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철 (정읍시행정동우회장)
(1)
『내 사랑하는, 날마다 보고 싶은 태성이.
잘 있었니? 아빠가 있는 서울은 서늘해서 그림그리기에 아주 알맞고 좋단다. 모두 사이좋게, 그리고 튼튼하게, 용감하게 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해 주기 바란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아빠가 너희들이 있는 ‘미슈쿠’로 갈테니— 태현이 형하고 사이좋게 기다려다오. 아빠는 태현이와 태성이가 게와 물고기와 놀고 있는 그림을 또 그렸단다. 아빠ㅈㅜㅅㅓㅂ』
위 글은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다빈치출판사)’이라는 책에 쓰여져 있는 편지글이다. 누구보다도 많은 사랑을 받아 ‘국민화가’로 불리는 이중섭은 삶과 사랑, 예술을 위해 치열하게 사투를 벌인 천재 화가로도 일컬어지고 있다. 1954년경에 일본에 있는 일곱 살이 된 둘째 아들 태성이에게 쓴 편지이다. 편지 내용으로 보아 1950년도에 한 때 제주도에서 생활하였는데, 이 시기의 바닷가 생활에 따른 그림 소재로 게와 물고기를 삼아 두 아들과 함께 놀고 있는 그림을 또 그렸다고 표현하였다. 그 당시 대한해협 사이를 두고 두 아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오롯이 편지의 글에서도 묻어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이러한 가족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은 그를 더욱 개성적, 독창적 그리고 토속적인 화풍으로 태어나게 하였다. 사후에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이중섭 화가는 1916년에 태어난 북한 평안도 출신으로 1935년 미술을 공부하러 일본으로 건너가 1940년 ‘분카가쿠잉’학교에서 졸업하였다. 여기서 후배인 일본인 여성 ‘마사코’를 만나 1945년 5월에 원산에서 결혼을 하여 두 아들 태현이와 태성이를 두었다. 6.25 전쟁 기간 중 남한으로 피난 온 이중섭 가족은 궁핍한 생활로 인하여 이중섭은 한국에 남고 아내와 두 아들은 친정어머니가 있는 일본으로 이주하였다. 1953년 휴전 이후 무척 혼란스러운 한국에서 이중섭은 섣불리 일본으로 건너가지 못한 것은 경제 여건상의 문제도 있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이중섭의 성격상 끊임없이 타오르는 그림에 대한 강렬한 열정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중섭은 1956년 가을에 병환으로 끝내 사랑하는 가족들과 재회하지 못하고 만 40세 젊은 나이로 세상과 이별하였다. ‘천재는 요절한다’는 말은 이중섭을 두고 말하는 것 같다.
   

(2)
『서글서글한 것들이 가슴에 맺히는 가을. 익어가는 석류들. 벌어진 밤송이들. 많은 책방들. 책. 높푸른 하늘. 빛바래져 가는 것들. 편지 반가이 잘 받아 보았지. ‘안녕’이라는 말에 나도 ‘안녕’이라고 전하고 싶소. 어제는 아버님 제삿날 이었구료. 벌써 1년이 되었구려. 가슴에 가슴에 맺혀지는 것들 들- 참 잘도 가는구려. 모든 것들이. 구름도- 세월도- 잘 흘러가고. 젊음도- 인생도- 그렇게 하여 가고. 너도 가고- 나도 가고- 
좋은 계절에 더욱 알찬 것들이 맺히길 바라면서- 철이』
위 편지는 어릴 때부터 오랜 친구인 이종 친구가 몇 년 전에 자기 집 안을 정리하면서 나온 편지라고 나한테 알려줘서 알게 되었다. 사실 나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은 편지인데, 이종 친구는 편지 내용이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으로 알맞게 내용이 담겨 있어 의미가 있다고 말해 주었다. 나의 아버님은 1974년도 추석을 나흘 앞두고 상당하게 이른 48세의 나이로 하늘나라로 가셨다. 1975년 가을에 25살이었던 나는 이종 친구가 ROTC로 동해안 지역에서 육군 장교로 복무할 때 보낸 편지 내용으로 기억된다. 지금 이 나이에 이 편지를 읽고 음미하니 한창 젊은 때인데도 삶에 대하여 막연하게 많은 번민을 하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여튼 그 당시에 이렇게 편지를 썼다는 자체가 나로서는 상당한 자긍심을 갖게 한다. 흔히 편지를 천리면목(千里面目)이라고 한다. 즉 천리 밖에서도 얼굴 보듯 한다는 뜻으로 멀리 있는 이의 얼굴을 보고 말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편지라는 고유의 속성을 잘 나타내는 표현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잘 쓴 편지란 상대방을 만나서 말을 하듯 자연스럽게 쓴 편지를 말한다. 이러한 편지글은 생동감이 있게 되어 받는 이에게 공감을 쉽게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오늘날에는 편지보다는 휴대폰 문자나 이모티콘 그리고 이메일로 아주 쉽고도 빠르게 글을 전한다. 이러한 SNS상의 간편한 이모티콘이나 문자는 일률적이고 형식적인 느낌을 받고 손수 쓴 편지는 정성이 담긴 마음의 글로 느끼기에 더욱 소통의 가치가 크다고 할 것이다. 그러하기에 나는 손수 쓴 편지글을 더욱 예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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