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내가 초중고를 다니던 1950~1960년대 때 설날에는 이른 아침에 가까운 집안 어른들께 먼저 세배 드리고 나서, 큰집에 가면 안방 차례 상에 돌아가신 조상님들 열 분도 넘는 지방을 모셔 놓고, 조상님마다 밥과 국을 차려 놓고, 숙부님들 그리고 형님들과 함께 절하는 차례를 지내고 떡국을 먹곤 했었다.
그러고 나서 우리 집으로 와서 돌아가신 아버지 지방을 모셔놓고 절하며 차례 지내고 또 떡국을 먹고 그랬다. 
그런 후 동네 집집마다 가서 어른들께 세배 드렸다.
동네 세배가 끝나면 이웃동네 친척 어른들이나 친구부모님을 찾아뵈며 세배를 드렸다. 세배를 하면 의례히 다과상을 내와 떡과 산자, 수정과 등을 먹었다.
성인이 된 1970 년대부터는 서울에 살면서 설 명절을 쇠러 고향에 가기 위해 해마다 서울 역에 가서 기차표를 사려고 수십 미터 또는 백 미터도 더 되는 긴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기차표를 예매 하곤 했다. 고향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찾아뵈어야 하기 때문에 매년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고향에 가면 동네 어르신들께 세배도 하고, 오랜만에 만난 고향친구랑 나처럼 객지에 있다온 친구들과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고스톱도 치면서 즐거운 설 명절을 보냈었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설명절과 추석명절 때는 거의 빠짐없이 고향에 내려갔지만, 세월이 많이 흘러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내가 가장이 된 지금은 결혼한 아들딸이 나의 집으로 설과 추석명절을 쇠러 온다. 나이 들수록 고향에 대한 향수는 더 깊어가지만, 가고 오는 수고로움은 안 해도 되는 편안함도 있다.
작년 설 때는 코로나19 때문에 아들내외와 딸 내외도 따로 따로 오도록 했으나, 올 설에는 다함께 모여 명절다운 명절을 보냈다. 어느덧 세배를 받는 어른이 되고 보니, 세배하던 옛 시절을 떠올리며 감회가 새롭고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하지만 나이 들어도 사는 제미는 젊은 시절 못지않다. 설날 떡국을 먹고 아들, 며느리, 딸, 사위, 손자들 까지 세배를 받고 덕담을 나누고 나니 특별히 할 것이 없어 오락으로 고스톱을 치기로 했다. 며느리 딸 사위 나 4명이 쳤다. 점당 200원씩 쳤다.
그런데 친구들과 고스톱을 수십 년 친 나로써, 참으로 신기한, 희한한 일을 경험했다. 6시간가량을 쳤는데 똥(11월 오동)을 다섯 번 쌌다.
내가 처음 똥을 싸자 며느리가 “아버님, 싸셨네요!” 그랬다.
그 다음 두 번째 또 똥을 쌌다. 그랬더니 이번엔 사위가 “아버님, 또 똥 싸셨네요!” 그러는 거 아닌가! 그래서 한바탕 웃었다. 그 다음 몇 판을 돌다가 세 번째로 또 똥을 쌌다. 며느리가 “아버님, 웬일이세요? 또 똥 싸셨어요!” 구경하던 아내랑 모두가 배꼽잡고 웃었다.
그 날 참 희한한 일이 발생했다. 또 바닥에 똥이 깔리고 내 손에 똥이 있어서 안 먹을까 하다가 “설마 또 쌀까? 애라 모르겠다!” 하며 먹었는데  또 쌌다. 네 번째다. 사위가 “또 싸셨네요! 아버님!” 
딸이 “아빠! 웬일이야!”
이번에는 다들 웃지도 않고 내 얼굴을 봤다. 한참을 치다가 또
바닥에 똥이 깔렸다. 고스톱 속담에 ‘똥 쌍 피와 국진 쌍 피는 경찰서장 앞에서도 먹는다.’는 말이 있다. 내손에 똥 광이 있는데 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먹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도 쌌다. 다섯 번째다. 이럴 수가 있는가? 확률적으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다. 가족 모두 신기하다며 한바탕 웃었고 얼마 후 고스톱은  끝났다, 
나는 똥 다섯 번을 쌌고, 싼 똥을 한 번도 먹지 못했다, 도대체 이런 우연한 일이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는지 도저히 불가사의 한 일이다,
음력 새 해를 맞이하며 설 날 이런 일이 어떤 징조인지 생각할수록 의아하다. 나에게 금년 한 해가 길조 인지 흉조인지?
오락으로 친 고스톱이지만 하도 희한한 사건인지라, ‘꿈에 똥 꿈을 꾸면 운수가 좋다’고 해서 다음날 복권 오천 원짜리 열장을 샀으나 결과는 겨우 오천 원 짜리 한 장만 맞았다. 행운은 날아가 버렸고, 그렇다면 액운만 조심하면 되겠다. 
 어릴 적 어른들이 설 쇠고 나서 토정비결로 한 해의 사주를 보고 얘기 나누던 것을 들은 기억이 난다. 설 날 고스톱이 올해의 나의 토정비결 사주팔자인가 보다.
내 나이 70이 넘었으니 만사를 조심하라는 징조인가 보다. 수학, 과학으로는 풀 수 없는 게 운수인가 보다. 태양의 주위를 일정하게 도는 지구와 오성은 물론 지구 주위를 도는 달도 일정한 괘도를 운행하듯이, 지구의 아들인 인간도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운행의 길, 운명이 있는 것은 아닌지.
運數란 天運과 氣數 즉, 저절로 오고 가고 한다는 길흉화복이라고 한다.
토끼해를 맞아 나를 포함한 대한민국 전 국민이 운수대통하길 기원 한다.

<출향인 독자 안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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