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철 (정읍시행정동우회장)
하 철 (정읍시행정동우회장)

소설가 박완서는 오십대 후반에 남편을 잃고 나서 석달만에 다섯 자녀 중 유일한 아들인 막내를 교통사고로 다시 잃었다. 그 후 이해인 수녀님을 만났을 떄 신(神)을 많이도 원망하였다고 한다. 한 잡지사 기자가 박완서에게 ‘그토록 큰 슬픔을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라고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한다. ‘극복한 것이 아니라 견딘 것이다.’ 그녀는 우리 인간의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견디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시인 정호승은 ‘수선화에게’라는 제목의 시에서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라고 읊었다. 시인은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고 하니 하물며 우리는 인간이기에 당연히 외로운 것이고, 외로움은 인간의 본질로 그냥 받아들이고 견디어야 한다고 말한다. 화가 이철수는 판화 ‘길에서’라는 작품에서 ‘성이 난 채 길을 가다가 작은 풀잎들이 추위 속에서 기꺼이 바람맞고 흔들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만두고 마음 풀었습니다.’ 라고 글을 새겼다. 하찮은 풀도 모진 바람과 추위 속에서 그냥 견디면서 흔들리는 것을 보고 잔뜩 화가 난 마음을 풀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삶의 자체를 그냥 견디면서 지내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들 삶에는 반드시 시련과 고통이 있어 사람 모두가 이 시련을 피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에게 시련을 견디는 것은 모두 삶의 과정이며, 이러한 시련을 견디어내는 끈기와 힘은 필요 불가결한 삶의 요인이라 할 것이다. 무릇 순탄한 길에서도 사람은 어렵잖게 넘어질 수 있는데, 정상으로 향하여 올라간 사람은 험난한 오르막을 견디어낸 몸의 소유자라 하겠다. 그러하기에 어떤 이는 세상에서 가장 의미 깊은 말이 ‘견디다’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아름다운 삶이란 어떠한 시련과 고통에도 굴하지 않고 견디며 살아나가는 사람들의 삶이라고 한다. 온실속의 꽃보다 들판에 있는 꽃의 향기가 진하게 풍기듯이 시련을 온 몸으로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만 지니고 있는 독특한 삶의 향기를 풍기는 것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사전적 의미로 ‘견디다’는 ‘사람이 시련이나 고통을 참아내다’ 또는 ‘동식물이 어려운 환경에 맞서 버티면서 죽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가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견디다’와 비슷한 표현으로는 ‘참다’와 ‘버티다’가 있다. ‘참다’는 사람에게만 표현하고, ‘견디다’는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대상이나 사물에도 표현한다. 즉 뜨거운 햇빛 아래 논에서 쟁기를 끌며 땀을 흘리는 소는 참으며 일하는 것은 아니고 견디면서 일한다고 표현한다. ‘참다’와 ‘견디다’는 사람에게 쓸 때에도 서로 차별 나게 표현한다. 참는 것은 ‘마음’이 하는 것이고, 견디는 것은 ‘몸’이 하는 것이다. 마음의 슬픔과 서러움은 참아야 하는 것이고, 몸의 괴로움과 아픔은 견뎌야 하는 것이다. ‘눈물이 나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하는 말에서 ‘눈물이 나오는’ 것은 몸에서라 할 수도 있지만, 참는 것의 핵심은 눈물을 나오게 하는 마음에 있다. ‘아름답게 가을 단풍이 물든 고향의 단풍이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하는 말에서 보고 싶은 것은 마음이라 할 수 있지만, 견딜 수 없는 핵심은 고향으로 달려가고자 하는 몸에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깊고 그윽한 낱말의 속뜻을 제대로 가려 쓸 수 있어야 삶도 깊고 그윽하게 누리는 것이라고 언어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또한 ‘버티다’와 ‘견디다’의 차이는 ‘버티다’는 극복하는 대상은 ‘어려움’이고, ‘견디다’는 대상이 ‘시련과 고통’이라 말한다. 어감적으로도 ‘버티다’는 버둥거리는 감을 느끼게 하고, ‘견디다’는 각을 세우고 다가오면 그냥 부딪치겠다는 비장감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견디다’가 ‘버티다’보다 더 위에 강하게 느껴진다. 혈기가 왕성한 젊었을 적엔 무엇이든 버티기로 대응할 수 있다. 두 다리에 힘이 있으니 버틸 수 있고, 버티다 넘어지더라도 바로 일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버티어야 삶이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지속되니 버티어야 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는 작은 어려움도 시련과 고통으로 느껴져 버티어서는 안되고 그냥 견디어내야 한다. 넘어지면 일어날 힘이 더는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인생이란 견디어 내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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