’, ‘고을 주(州)’, ‘고을 군(郡)을 구별하여 기록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주(全州)가 온고을이고, 광주(光州)가 빛고을이다. 이들 지역을 일러 온골, 빛골이라 한 적이 있는가. 같은 이치로 그래서 정읍은 정촌이 정읍현이 된 것이니 샘골이 아닌 샘고을이 되는 것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살펴보면 경덕왕 때 정촌은 정읍현으로, 빈굴현(태인)은 무성현으로 개편되었다. 개편 이전 빈굴현과 같이 정촌현이라 하지 않고 그냥 정촌으로 기록한 것은 정촌이 일반 현보다 그 규모가 더 작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국어사전에는 ‘골’을 ‘고을’의 준말로 풀이하고 있으나 ‘골’은 ‘골짜기’를 의미하는 말이지 고을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반드시 구분해서 써야 한다. 그럼에도 명색이 국립국어연구원에서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에까지도 버젓이 올라와 있다. 사전이라고 모두 맹신할 일이 아니다. ‘골’은 ‘굴’, ‘올’, ‘울’로 변천되고, ‘실’은 골짜기와 같은 의미로 내륙지방에 남아 있는 지명 접미사로 계곡에 발달된 마을 지명으로 쓰였다. 우리 고장에서는 진상굴, 송령굴 그리고 논실, 부여실, 지금실, 다라실, 마태실, 소금실, 허궁실 등의 지명으로 남아 있다. 
하나 더 예를 들면, 보천교 창시자 차경석의 아버지 차치구가 동학농민혁명이 실패한 뒤 절친인 최제칠(崔濟七)의 집에 은신했다고 하는 곳이 소성면 광조동(光照洞)이다. 바로 이곳이 골짜기다. ‘동(洞)’이 골짜기를 뜻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한 가지 의문이 생길 것이다. 샘골이든, 샘고을이든 부르기 쉬운 것을 쓰면 될 텐데 왜 이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그런데 아니다. 학문의 시작은 개념 정의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간과하기 때문에 정읍을 ‘샘골’로 보고, 덕천의 ‘샘실(천곡)’과 치환된다는 이상한 논리가 나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백제 때의 치소가 천곡에 있었으니 정읍사 망부석이 고부군 덕천에 있었다는 가당치 않은 주장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초등학생들이 배우는 내용이다. 고을은 여러 마을을 다스리는 치소(관청)가 있는 곳이다. 달리 말하면 고을은 ‘현(縣)’의 별칭이다. 그래서 고을원님이 있는 곳이다. 마을은 고을을 구성하는 하나의 단위로 동네를 지칭한다. 예전에 왜색지명인 부락(部落)으로 불렀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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