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칠보산 고갯길을 지나다가 고개 아랫마을에 늠름하게 서있는 느티나무를 보고 찾아간 마을이 부무실이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먼저 반갑게 맞아주는 소나무가 있다. 수령이 무려 260여년이나 되었다. 태풍에 가지가 일부 꺾였는데도 여전히 아름답다. 백여 미터를 더 마을로 들어가니 멀리서 보였던 느티나무가 보였다. 우아한 모습에 넋이 나갈 정도로 아름다운 나무였다. 

 다시 몇 년 만에 이 마을의 이야기를 자세히 알고 싶어 인터넷에서 이 마을을 검색했더니 이 마을이 조선 3대 명필 중 한 분인 창암 이상만의 고향이었다. 창암 이상만은 부친이 뱀에 물려 사망한 후 보이는 뱀마다 지팡이로 죽여서, 이삼만 이름 석 자를 써 거꾸로 붙여놓으면 뱀들이 오지 않았다는 전설이 전해져온다. 그래서 창암은 추사맹장 이삼만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지기도 했다한다. 더 자세한 마을 이야기를 듣기 위해 부무실에 방문하였더니 정읍학산고등학교의 김성기 선생님께서 느티나무에 얽힌 사연들을 상세히 친절하게 말씀해 주셨다. 

 부무실은 임진왜란 때에 왜군을 피해 김씨, 이씨, 박씨 세 성의 식구들이 피란해서 이룬 마을이다. 예전에는 60여 가구가 살았지만 지금은 3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원래 마을 이름은 부곡(富谷)이었다가 마을 언덕 위 무덤에서 갑옷이 출토되어 부무실(富武室)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일제 식민지 시절에 부무실(夫武室)로 개명되었다. 임진왜란 때에 피란 온 주민들은 마을을 외부에서 보이지 않기 위해 숲 막이로 느티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 중 한 그루는 계곡을 정비하면서 사라지고 일제 식민지 시대에는 마을 위 느티나무가 벌목되어 팔려나갔다. 또 한 그루는 잘리어져 부자인 윤씨의 제실을 짓는데 쓰였다고 한다. 이 제실은 한국전쟁 때에 빨치산의 주둔지여서 국군에 의해 화재로 손실되었고 윤씨가문도 가세가 기울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해방 후에 한 그루는 주민이 벌목하여 팔려고 쌓아둔 목재가 계곡물 범람으로 손실되면서 아내가 같이 계곡물에 휩쓸려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그나마 이런 우여곡절 속에서도 이런 일들이 있고난 뒤로는 느티나무를 베면 불행한 일이 생긴다는 우려 때문에 지금까지 마을을 지키고 있는 느티나무 두 그루가 온전히 남아있다. 

 사백년을 훌쩍 넘게 살아오면서 몰지각한 주민에 의해 가지가 잘린 흔적이 아픈 상처처럼 고스란히 남아 있기도 하다. 긴 세월 자라오면서 꺾인 자리에 어디서 씨앗이 날아왔는지 벚나무가 느티나무에 터를 잡고 같이 살아가고 있는 신기한 느티나무이기도 하다.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우람차고 늠름한 느티나무가 아직도 몇 백 년은 더 살 수 있을 듯 당차게 서있는 마을이 부무실이다. 이 나무 윗길로 조금 올라가면 언덕 위에는 당산나무 역할을 하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역시 보호수로 지정되어 수려하게 마을을 지키고 있다. 그 옆에는 창암 이삼만이 ‘石潭’이라고 쓰고 새긴 바위가 놓여있다. 이렇듯이 부무실에는 창암 이삼만의 전설이 전해져오고 소나무 한 그루, 느티나무 두 그루가 보호수로 지정된 자랑스러운 마을이다. 이렇게 세 그루가 보호수로 지정된 마을도 드물 것이다. 이런 마을에 사는 분들이 부러울 정도로 소중함을 느낀다. 다만, 아쉬운 점은 느티나무 옆에 있는 엉성한 정자가 미관을 해치는 옥의 티인 점이다. 전깃줄이 나무사이로 지나가면서 느티나무의 아름다움을 저해하는 것도 문제이다. 자랑할 만한 느티나무에 어울리는 정자의 정비는 꼭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 고장에는 보호받아야할 나무들이 널리 산재해 있다. 여느 고장의 나무들보다 더 자랑할 만한 나무들도 많다. 주민들의 그늘이 되어주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고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나무들의 가치는 돈으로 살 수도 없다. 대대적으로 보호수 지정도 다시 한 번 해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몰지각한 일부 주민이 함부로 훼손할 수 없도록 보호조치도 필요하다. 아울러 우리 마을 보호수 사진전도 열어 우리 고장의 자랑할 만한 보호수가 널리 알려져 우리 고장을 방문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길 기대한다.최낙운(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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