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석보터 1976년 4월 전북도기념물 지정, 관련 유적중 가장 먼저
서인석 전 소장 “만석보의 위치, 정읍천과 태인천 합류지점 아래쪽이 타당”

정읍시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은 3일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교육관에서 ‘만석보 위치 고증 및 활용 방안 모색을 위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학술대회는 이학수 시장과 재단 관계자, 동학농민혁명 연구자, 동학참여자 유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연구자들의 발표와 종합토론 순으로 진행됐다.
제1주제를 맡은 왕현종 연세대학교 교수는 ‘19세기 고부지역 수리시설 현황과 만석보 수세 징수’ 발표를 통해 고부농민봉기 발생 원인과 관련해 19세기 후반 고부군 지역의 수리시설 현황과 수세 문제를 중심으로 검토했다.
제2주제는 홍성덕 전주대학교 교수가 ‘전라북도 기념물 만석보터의 위치 재지정 검토’를 주제로 진행됐다. 홍 교수는 1973년 건립한 ‘만석보유지비(萬石洑遺址碑)’의 위치 문제를 지적하며 기념비는 역사적 현장에 세워졌을 때만 그 기능을 제대로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제3주제는 조광환 동학역사문화연구소장의 ‘만석보의 변천과정과 기념사업의 현황’으로 조선 후기 만석보의 변천 과정을 추적하고, 만석보의 문화재 지정과정과 기념사업 현황에 대해 논하고 향후 만석보의 상징성과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지정 방안을 제시했다.
제4주제는 박정민 전북대학교 교수의 ‘동학농민혁명 상징 공간으로서 만석보 활용 방안’이었다. 박 교수는 고부가 가진 역사적 위상과 만석보에 대한 인식과 기사 내용 등 검토를 바탕으로 향후 활용 방안을 제시했다.
서인석 전 동학사무소장은 “만석보의 위치에 대해 몇가지 견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정읍천과 태인천이 합류하는 지점 아래쪽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2004년 시에서 발간한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복원 정비계획에 의하면 실제 만석보 터는 현 지점에서 하류로 약 500m 지점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당시 강바닥에 잔존해 있는 말목을 근거로 제시했지만 말목 시료를 채취해 전문가의 연대 측정을 의뢰한 결과 동학농민혁명 발발 시기보다 후대의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지적했다.
발표를 마친 후 이어진 종합토론에서는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인 고부농민봉기의 촉매제 역할을 한 만석보의 위상을 재검토하고, 논란이 되고 있는 만석보의 정확한 위치 고증을 통해 동학농민혁명의 상징 공간으로서의 만석보 활용 방안에 의견을 모았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신순철 이사장은 “지역과 연계하는 학술대회를 적극 추진해 동학농민혁명 정신 선양과 연구 활성화를 확산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이학수 시장은 “만석보는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을 제공한 상징적 공간”이라면서, “학술대회 등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만석보 종합정비사업을 계획하여 동학농민혁명 주요 핵심 유적지로 성장시켜 나갈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이날 학술대회가 열린 동학농민혁명기념관 교육관에는 정읍시 일부 공무원과 토론자 등 일부만이 참석해 홍보 및 참석 독려에 아쉬움을 남겼다.(이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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