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영 칼럼>>

의사는 사회적 공기(公器)이다. 평생 정년이 보장되고 고액 연봉에 사회적 지위가 확보되는 직업인으로서 현실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환자의 생명과 고통을 직접적으로 다룬다는 측면에서 그 역할과 책임은 공공적 요인이 막중하다 할 것이다. 그런 연유로 의학도들은 10년이 넘는 긴 시간을 의학 수업을 위해 지난하고 혹독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한 사람의 의사를 양성하기 위해서 국가나 사회 교육기관들이 그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여 의학적 기술은 물론 의사로서의 자질과 인성을 요구하는 것은 의사의 공적 기능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의례적으로 의과대학 졸업식에서 예비 의사들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통하여 의사의 윤리의식과 책임, 그리고 인류봉사에 대한 헌신, 명예 준수 등 엄숙한 다짐을 한다.

이제 우리의 현실을 보자. 소아과 병원의 줄폐업으로 소아과 오픈런이라는 웃지 못할 신조어가 생겨나고, 시급을 다투는 응급환자들은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를 전전하다 골든 타임을 놓쳐 생명을 잃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지역 공공의료기관의 의사 모집에 상상 이상의 고액 연봉을 제시해도 지원자가 없다는 하소연이 빗발치고, 그 밖에 산부인과 외과 등 비인기 전공의의 부족으로 의료공백이 초래되는 지극히 비상식적인 현상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오로지 돈벌이가 목적인 듯한 피부과, 성형외과는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넘쳐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성업중이다. 여기에 학부모나 대입 수험생들의 광적인 의대 열풍은 불안정한 고용구조에서 정년과 고액 연봉의 보장이라는 직업인으로서의 의사만을 강조할 뿐 생명 존중이라는 의사 본연의 역할과는 전혀 다른 왜곡된 이기주의로 뒤범벅이 되어 있다. 대형 병원의 수도권 집중화로 인한 지역 의료서비스의 실종은 가뜩이나 출산율 저하로 인한 인구 감소, 고령화 구조의 심화, 지역 경제기반의 붕괴 등 제반 사회 현상과 맞물려 그 속도를 더하고 있다. 의료보험 시스템이 세계적 수준이라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주 오래된 모순과 병폐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이런 엄연한 불평등 구조에서 국가는 도대체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가. 의사들은 이러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려는 어떤 노력과 고민을 하고 있는가. 자본주의의 생리가 선의의 경쟁을 통하여 부를 축적하고 좋은 직업을 선택하여 자신의 미래를 담보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거기에는 도덕적 기준과 이에 합당하는 최소한의 원칙과 룰이 엄연히 존재한다. 어려운 과정을 통과하여 의사가 된 후 이에 합당한 처우과 경제적 이익을 취하려는 전문가 집단의 최고의 수익권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나치게 기울어진 그들만의 선택적 이기주의는 그들의 권위를 스스로 부정하는 탐욕에 가깝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부는 위에서 언급되는 의료계 전반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방편으로 의대 정원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벌써 20년 째 묶여있는 의대 정원을 늘려 필수 의료인력을 확보하고 공공의료서비스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으로 보인다. 이에 맞서 의료계는 파업까지 불사하겠다는 의지로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지난 정부에서도 똑같은 정책 대안이 제시되었지만 역시 의료계의 반발로 무산된 사실이 있음을 기억한다. 우려스러운 것은 총선이 다가오는 정치의 계절에 혹 민심을 의식한 선심용 정책은 아닌지 정부의 책임있는 자세가 요구되며, 의료계 역시 증원에 반사적으로 반대할 것이 아니라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세밀하게 검토하고 의료계의 불합리한 현실이 어디서부터 출발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 머리를 맞대고 끊임없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지난 시절 의사들은 지나치게 자신들의 이익과 영역을 지켜내기 위하여 어느 노동단체 못지않게 세력을 과시하며 일사불란한 행동으로 환자의 권리를 침탈해 왔다. 이런 모습들이 국민들의 눈에 어떻게 보였을까는 우리 사회의 최고 엘리트 집단인 이들이 모를 리가 없다. 의약 분업시 약사와의 갈등, 끊이지 않는 한의사와의 이해 충돌, 지난 정부 의대 증원 반대, 최근 간호법에 대한 반대 그리고 지금 예고되고 있는 의대 증원 정책에 대한 반대 등 누구라도 알만한 굵직한 현안들에 대해서 파업 또는 파업 불사라는 협박 아닌 협박으로 우리 사회의 갈등을 조장해 왔다. 그 때마다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의 불안과 공포는 감히 표현하기조차 두렵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의사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걸맞는 존경의 대상이고 생명 존중의 가치와 보람을 실현하는 믿음과 선망의 대상이다. 상식은 최고의 선이어야 하고 흐르는 물과 같이 부드러워야 한다. 의사들의 파업이 집단이기주의로 포장된 밥그릇 지키기 더 나아가 밥그릇 키우기로 매도되어 의사들 스스로의 권위가 실추되지 않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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