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된 나라에서는 사람이 자유롭게 왕래조차 할 수 없지만 새들은 거리낌 없이 하늘을 날며 자유자재로 드나든다. 이런 새들을 보며 너나없이 사람들은 부러워한다. 그래서 새는 자유의 상징이자 평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분단된 어느 나라의 숲속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언제부턴가 이 숲에서는 젊은 새들이 알을 낳지 않는다. 아니 알을 낳지 못하는 새가 많아졌다고 해야 맞는 말이다. 심지어는 어미 새에게 기대어 홀로 독립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해가 거듭될수록 이 숲 속 뿐만 아니라 바닷가와 강변에서도 어린 새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이 숲에서는 짝도 없고 동거도 못해 혼자 사는 젊은 새들이 20년 전에 비해 2배 넘게 늘어났다. 30년 뒤면 혼자 사는 새들의 비율은 80%까지 높아지고, 알을 낳지 못해 새들의 수가 지속적으로 줄면 젊은 새들의 수가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고 한다. 이러다가는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새들을 영영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이런 세월이 오래 지속되면 멸종되고 말지도 모를 일이다. 이 숲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기에 새들이 줄어들고 있는 것일까? 몇 년 전만해도 새가 너무 많아서 곤충이나 물고기의 부족으로 새들이 굶어 죽을까봐 새들이 낳은 알들을 한 둥지에 2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깨뜨릴 정도였다. 새를 사냥하던 포수들도 사라지고 갈수록 숲은 울창해졌다. 숲이 무성해지고 먹을 것이 풍부해지면서 새들의 건강도 좋아져 새들의 수명 또한 길어졌다. 이 곳은 더할 나위 없이 풍요롭고 평화로운 세상, 말 그대로 새들의 낙원이었다. 힘 있는 새들은 튼튼하고 전망 좋은 나뭇가지에 호사스런 둥지를 짓고 살고 있다. 높은 곳에 둥지를 지어야 알을 노리는 뱀에게서 안전하기에 좋은 곳에 둥지를 짓기 위해 서로 아귀다툼도 빈번해졌다. 그 뿐만이 아니다. 새끼들을 위해 가진 힘을 남용하여 둥지를 몇 개씩 갖고 산다. 반면에 힘없는 새들은 겨우 작은 나뭇가지에 둥지를 틀거나 아니면 잡초 속에 둥지를 틀어야 한다. 새들이 많아지면서 둥지를 짓는 곳을 찾기도 여간 쉽지 않다. 둥지마다 알에서 부화한 한두 마리의 아기 새들은 귀한 자식들이라 모두 금지옥엽처럼 키워졌다. 힘 있는 어미 새들은 더 좋은 둥지에서 호화롭게 아기 새의 날갯짓 교육을 시킨다. 반면에 힘없는 어미 새들은 하루하루 아기 새들 먹여 살리느라 종일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사냥을 다녀야 한다. 바삐 다니다보면 뱀에게 둥지가 털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용케 살아난 새들도 어미 새로부터 독립하여 살기도 쉽지 않다. 다른 새와 짝을 지어 새살림을 차리는 것이 쉽지 않아서다. 새둥지를 짓고 짝짓기도 하여 낳은 알을 금지옥엽 부화시켜 남들 보란 듯이 키워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둥지를 지을 터가 없다. 이러다보니 해마다 이 숲에서 새로 태어나는 아기 새가 수천 마리였는데 이제는 백 마리도 안 된다. 이 숲의 미래는 어찌 될 것인가? 이 숲에서는 지금 새가 알을 낳지 않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 알을 낳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새가 알을 낳을 수 있도록 이 숲이 바뀌지 않으면 이 숲에서는 영원히 새를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힘 있는 새들의 탐욕이 사라지고 힘 있는 새들의 양보와 배려로 새들의 천국을 되찾아야 한다. 힘 있는 새들과 힘없는 새들의 공존이 없는 한 이 숲에서는 둥지의 차별과 환경의 차이로 새들의 지옥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가 사는 요즘 세상이 이런 새들의 삶과 무엇이 다른가? 신생아 출산율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러다보면 경제의 침체는 물론 국가를 지켜갈 군인의 수도 급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앞으로 이 나라는 누가 지킬 것인가 걱정이 앞선다. 청년세대들이 이런 처지에 있다면 우리는 청년들에게 무엇을 해 주어야 할 것인가부터 대안을 찾아야 한다. 우선 정치가 앞장서서 청년들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제도부터 마련되어야 마땅하다. 수도권으로 집중된 경제활동을 지방으로 분산화하여 집값 안정 속에서 청년들이 쉽게 둥지를 틀고 맘껏 아이들과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육아와 보육을 국가가 지원하고 여성들의 경제활동이 불평등하지 않도록 모든 사회의 구성원의 노력과 의지 또한 절실해야 한다. 학생들의 입학과 청년들의 취업의 공정을 내세우며 이룬 정권이니 지금의 정부가 먼저 공정을 실천하는 자세가 우선이다. 둘이 셋이 되고 넷이 되는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실현 가능한 정책들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 동네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넘쳐나고 어린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널리 펴져나가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본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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