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그 어떤 곳 어떤 나라에서도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된다. 1950년 한반도서 발발한 6. 25 전쟁은 수많은 사상자를 만들었고, 그리고 남편과 자식을 잃은 가족들은 그 슬픔과 고통 속에서 오랜 시련의 세월과 함께 오늘을 살아가게끔 했다.
최근 당시 23살의 나이에 전쟁터로 나간 남편을 잃은 초산동 거주 한 분이 현충일 날, 충혼탑에 올라가 남편 故 김봉용 님을 찾아 향을 피우고 싶었다. 
그런데 충혼탑은 너무나 가팔랐다. 때마침 다리가 아파서 못 올라간다는 노인의 딱한 사정을 접한 김석환 시의원은 그분을 업고서 충혼탑에까지 올라갔다.(사진)
그랬더니 그분은 남편의 이름을 찾고서 또 엉엉 울었다는 그날의 정황을 필자는 한순영 독자로부터 전해 들었다.
그리고 그가 다리가 아파하는 95세의 노인을 업고 충혼탑 오르는 장면이 페이스북에 올라와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고 제보자는 밝혔다.
필자가 보아도 쉽지 않은 용기를 낸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불현듯 어느 봄날 90세가 넘은 장모님을 모시고 내소사를 다녀왔을 때도 느꼈고, 불갑사 등 인근 사찰을 오르내리는데도 노인과 장애인이 편하게 오르내릴 수 있는 세심한 배려의 흔적을 찾기가 어려웠다.
휠체어가 자연스럽게 대웅전까지 갈 수 있는 곳은 아직 한 군데도 필자는 못 본 것 같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국가에 충성한 이들을 추모하는 현장, 충혼탑과 같은 곳에서 반드시 노인과 장애인들도 편하게 찾아와서 추모하고 향불을 피울 수 있는 곳, 그런 시설이 갖추어 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미국과 영국을 오가면서 확인하고 봤던 그들의 추모현장 기념비 등에서는 그 동선이 매우 편리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장애인 노인드링 휠체어를 타고서 바로 코앞까지 와서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추모할 수 있게끔 돼 있었다. 영국에서는 휠체어 및 장애인들이 편하게 다닐 수 있는 전용 길이 있었고 또한 그 동선의 안내표지판도 선명하게 잘 만들어 놓은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이런 세심한 배려와 깊은 고민들도 우리 동네, 우리 정치인들에게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기를 6.25 전쟁 발발 73주년을 맞이해서 기대도 해 본다.
그런가하면 개인택시 기사 이씨는 서향경 시의원이 모처에서 함부로 버려진 쓰레기를 종량제 봉투를 가져와 묵묵히 치우는 장면의 사진도 필자에게 보여 주었다.
솔선수범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들이 아닌가 싶다. 가끔씩 보여 주기식과 가식적으로 아름답고 멋진 모습들을 연출하듯 사는 이들도 적지 않은 판국에 이들의 아름다운 솔선수범적인 선행은 그래서 더 멋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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