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철 (전 정읍시청 국장)

기고

 6개월마다 병원 진료 관계로 서울에 갈 때는 KTX 열차를 곧잘 이용하고 있다. 그때마다 열차 좌석에 ’선을 잇다‘라는 표어가 붙어 있는 걸 보았다. 열차를 이용하는 승객들에게 가는 목적지까지 연결을 잘하여 안락하고 편리한 교통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한국철도공사의 모토(motto)라고 할 것이다. 
‘선을 잇다’와 관련하여 상반되는 글귀라 말할 수 있는 ‘선을 긋다’에 대하여 온라인상에서 떠도는 일화가 있다. 전쟁 중에 한 부대가 병력과 무기의 열세로 도저히 이길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 적 부대는 항복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부대는 전략적인 지역이라서 사수할 수 밖에 없어 지휘관은 모든 군인을 집합시킨 뒤 땅에 선을 긋고 ‘나와 끝까지 싸울 사람만 이 선을 건너와라’고 말했다. 한 군인만 제외하고는 모두 싸우겠다고 건너왔다. 
그때 유일하게 넘어오지 않는 군인이 지휘관에게 ‘저는 다리를 다쳐 건널 수가 없어 선을 제 뒤쪽으로 그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 후 사면초가의 상황에서도 사기가 오른 부대는 최선을 다해 그 지역을 지켰고 이후 지원부대의 도움으로 승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선을 긋다’와 관련된 일화의 유명한 내용이다. 
 우리 국어사전에는 ‘긋다’는 ‘일정한 방향으로 쭉 이어 그리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긋다’에는 일반적으로 세 가지 표현을 생각해 볼 수가 있다. ‘선을 긋다’와 ‘금을 긋다’ 그리고 ‘줄을 긋다’이다. 선은 어떤 바닥에 점을 찍어 이어 긋는 것을 말한다.
 선을 긋는 것은 바닥을 나누는 일이며, 선을 긋는 행위는 하나를 둘 이상으로 구분하기 위함이다. 사전적 정의가 ‘그어놓은 금이나 줄’을 뜻하고 있는 것에서 그 본질이 있기에 선이 갖는 기본속성은 경계의 구분이라고 할 것이다.
 또한 ‘선을 긋다’라는 말에는 ‘무언가를 제한하다’라는 의미도 담겨있어 토지에 그려진 선은 토지의 크기를 제한한다. 실제 생활에선 법으로 ‘건축경계선’ ‘대지경계선’등 많은 선들이 그어져서 무질서한 토지 개발을 방지하게 되는 것이다. 
 ‘금을 긋다’에서는 금은 ‘긋다’에서 온 말로써 ‘접거나 긋거나 한 자국’을 뜻하여 이쪽에서 저쪽까지 그은 흔적을 말한다. 금을 긋는 것은 금을 기준으로 안쪽과 바깥쪽을 구별하기 위해서이다. 
본래 금은 그려진 선이나 깨진 자국을 의미하며, 둘 다 선모양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한 면이 있다. 요즘에는 선이 직선처럼 수학적 개념으로 통할 때가 많아지고, 금은 실제로 그어진 임시의 선으로 통할 때가 많아졌다고 한다. 
학교 운동장에서 임시로 선을 그을 때는 금이라는 말로 잘 쓰이고, 연필로 ‘금을 긋다’처럼 쓰이기도 한다. 그래서 국경선같이 사람이 직접 그릴 수 없을 정도로 길이가 길어지면 금이라고는 할 수가 없고 선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줄을 긋다’에서는 흔히 책에 있는 문구 밑에 ‘줄을 긋다’가 떠오른다. 이 글귀를 음미하면 문장을 읽는 데 더욱 열중하게 되는 것을 저절로 연상하게 한다. 즉 손을 움직여 줄을 긋는 육체적 행위는 문장과 자신의 관계를 밀접하게 만드는 것이다. 줄은 ‘무엇을 묶거나 동이는 데에 쓸 수 있는 가늘고 긴 물건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줄로 묶다, 줄을 감다, 줄을 당기다와 같이 쓰이고 있다. 
즉 줄은 뭔가를 묶는 일종의 도구를 말한다. 결국은 선은 금이나 줄의 뜻을 다 가지고 있는 낱말이다. ‘선을 긋다’에는 속성 자체에 한계나 허용범위를 정하다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어 따뜻함이 느껴지는 단어는 아니고 차가움을 지니고 있는 단어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 ‘선을 긋다’라고 표현하게 되면 막연하게 정서적인 불편의 느낌이 든다고 하겠다. 사람 사이에 선을 긋는 것은 편 가르기를 한다는 것이고, 사람의 생각을 좌우로 선택을 강요하는 것 같은 느낌이 있게 한다. 
따라서 선이란 긋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었던 선을 지을 수도 있고, 또한 선을 옮겨 그을 수 있고 이을 수도 있는 배려와 포용을 곳곳에서 긋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더욱 요구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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