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페이스북에 올라온 의미있는 글을 본 기억이 있다.
모 인께서 페친들에게 보낸 공개적인 글이었다.
물론 그는 자기 얼굴 침을 내뱉는 꼴이다고 밝히며 그래도 늦었지만 자신처럼 또, 당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어필했다고 적었다.
그 내용은 애지중지 자식을 키워서 서울대학까지 갈 때만 해도 남들에게도 자식 자랑을 우쭐대며 많이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고, 저밖에 모르는 자식을 잘못 키운 것을 매우 후회하듯 반성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이쁜 자식일수록 자식을 ‘오냐오냐’로 키우지 말 것과 또, 말년에 자식들에게 버림받고 혼자서 회한의 눈물과 피를 보지 않으려면 자식놈들에게 모든 것을 다 내주지도 말라는 경고성 내용을 적시했는데 필자가 그것을 우연히 읽은 것이다. 
공감되는 부분이 적지가 않았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자식놈이 내가 잘해 준 것은 하나도 기억하지 않고, 못 해 준 것 또는 때린 것만을 기억하더라는 것이다. 물론 이 세상 모든 자식들이 그처럼 배은망덕하게 부모에게 불효를 행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오냐오냐’로 키우고 공부 좀 한다고 제 뜻을 다 받아주고 조동으로 키운 자식들, 상당수는 커서도 버르장머리 없는 것은 크게 틀린 말이 아니며 그것이 사실로 입증된 사례는 많다. 
오죽하면 학교서도 말썽장이가 오히려 성장해서 학교및 동창 사회서도 적잖은 기여를 한다는 말과 함께 학창 시절 공부하지 않고 쌈박질 많이 했던 놈들이, 그래도 성장해서 존경하는 선생님으로 기억됐다면 그래도 찾아보는 예가 더 있었다는 얘기가 회자 되고 나돌았겠는가 말이다.
꾸중과 채찍이 없었던 아이들에게서는 자기 되돌아봄이 적다. 매사가 마찬가지다.
무조건적으로 옹호하고 제 편만 들어주고, 공부 좀 한다고 ‘오냐오냐’ 키운 아이들에게서는 세월이 흘러도, 그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올인 해 준 것에 대한 감사와 고마워할 줄을 모른다는 얘기다.
그저 제가 잘나서 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어서 그랬다고만 생각을 하는 것이다.
시쳇말로 그런 그들이 훗날 성공하고 잘 나간다 해도 8, 90프로는 저밖에 모른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오죽했으면 그는 공개적인 곳에다가 그런 자식을 키운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감내하고서 반성과 함께 회한의 글을 공개했을까도 싶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모두에게 공감하게끔 밝힌 그의 용기에 필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누구든 그 무엇이든 우리가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선택이고 최선의 길임을, 우리가 알고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판에서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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