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사단법인 정읍역사문화연구소 이사장)
김재영(사단법인 정읍역사문화연구소 이사장)

금년 4월 25일은 형평운동백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형평운동(衡平運動)은 일제강점기인 1923년 경남 진주에서 처음으로 형평사가 조직되어 1935년 대동사(大同社)로 이름을 바꾸기까지 12년 간 전개된 백정(白丁)들의 인권운동이자 신분차별 철폐운동이다. ‘저울(衡)과 같이 공평(平)한 세상을 만들어보겠다.’는 것이 그들이 내건 슬로건이었다. 

필자가 형평운동에 관심을 갖는 것은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이기도 하지만, 경남 진주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운동이 확산되면서 우리사회가 근대로 진입하는 사회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사회운동이기 때문이다. 

김장하의 형평운동과 사회활동

잘 알고 있듯이 조선시대 백정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천대받는 계층이었다. 이들의 신분이 법적으로 해방된 것은 1894년 갑오개혁이었지만 사회관행적인 차별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러한 차별관습이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도 지속되자 천대받던 백정들이 중심이 되어 형평사를 조직하고 신분차별 철폐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70년이 다 되어가던 1992년에 발상지인 진주에 ‘형평운동기념사업회’가 결성되었다. 이 때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이가 남성당한약방을 운영하던 김장하(金章河/1944- )라는 어른이다. 당시 지역에서는 출신배경이 의심스럽다고 근거 없는 비난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는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1992-2003) 외에도 일일이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학문과 예술은 물론 여성운동과 노동운동, 환경운동에 이르기까지 각종 진주 시민사회운동 단체에 전방위에 걸쳐 후원을 하였다. 그는 자신이 한약방을 통해 벌어들인 돈을 들여 1984년 진주에 명신고등학교(明新高等學校)를 설립하고, 1991년에는 국가에 무상으로 헌납(寄附採納)하였다. 설립 초부터 학교에는 이사장실이 없었다. 학교건물은 부지 포함해서 시가(市價) 100억원이 넘는 돈이었다. 현 시가 280억원이다. 의인이란 이럴 때 쓰는 용어이다. 아무데나 함부로 쓰는 용어가 아니다. 

의인, 김장하의 나눔철학

“나는 아프고 괴로운 사람들을 상대로 그간 돈을 벌었다. 그 소중한 돈을 내 자신을 위해 함부로 쓸 수 없어 차곡차곡 모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이 일을 시작하였다.” “돈이란 똥과 같은 것이어서 쌓아두면 악취가 진동하지만, 이것을 밭에 뿌려주면 좋은 거름이 되어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하듯이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핀다.”고도 했다. 경상대학교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주려 하자 수차례 사양하다 대학 측과 지역인사들의 설득에 못 이겨 마지못해 받은 명예박사학위 수여식장에서 그가 한 말이다. 그가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벌인 장학사업으로 혜택을 본 이들만 해도 줄잡아 1,000명이 넘는다. 그럼에도 별도의 장학금 전달식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가 이렇게 언론에 뒤늦게 조명되는 것은 자신이 한 일을 알리지 않기 위해서 언론과 접촉을 피하고 인터뷰에 일절 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이 가장 큰 후원자로 있는 「진주신문」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형평운동 관련 일이라면 방송과 인터뷰를 마다하지 않았다.

자신이 알려질 만한 인물인지 한번쯤 뒤돌아 볼 일이다

이와 같이 자신의 선행이 언론에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10만원어치도 안 되는 봉사활동을 하고서, 100만원어치 낯간지러운 자기 피알(PR)을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종종 보게 된다. 자신은 돈 한 푼 내놓지 않으면서 남들을 비난하는 이웃들도 보았다. 한편에서는 그런 공익활동이 언론에 보도되지 않으면 그런 선행을 의심하기도 한다. 했다면 왜 언론에 보도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일부이지만 이보다 더 한심스러운 것은 수상을 목적으로 열심히 봉사와 공익활동을 하다가도 정작 상을 받고 나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그간 해왔던 공익활동의 진정성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자신이 과연 알려질 만한 인물인지 한번쯤 뒤돌아 볼 일이다. 새해 들어 그 어른이 한 행적과 말을 곱씹어 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이 참 많아진다.

[필자 소개] 글쓴이 김재영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30년간 연구한 역사학자로 「일제강점기 형평운동의 지역적 전개」라는 박사학위 논문을 포함, 40편의 연구논문이 있다. 저서로는 『김재영의 역사인문학 99강』 등 공저 포함, 30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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